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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Mar 17. 2023

엄마의 봄날 아이의 봄날

중2 딸내미, 옆집 아이라 생각하자

큰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기숙사로 간 뒤 나의 모든 관심은 어쩔 수 없게도 작은 애에게 집중됐다.

그것도 중2라는 굉장히 걱정되는 학년이 되면서 개학 첫날부터 엄마를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두발 자유화가 되면서 우리 아이는 머리끝을 샛노랗게 하고 다니며 귀도 뚫었다.

나의 중학생 시절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행색이다.

특히 등교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면 꼰대 같은 사고가 또 발동한다.


"너의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

어떤 학생인지 모른 채 네 머리 색깔과 귀걸이를 본다면 선생님들이 널 어떻게 보시겠니?

제발 학기 초에는 좀 튀지 말고 성실함부터 보이라고..!"


성실함이란 지각하지 않는 것, 과제 제때 제출하고 대충 하지 않는 것,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것, 더 나아가 내신 성적도 좋을 것. (음.. 성적은 성실한 태도와는 좀 별개이긴 하다..)


아무튼 아이의 본성부터 어필된 후 색안경을 낄 수 있는 외모 부분이 그다음 보이길 바라는 엄마 마음이다.

그러나 아이는 가자마자 중2임을 바로 드러냈다.




"엄마! 나 학교 정식 밴드부에 가고 싶어요.

통기타로는 경쟁력이 없으니까 제일 경쟁률이 낮은 베이스 기타로 지원할테니 레슨받게 해 주세요!"


아이는 베이스 기타 레슨을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에 3월 초 오디션을 봤고 그만 합격하고 말았다.

덕분에 시도때도 없이 기타를 둥둥거리는 베짱이 라이프는 더 가속화되었다.

새벽 2시까지 치다가 지쳐 잠드는 반복적인 생활에 혼내기도 타이르기도 하며 정시 기상과 학습에 푸시를 가했다.


"이제 중2부터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보잖아.. 공부는 도대체 언제 시작할 거니?

이번 겨울방학 내내 수학 한 장도 안 풀어보고 학원도 안 다니고.. 너 자신 있어?!"


말로는 알아서 잘한다 했지만 동네 앞 작은 수학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 보고 폭망하고 말았다.

작년 중1 수학문제도 거의 다 틀렸다는 결과를 말씀해 주시는 원장님 얼굴을 차마 보지도 못한 채 죄인처럼 함께 듣고 있었다.

심지어 수학학원 다닌 이틀 째 집에서 잠들어버려서 전화도 못 받고 아이가 안 온다는 원장님의 너털웃음을 전화 너머 듣는 그 심정.


영어학원 역시 다닌 지 한 달만에 아주 멋들어진 피드백을 받았다.

"어머님~ 아이가 수업 시간을 무척 즐겨요~ 그런데 숙제를 해온 적이 거의 없어요.. 아하하하하"

수업 시간을 즐겼던 이유가 있다.

재미있는 얘기나 추임새를 던지면 다른 아이들이 너무나 재밌다고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뭐야.. 하라는 숙제는 안 하고 공부 시간에 애들 웃기러 가?'


여러 사건으로 인해 중2가 된 3월 초부터 아이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기타 치지 마라, 12시 전에는 자라, 아침에 늦잠 자지 마라, 논다고 늦게 자고서는 졸리다고 낮잠 자지 마라, 낮잠 잔다고 학원 늦지 마라, 숙제 좀 해라...


아이의 눈빛 점점 매섭게 변해갔고 나의 잔소리 데시벨도 득음을 한 듯 높아만 갔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집에서 무척 가깝다.

지나가다 보니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아이들이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운동장을 빙빙 돌고 있었다.

저 멀리 우리 아이가 보인다!

머리 색깔 때문에 구별이 너무 쉽다.


아이는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며 걷다가 다른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신나게 웃는다.

이 친구 저 친구 하이파이브하며 정말 해맑게 깔깔 웃는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 웃음이다.

쏟아지는 봄빛에 아이의 밝은 표정이 더욱 화사해 보여 순간 울컥했다.

밖에서는 저렇게 환하게 웃는 아이였네...


갑자기 아이에게 늘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왔던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뭘 해도 "응" 보다는 "안 돼"가 많았다.

"넌 도대체 왜 그러니!"라는 수식어는 늘 붙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단 나만 그랬을까 싶었다.

학원에서, 학교에서는 어떨까...

각자의 재능을 알아봐주기는 커녕 꿈 많은 청소년에게 줄서기 잣대를 들이밀며 주눅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외부에서 그런 부정적 피드백을 받는다면 적어도 엄마만큼은 아이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대했어야 하지 않았나 잠깐 반성했다.

그리고 한겨울만 같던 아이와 나의 대치 상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봤다.


아이의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음... 음...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는 그냥 안아줘 봐야겠다.

그리고 같은 기온에서 따스한 봄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봐야겠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잠시 거두고 꼭 안아주며 온도를 맞추면 그 온기에 어느 순간 아이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나 역시 한 두 번 하다가 내 감정에 지쳐 도끼눈으로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엄마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꾸 욱할 때마다 그날 운동장에서 봄빛보다 더 밝고 행복하게 웃던 아이를 떠올려보리라.

엄마의 봄날과 아이의 봄날을 같은 자리에서 느끼기를.


m.Claire.


Petrucy@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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