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뜻대로 하소서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1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27

<가출을 결심하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0>에 이어...



엄마의 비명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1초가 1년 같았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멍한 상태였다.

아빠의 심폐 소생술은 계속되었다.


'아빠, 이건 아니지.. 이렇게 가시면 안 되지..

제발 좀 깨어나란 말이야!!!'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였다.

이상한 소리로 바이탈이 잡히기 시작했다.

Artsss@pixabay


마치 삐죽빼죽한 sin cos(사인 코사인) 곡선?

다행이라고 느끼기도 전에 한 의사가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이런 이상한 비트에 대해 무표정으로 설명했다.

기가 막혔다.


"심근경색입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미 심장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못해요.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3일 정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하더라도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살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아요.

수술대 위에서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아서...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수술을 하시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40대 초중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었다.

남편의 생사가 걸린 선택을 겨우 몇 분 만에 하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지만 엄마는 그 순간만큼은 침착하게 똑똑하게 대답하셨다.


"네, 해주세요. 당장 수술해주세요!"

"저.. 그런데 수술 비용이..."


급하게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할 때 옆에서 들었다.

풍선 및 스텐트 비용이 IMF로 인해 2배가 되었단다.

200만 원대였던 것이 외환 위기로 500만 원이 넘는다니...

그러나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1초 망설임이 없었다.


모든 절차를 순식간에 마쳤다.

아빠 수술만을 앞두고 있다.

병상에 누워 가늘게 겨우 숨 쉬고 있는 아빠.

그 옆에서 아빠를 안심시키는 엄마..

나는 엄마 아빠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대화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6시간 전 아빠한테 대들었던 그 순간을 용서받고 싶었다.

아무리 내가 백 번 천 번 옳았더라도 아빠를 속상하게 했던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매번 잘 참다가 하필 왜 그 순간에 터졌을까.

나 때문에 아빠가 이렇게 된 것 같았다.

어제가 너무나 한스럽고 후회되었다.


나는 언제 말할까 아빠 발치에서 엄마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모습은 너무나 성스러워 감히 끼어들 수 없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병상 위 아빠의 맨발.

아빠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 아빠 발 마저 나에겐 황송했다.


아빠 양 발에 입을 맞췄다.

평소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행동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빠 발이 세상 깨끗했다.

계속 입을 맞췄다.

그래도 아직은 체온이 있는 아빠 발이니까.


새벽 3시경 수술이 시작되었다.

서너 시간이면 된다고 했다.

긴장 속에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빠, 정말 미안해.. 제발 살아만 주세요..

이젠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러나 5시간을 넘기면서 극도의 불안이 엄습해왔다.


설마 의사가 말한 수술대 위에서의 심정지?!

그 순간을 알리는 사람이 올까 봐 정말 조마조마했다.

천만 다행히 기나긴 수술이 끝나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정말 극적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


중환자실에서도 여러 번 고비가 있었다.

어떤 동갑내기 아저씨가 똑같은 심근경색으로 수술받고 오셨다.

그리고 며칠 후 돌아가셨다.

그분을 은근히 의지했던 아빠는 그 충격으로 그날 숨을 못 쉬셨다.

목에 구멍을 뚫어 겨우 위기를 넘겼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또한 천국이었다.


'그래도... 다시 살아주셔서 고마워요, 아빠!'






한 달 넘게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다투며 회복하셨다.

일반 병실로 옮기신 후 나는 아빠의 여종(?)이 되었다.


1인 유통사업을 하셨던 아빠는 IMF의 여파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셨나 보다.

그동안 밀린 일을 하셔야 했다.

병실에서 장부 정리를 맡기셨다.

나 겨우 대학생인데 이해도 안 되는 숫자 기록이라니...


"가격을 쓰고 그 옆에 0 하나 떼고 또 적으면 돼."

"왜 10%가 항상 붙어요?"

"부가세라고 하는데..."

무늬만 대학생이었지, 재무회계 쪽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다.

앞뒤 정확히는 몰라도 시키는 대로 또박또박 정리했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빨리 귀가했다.

이젠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빠까지 케어해야 했으니까.

사실 이른 귀가에도 아빠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빠 기준에 빠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불만을 갖지 않았다.

수술 직전의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나의 모든 불만은 순삭(순간 삭제)되었다.

그야말로 아빠 뜻대로 모든 걸 하겠다는 의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가 감사하게도 사셨으니까,

살아주셔서 내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주셨으니까.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적어도 그날 아빠에게 대들었던 미안한 감정이 없어질 때까지는 그랬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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