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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Nov 07. 2022

공부 말고 인생 선행을 해보자

너무나 다른 두 자녀가 엄마에게 주는 교훈

둘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수학 선행은커녕 학원도 안 다니려 하여 답답한 마음에 올초에 브런치에 글을 하나 썼던 기억이 있다.


https://brunch.co.kr/@m-claire/39


벌써 7~8개월 전이었구나.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목표도 없이 학원을 안 다니려니 자기도 눈치가 보였는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더라.


"엄마, 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디션 보게 해주세요"


두둥...

최대한 긍정적인 표정을 지어줬으나 이미 머릿속에서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뭐? 배우?! 그것도 재능이 있어야지, 학원 가라니까 뜬금없이..? 나참!'

'아니, 다른 집 애들은 학원도 잘 다니고 선행도 잘하는데 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그래서 아주 고급지게 가공된 언어로 아이에게 물었다.


"배우라는 꿈도 좋은데, 지금 너의 본분은 학생이니 일단 중학생으로서 학교 공부에 어느 정도 적응한 후에 연기에 도전하면 어떨까?"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날카롭게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엄마 책에는 중고등학교 때 다양한 경험을 하라면서 저한테는 왜 공부부터 하라고 하세요?"


또 두둥...

작년에 엄마가 출간한 책을 아이가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내가 내 발목을 잡았구나~



덕분에 아이는 차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에 소재한 연기학원에 주 2회나 다닌다.

하루는 내면 연기, 하루는 뮤지컬 수업을 위해 거기까지 간다.

밀리는 대치동 학원가는 길이 그리울 정도로 그곳을 오가는 시간이 버겁다.


하지만 수학 학원과 달리 수업마다 잔다고 피드백 전화 오는 일은 더 이상 없었고 아이도 내심 재미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학업성취도가 높은 편인 큰애와 비교되지 않고 미운 오리 새끼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멋진 백조가 된 기분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연기 선생님의 피드백은 의외로 좋았다.

엄마가 모르는 진지함을 연기 수업에서만큼은 보이나 보다.

선생님은 수업 내내 칭찬을 하시는지 아이는 연기 수업을 위해서는 곧잘 하던 지각도 줄여가고 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정진하는 것은 보기 좋다.

그러나 소위 꽂힌 것만 파고드는 것의 위험도 간과하기 싫었다.

오히려 원하는 목표를 위해 하기 싫은 것도 어느 정도 감내하는 인내성도 갖추길 바랬다.

기승전'수학'인가?!


"혹시 예고를 가고 싶니?

중학교 내신이 중요할 수도 있으니 내년 수학 진도 좀 해두자,

내년부터는 중간 기말 시험을 보잖니~!"


나 역시 아이의 꿈과 결부시켜 수학 공부 의사를 은연중에 떠봤다.

아이는 또 한 번 깊이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뗐다.


"그럼, 주 1회만 가겠어요.

그러나 학원에서만 풀 거니까 숙제도 없어야 해요."


순간 욱 하는 감정이 치고 올라왔으나 반년 전, 참지 못하고 죄다 끊어버렸더니 정말 그간 수학 한 문제 푸는 모습을 본 적 없었기 때문에 대의를 위해 꾹 참았다.

'뭐야? 엄마를 위해 공부해 주는 게냐?! 그냥 때려치워!'라는 말이 입술에서 나가지 못한 채 억지 미소만 더욱 괴기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한편 상대의 니즈를 바탕으로 '딜(deal : 거래, 협상)'을 잘하는 아이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그래. 학원에 말해둘게."


사실 더 큰 딜이 있었지만 차마 글에 담지 못하겠다.

승전의 기쁨으로 둘째는 주 2~3회가 기본인 수학 학원에 정말 주 1회만 가며 그 시간만큼은 졸지 않고 열심히 푼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반면 첫째 아이는 상대적으로 학습 성취도가 좋아 얼마 전부터 자사고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순탄하지 않다.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보다 늘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어느 날 자사고 도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그만두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했다.


