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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Jan 22. 2023

무섭다는 중2병을 피하는 방법으로

육아 방식에 정답은 없다지만

큰 애가 보습학원을 다니며 고입을 준비할 때 둘째 아이는 배우를 꿈꾸며 선행 학원을 화악 줄였더랬다.


https://brunch.co.kr/@m-claire/54


줄여주었던 영어(주 1회) 학원, 수학(주 1회) 학원에 잘 적응하나 싶었으나 역시나, 졸음귀신을 이기지 못한 채 모두 그만두었다.

꿈만 같던 중1 자유학년제가 끝나고 올해 중2부터는 난생처음으로 내신 시험이라는 걸 본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 마음만 졸여온다.


"너 세 달 후에 중간고사를 볼 텐데, 그래도 이번 학기 수학 문제집은 한 번 풀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니.. 네가 알아서 하겠다면서 몇 달째 수학 한 문제도 본 적이 없잖니. 네 친한 친구들은 다들 고등 수학 들어간다고 난린데 넌 불안하지 않아? 자극되지도 않고?"

"그런 거 전혀 자극 안되고요,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오히려 자극돼요. 그만하세요!"


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대화가 오가며 둘 다 심통 내며 각자 방으로 가버린다.

'그래.. 원하는 연기 수업을 하니까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래도 꿈을 위해 나아가는 중이니 참자.'


pasja1000@pixabay


2023년이 시작되기 꼭 일주일 전, 작은 애는 연기 수업마저 받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두둥.. 뭐시여?!

그나마 연기 수업이라도 주 1회 받는 걸 안심 장치로 걸어두고 영어 수학 모두 손 놓고 있었는데 중1 모두 날린 지금에 와서 뭐라고?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유는 더 가관이었다.


"연기 수업을 받지 않는다고 배우 꿈을 접은 건 아니거든요? 배우 할 거예요. 그런데 그 수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아직 중학생이 감당하기에 책 읽고 감정선 살려서 독백하며 1:1 수업을 하기에 조금 재미없고 지칠 수 있다고 하신다.

쉽게 말해서 아직 배우에 대한 간절함도 없고 그 난이도를 극복하면서 에너지를 사용하기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세상천지에 많다는 것이다.


동시에 아이는 베이스 기타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 소리?!

학생이 자신의 본분으로 해야 할 공부는 전혀 안 하고 그저 보내달라는 학원이 기타?


혹자는 기타 학원 하나쯤 보내주는 게 뭐가 힘드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이미 태권도 시범단이고(=주 5회를 태권도에 간다는 뜻), 그것도 모자라 프랑스 무술 수업과 킥복싱 수업도 하고 있으며 학교 방과 후 통기타 수업까지 받고 있다.


시간을 쪼개어 영어, 수학을 가야 할 예비 중2 학생이 다른 예체능을 더 늘리겠다니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주여~ 제가 이 아이를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매우 난감해하고 아이의 제안을 무시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이 연기 선생님이셨던 한예종 입시 전문 선생님께서 우문현답을 주셨다.


"어머니, 제가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뭐든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건 매우 바람직한 것이더라고요. 오히려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가 정말 난감한 거지, 뭔가를 하겠다는 에너지는 정말 좋은 것이니 연기는 쉬더라도 베이스 기타 레슨은 상황이 되면 해주는 게 어떨까 싶어요."


내가 너무나 존경하는 분이라 귀담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신랑과도 충분히 얘기한 후, 공부가 아니더라도 일단 뭐라도 하겠다는 걸 지원해 보자고 했다.

대신 용돈을 모아 아이 돈으로 베이스기타를 구입하자고 했다.

신기하게도 신정을 지내는 덕분에 할아버지께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받아 아이에게 목돈이 생겼다.

그리고 꼭 그 규모만큼 베이스 기타를 구입하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또 있었다.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현대무용이나 발레를 하고 싶다고 한다.

게다가 보컬 레슨까지 요구한다.

하아... (우린 재벌이 아니란다)


결과적으로 기존 학원에서 베이스 기타와 발레 학원이 더 추가되었고, 스스로 (비싼) 영어학원을 선택하여 부모님의 지갑을 반강제적으로 홀쭉하게 만들어버렸다.

첫째 아이도 학비에 기숙사비에 벌써 헐빈해졌는데 둘째 너마저...

(마치 결혼할 때 대형가전 혼수 준비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일단 베팅을 했다.

공부가 아닌 오직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 지원해 주는 양육방식에 말이다.

하고 싶어하는 분야를 청소년기에 충분히 경험하게 하는 것.


나의 깊은 빡침과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 히스토리를 모르는 주위 엄마들은 그저 내가 대단하다고 혀를 찬다. 아이 관심사를 모두 지원해 주는 좋은 엄마라나...

절대 절대 아니다.

그저 무시무시한 중2병을 스무스하게 넘기려는 차원에서 이 방법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사실 사춘기가 심하게 왔던 큰 애와 1~2년간 대화가 없었더랬다.

결국 無대화 속에 생기는 서로의 오해가 문제였고, '대화'라는 것이 중2병 수위를 낮추는 데 매우 효과적인 약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즘 둘째가 점점 말 수를 줄이는 것 같아 선제적 방법으로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Victoria_Watercolor@pixabay


매일 밤마다 침대에 걸터앉아 1~2시간씩 베이스 기타를 둥둥거린다.

방학이라 오후에 기상하는 것은 다반사,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숙제도 미룬 채 기타를 튕기는 아이 모습은 정말 한 여름의 베짱이가 따로 없다.

백만 가지 잔소리가 입 속을 맴돌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문을 닫아준다.


아직 겨울방학이 한 달도 더 남았다.

그만큼 나는 매일 수양하는 기분이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스탠스를 바꿀 때마다 답답한 심정을 브런치에 쏟아내며 감정을 정화하려 했던 것 같다.

언제 또 이 주제로 사무친 심정을 토로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세팅된 일정과 마인드로 정진해보려고 한다.


우리 베짱이가 첫 중간고사를 보는 날 상상도 못한 추운 겨울을 느끼고 수학책을 펼쳐보려나?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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