가출을 결심하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0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26

< 통금 시간 7시의 신데렐라 여대생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9>에 이어...


아빠와 그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무조건 저녁 7시만 되면 집에 와야 했다.

밤 문화를 맛보고 싶은 대학 신입생의 마음을 그렇게나 몰라주시다니...


친구들은 6시면 자리를 뜨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처량한 눈빛으로 도살장 끌려가듯 일어나는 나에게 아빠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길 때까지 새벽에 들어가라는 조언도 해줬다.

나중에는 저녁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숨기는 사태도 발생했다.

7시 신데렐라로 낙인찍힌 나를 위한 친구들의 배려라 서운해 할 수도 없었다.


많은 경험을 해야 할 대학 1학년 때 7시 귀가로 얼마나 큰 기회비용이 발생하는지 아빠를 설득하기도 했다.

응, 다 알겠어~ 하지만 통금 시간은 불변.

기승전7시였다.

그야말로 벽과의 대화였다.


"다 큰 처녀가 밤늦게 다닐 이유가 어딨어. 뭘 해도 좋으니 통금 시간만 지켜. 다 너를 위해서야."

(이미 그 시대에 아빠는 AI가 빙의된 무한반복 같은 말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미팅, 소개팅, 데이트, 친구와의 술자리 등 여러 모임에 자꾸 민폐를 끼치자 고등학교 때 살짝 드러났던 반골 기질이 저 깊숙한 곳에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너무 대쪽 같으면 부러진다고 참다 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큰 가방을 찾았다.


'할머니 미안.. 내가 못살겠어!'

룸메이트 할머니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을 고쳐먹었다가도 아빠랑 또 귀가 시간으로 싸울 때면 어느새 짐을 챙기게 되었다.

이 집을 나가서 살아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고등학생 때 잘 정리해둔 수학 노트도 있겠다, 이 참에 수학 과외를 해보았다.

학생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읽어주며 수학을 풀어주니 반응이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나가서 살 만큼의 액수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 청소년도 아니고 대학생이나 됐음에도 아빠를 설득 못해 집 나갈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렇게 나를 못 믿나 서운하기도 했고, 감정싸움으로 번질 때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 감행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몰래 치밀한 가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라도 큰 한방이 생기면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거의 마친 어느 겨울날이었다.


오늘과 같은 성탄 전후였던 것 같다.

친구와 캐럴이 흐르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다 겨우 끊고 막 귀가하던 참이었다.

저녁 9시도 채 되지 않은 아주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7시가 넘었다는 이유로 어김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내가 그 자리를 어떤 마음으로 박차고 나왔는데 그 노력은 생각지도 않고 잔소리부터 하시지?!

순간 욱 하는 마음으로 그간 머릿속으로만 대들었던 문장들을 함께 내뱉었다.


"아빠! 요즘 대학생이 누가 이 시간에 들어와요!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 나같이 통금시간 잘 지키는 딸이 어딨는지!"

"지금이 7시냐? 크리스마스 때는 사건들이 널 피해 준다니? 이럴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거야!"

"아니, 아빠. 지금이 조선시대냐고? 나 이제 신입생도 아니고 몇 년 있으면 졸업해요.. 내가 아직 어린 애로 보여요? 나 아직 할 게 많은데 아빠 때문에 못하고 있잖아!"

"어리고 안 어리고 상관없이 여자들은 밤에 다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누군 나쁜 일 당하고 싶어 당하는 줄 알아? 늘 조심해야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하아.. 또 똑같은 말만 반복하시네.. 됐어요, 그만해요."

"뭐라고? 말하는 거 하고는... "


오래간만에 하고픈 말을 해서 조금은 후련했지만, 못마땅해하는 아빠의 옹벽 같은 대화를 떠올리니 다시 답답해졌다.

오늘을 '그날'로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 정도 참고 살았으면 효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았다.

드디어 D-day가 코 앞으로 다가온 것 같다.

분한 마음을 추스르며 가출 계획표를 다시 꼼꼼하게 체크했다.






다음 날 새벽, 씩씩거리며 잠든 나를 엄마가 다급하게 깨우셨다.

모두가 잠든 고요하고 거룩한 밤 2시경이었다.

아빠가 심하게 체하셔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신다.

순간 저녁때 나와 싸운 것 때문에 체하셨나 살짝 걱정이 되었다.

거실에 나가 보니 아빠가 소파 밑 바닥에 앉으신 채 명치 쪽을 두드리고 계셨다.


싸웠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쭈뼛거리며 물었다.

"아빠, 많이 아파? 어디가 아프세요?"

아빠도 자존심인지 묵묵부답으로 못 들은 척 트림을 유도하시며 가슴만 두드리셨다.

'쳇.. 누군 풀린 줄 아나...'


아빠가 운전해서 응급실로 가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불현듯 이 기회에 119 구급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침 당시 응급 상황에 119를 불러 위기를 모면했다는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손사래를 치셨다.

다니시던 동네 병원 응급실로 갈 테니 제발 가만히 있으란다.


아빠가 옷 입으시는 동안 나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119에 전화해서 응급차를 부른 것이다!

응급차는 금방 왔고 눈을 흘기시는 아빠와, 가운데서 누구 편도 못 드는 엄마와 함께 응급차에 올랐다.

나는 집 앞에서 제일 가까운 3차 병원인 아산병원에 가주십사 했다.

아빠는 거기 말고 동네 병원에 차트가 있으니 거기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응급차 운전하시는 분은 순간 짜증을 내셨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타서 여기 가라 저기 가라 우리끼리 싸우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좀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산 병원으로 가주세요!"

계속되는 내 고집에 아빠도 포기하신 듯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아빠는 간이침대에 누워 엄마랑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응급실이 이렇게 생긴 곳이구나 하는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 의사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분명 엄마 목소리였다.



몇 발자국 거리에 있는 아빠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빠는 어딘지 모를 먼 허공을 쳐다보고 계셨다.

아니, 보고 있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초점이 없었다.

갑자기 의사 6명이 아빠 침대로 뛰어왔다.

긴급하게 심장 제세동기를 아빠 가슴에 대고 충격을 가했다.


"삐이----------"


반응이 없었다.

보통 TV 드라마를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박동이 있던데...

저 소리는 심박동이 없을 때, 그러니까 그러니까...


머리가 새하얘졌다.

난 어젯밤 아빠랑 심하게 싸웠다.

그리고 6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아빠 심장이 멈췄다.


'안 돼.. 이렇게 가시면 안 돼..!!!'


영화 속 이야기도, 드라마 속 이야기도 아니었다.

초점을 잃은 아빠의 눈, 힘 없이 축 늘어진 팔.

분주한 의사들의 움직임과 아연실색한 엄마.


10여 년 전 할머니 사고 때에도 꿈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간절했다.

이 시간, 제발 모든 게 꿈이길...


의사들은 계속해서 아빠 가슴에 무시무시한 기계를 대고 심폐 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1>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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