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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Mar 22. 2022

수학 선행에도 기본이 있나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이 중요하다는데 그 기준을 뒤엎은 중학생


둘째도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엄마 마음만 급한 것 같다.

중학생이 되어도 혼자 느긋해 보이는 둘째 아이 때문이다.


"수학 학원 이제 안 갈래요."

"다닌 지 두 달 밖에 안 되었는데 또 안 다녀?"

"태권도랑 겹치기도 하고.. 집에서 혼자 할래요."

"너 혼자 한다고 해서 믿어줬더니 결국 하나도 안 했잖아! 기본만 하자고, 기본만.."

"기본이 어디까진데요?"

"네가 중1이니까 한 해 정도만 미리 나가라고.. 네 친구들 대부분 수학 상(고1 과정) 들어갔던데?"


나름대로 후하게 봐주는 듯 말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동네 분위기상 현행 예습도 하지 않은 (우리 둘째 같은) 아이들은 공부를 포기한 듯 취급하더라.

나도 모르게 엄마들과의 대화에 젖어 '기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게 왜 기본이에요?"

"왜냐면... 네 언니도 중 1때 수상 들어갔고.. 다른 친구들도 다 하니까..."

"중 1이 고등 수학 하는 게 이상한 거죠, 전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수학이 갈수록 어려워진대, 미리 해두면 수업시간에 이해가 빠르잖아?"

"그럼 학교 수학 시간에는 뭐해요?"


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하는 사춘기 초입 여중생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가는 막힐 것 같아 대화를 멈췄다.

그리고 잘못 대답했다가 그 말을 꼬투리로 또 1년을 허비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아이는 수학 학원 대신 태권도 학원을 주 3회 간다.

태권도 4품을 따면 외국에서 사범 지위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학 학원 대신 태권도를 선택했단다.

물론 다른 전공을 택할 것이며 태권도는 취미이자 해외 진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만 해도 '딸아, 넌 다 계획이 있구나~'하면서 인정을 빙자한 방치로 한 해를 마쳤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어서도 수학을 뒤로하고 태권도를 하겠다는 아이의 우선순위에 엄마로서 경악을 한 것이다.


"제발 기본만 하자, 기본만!"


하지만 이 기본에 대한 합의가 안 되었을뿐더러 내 머릿속에서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음을 시인한다.

아이의 선택을 편안한 마음으로 격려해주지 못하는 어지러운 내 맘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자꾸 바뀌는 교육 입시 제도에 대한 불안함일 것이다.

2009년생부터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 대입제도에 어떻게 연결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학원 입시 설명회를 다녀도 지금보다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뿐이다.

그러나 아이 말대로 수학 선행 진도의 이상적인 분량을 미리 정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많이? 얼마나 많이?


또 하나, 아직 꿈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나중에 어떤 꿈을 가질지 모르니 어느 정도 공부해 두자는 생각이다.

이 '어느 정도' 역시 기준 설정이 어렵다.

그렇다고 중 1에게 너의 꿈이 뭐냐고, 어서 정하라고 압박하기엔 너무 어리다.

나도 대학 갈 때까지, 아니 가서도 꿈이 뭔지 몰랐으니까..


이래저래 나는 그저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기준도 없는 '기본'에 의지하여 아이에게 그 기본을 강요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처럼 둘째 아이도 친구와 학원 다니는 걸 즐기는 성향이었다면 이런 논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아이들이 다 첫째 아이 같으랴!

만약 둘째가 반기를 들지 않았더라면 엄마들 대화에서 2~3년 수학 선행 진도를 당연한 듯 또 주장할 뻔했다.

반쪽이처럼...


혼자 열심히 해보겠다는 다짐을 받고 수학 학원을 끊었으나 예상대로 작심삼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중 1학년이고 시험을 보지 않는 자유학년제 기간임에 의지하여 내 마음도 일단 내려놓기로 했다.


설상가상으로 요즘 펜싱하는 드라마에 빠져 펜싱을 해보고 싶단다.

'수학도 안 하면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눌러 담았다.

다 해보는 기간, 자유학년제 아닌가!


마침 친한 친구 엄마의 권유로 '깐느'라고 하는 프랑스 무술 수업이 결성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펜싱과 검도의 믹스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매우 건강하고 좋은 루틴이니까 태권도에 이어 추가로 다니는 중이다.

"그래, 해 보고 싶은 것 다 해봐!"


깐느 수업 중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이 중요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때에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수학 선행에 대한 기본 분량 합의를 못 본 현재로서는 매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만 접수했다.

그리고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도 모를 수학 선행 숙제 때문에 경험을 미뤘다가 영영 그 타이밍을 놓쳐 더 큰 기회를 잃을까 봐 걱정하기로 했다.


육아에 답이 없다는 말이 진리 같다.

그러나 답이 없다고 모범 답안을 미리 정해 놓고 그 답안대로 하지 않는다고 다그치는 우를 범할까 봐 두렵다.

아이 하나하나 색깔이 다른 것처럼 일단 그 색깔을 선명히 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무지개 빛으로 뿌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성공 공식이 판치는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당분간 아이의 호기심만 바라보는 부모가 되어보려 한다.


그 마음이 어려워지면 다시 노트북을 열 것 같다.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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