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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Jun 19. 2023

기말고사 스트레스 처방전

압박감만으로도 지치는 고등학생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 결과에 충격을 받은 아이가 기말고사는 잘 보겠노라 다짐했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께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씀드렸단다.


기말고사가 2주도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아이가 이중 부담을 안고 카톡을 보냈다.

평소에는 카톡을 확인도 안 하는 무심한 아이다.

뭔가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엄마, 기말 준비를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어요. 수행평가가 너무 많아요.."

"그래? 2주도 안 남았는데 아직도 시작 못했으면 어떡해?"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랬어요..."

"이번에는 공부 좀 하고 봐야 하지 않겠어? 중간고사 결과를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텐데.."

"하아... (담임 선생님께) 지난 시험 때는 공부 덜 했다는 괜한 말씀을 드려서 ㅠ.ㅠ"


아이나 어른이나 지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기 십상이다.

어른인 나도 똑같다.

하지만 또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나아지긴커녕 '~때문'이라는 원인이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게다가 ~까지' 겹쳐 더 힘들어진다.


이렇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는 이중 삼중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나의 성향상 "자업자득이지, 그만 찡얼대고 네가 알아서 계획 세우고 그렇게 걱정할 시간에 공부를 해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좋은 엄마 모드로 변신하여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2주면 충분해~ 너의 집중력을 믿어 봐!"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넘어야 할 어떤 산 앞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굉장히 큰 편이다.

사람마다 각자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의미 있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심리적 지지도 스트레스 완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경우 아닌 척 하지만 엄마의 반응을 매우 살피는 경향이 있다.

다음은 첫 중간고사 직전 아이의 대화에서 파악한 시험 압박감 해소 패턴이다.


1. 먼저 밑밥을 깔아본다.

 - 엄마, 나 이번에 공부 충분히 못했어요.

 - 9등급 나올 것 같아요.(현재 내신 체계상 가장 낮은 등급이 9등급)

-->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을 미리 맛보려는 의지 같다.


2. 컨디션 핑계를 대본다.

  - 코가 꽉 막혀서 머리가 정지된 것 같아요.

  - 열이 나서 공부를 못하겠어요.

  - 잠을 이길 수가 없어요.

--> 체력적 한계가 낮은 성적의 이유로 통할지 간 보는 것 같다.


3. 대놓고 논다고 선포한다.

  - 엄마, 다른 애들은 다 공부하러 갔는데 난 안 갔어요.

  - 왜 이렇게 공부가 안 되죠?

--> 글쎄..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엄마의 반응을 여러 각도로 확인한 아이는 아마 자신만의 방법을 총동원하여 시험준비를 했을 것이다.

결과는... 뭐 뻔했다.


이제 기말고사다.

아이는 간 보는 질문을 더 이상 던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주 간단한 이미지 한 장이 카톡으로 왔을 뿐이다.



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에게 정말로 오랜만에 온 카톡인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보아하니 학원도 매번 빠지고 숙제도 안 해가는 것 같은데 그 잔소리를 이 시점에서 하는 게 맞나 잠깐 고민했다. (할 것 하나도 안 해놓고 힘들긴 뭐가 힘들어?!)


문득 이쯤 되면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엄마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줄줄 늘어놓고 싶은 말들을 다시 입 속으로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찾아보았다.

골라놓은 사진에 한 줄 삽입해서 무심하게 보내버렸다.


"대충 해~~~~~"



한동안 아이와 나의 카톡에는 정적이 흘렀다.

예상 밖의 엄마 반응이었을지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뭔지 모를 자유함을 느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충 하라는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잠시나마 아이의 기말 압박을 줄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동시에 나 자신도 아이의 스트레스 관리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흠, 이 방법 나름대로 꽤 괜찮은데?! ^^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심적 지지는 이게 최선인가 하노라.

이 처방에 대한 기말고사 결과가 궁금해진다.


쿨한 엄마 코스프레,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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