우물쭈물 제대로 답을 못하는 모습이 점점 엄마를 달궜다.

차라리 자신의 성격과 공부스타일이 자사고에 안 맞아 준비를 안 한다고 말하면 흔쾌히 OK 했을 것이다.

상담 자격증이 있는 나는 큰애의 깊은 마음까지 쑤욱 들어가 보고 결국 원인을 알아냈다.

당장 눈앞에 올라야 할 산이 너무 거대해 보이기도 하고 떨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 운 좋게 합격하더라도 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등 결국 자신감 문제였다.


순간 그렇게 한심해하고 비교하며 혼냈던 둘째가

 떠올랐다.

비록 학업성취는 좋지 않지만 자신이 정한 목표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던 흔들리지 않고 필요하면 협상도 며 굳건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둘째 아이의 특징이 처음으로 장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내가 학업성취를 위해 너무 소극적인 아이로 키운 건 아닐까?

자신감을 올려줘야 할 부모가 오히려 멀리 바라보려는 아이를 근시안으로 바꾸려 했나?

혹은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어떠한 도전도 겁나게 만든 우를 범한 건 아닐까?

엄마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혹시 나의 표정과 몸짓에서 아이들은 엄마가 괜찮지 않다는 뭔가를 캐치한 걸까?


순간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고 뭔지 모를 반성과 후회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육아와 교육 방향 각도를 조절하여 조금 더 먼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학원 다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목표를 가져보는 그 의지에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연기 배우겠다는 거 아니냐고 핀잔 줄 일이 아니었다.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요즘 K문화 열풍에 연극영화과 가려면 경쟁률이 높아져 성적도 엄청나게 좋아야 한단다.)


더 나아가 청소년의 부모는 언행일치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 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 예측을 맞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과정이 자주 반복되면 사실이든 아니든 부정적 오해를 고착화시켜 나중에는 그 갭이 너무 커져 부모가 억울할 수도 있으니 자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도전이 합격보다 멋있다'는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내 불찰이다.


아이가 둘인 게 다행이다.

하나였다면 모든 아이가 그런 줄 알았을게다.


시키는 것은 웬만큼 다 잘하지만 너무 경쟁 속에서 자라서인지 자존감이 무척 낮은 아이,

또 한 명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아이.

두 아이의 성향이 매우 극과 극이라 잘 섞고 싶지만, 그것도 답이 아닌 것 같다.

그 특색이 다 사라질 테니까...


자녀가 몇 명이든 그 아이만의 재능이 있다.

특히 부모는 아이들의 재능끼리도 비교하지 말며 각각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는 것이 정답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교과서적인 지침이 왜 나에게는 그토록 힘들까...


아마도 못하는 것을 끌어올리려고만 하니 늘 아이가 부족보였나보다.

그 부족해 보였던 아이가 글쎄 지난주 국기원 품새대회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받았다.

중학생이 되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태권도만 하냐고 핀잔을 주었던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영상을 찍으며 대견해했다.

그동안의 민망함과 미안함은 조용히 숨긴 채...


아이를 키우며 나도 자란다.

초등 학부모 때보다 중등 학부모가 되니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내년 고등 부모가 되면 또 다른 배움이 있겠지...


매일 소리 지르고 반성하며 부모 자녀 간 역동 속에서 우리 가족은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간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있는 엄마임에도 '엄마니까' 좋아해 주는 내 강아지들이 새삼 고맙다.


"얘들아,

너희들 너무 멋지고 사랑스럽단다.

그리고 그 어떤 크고 작은 도전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실패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해봐.

결국 살다보면 문제해결력이 가장 중요한데, 위험하거나 나쁜 짓이 아니라면 청소년 때 인생 선행하듯 뭐든 연습차 경험해보는 건 필요한 것 같아.

선행 공부보다 경험이 먼저라는 말... 진짜냐고?

정말 정말 정말이야!"


m.Claire.


kmarius@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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