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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Dec 19. 2023

아이의 그림

도터스 갤러리 #5. 그리고 있는 너의 마음이 어땠을까

꼭 1년 전이다.

고입을 치르러 전주에 가는 날, 17년 만의 폭설로 기차도 버스도 모두 굼벵이었다.

게다가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 새벽 6시 30분에 택시가 안 잡혀 (면접 때문에 입은) 가을 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무릎 높이 눈을 헤치며 학교까지 걸어갈 뻔했다.


하마터면 시험을 못 치를 뻔했던 악천후가 경쟁률보다 더 아찔했던 그날, 기적처럼 학교에 도착하여 시험을 치른 후 바로 서울에 오려고 전주역에 도착한 그 순간.

바로 코 앞에 방금 시험을 봤던 그 고등학교 잠바를 입은 남학생이 캐리어를 끌며 우리 앞을 걷고 있었다.


원래 운전면허 시험 전날 운전면허증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러운 것처럼, 그 남학생에게 영롱한 아우라가 보이며 우리 둘이 이구동성으로 "아.. 부럽다! 저 옷 정말 예쁘네.. 입고 싶다!" 재잘대며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1년이 지나 아이는 신입생 면접날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물론 그 학교 잠바는 당연히 구입했고 서울에도 그것만 입고 온다.

그리고 현재 중3 아이들의 면접 날 교내 안내 봉사를 한다고 집에 오지 않았다.


나와 함께 보았던 그 선배만이 전부가 아니었나 보다.

학부모는 교문 앞에서 기다렸고 아이만 교문을 통과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는데, 아마 시험 보는 내내 다른 선배들의 안내 역시 멋져 보였음에 틀림없다.


때그림



1년이 지나 그 자리에 그 학교 교복을 입고 안내하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어렵게 들어와서 또 어렵게 겨우 적응했는데 1년 내내 성적 올리기는 정말 최고로 어려웠으니 말이다.


후배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너희, 왜 여기 오려고 해?"라며 현실은 냉혹하다 얘기하고 싶을까?

아니면 "정말 잘 왔어~ 성적을 떠나 독립적이고 행복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야! 웰컴~"이라고?


아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수업 시간에, 학원에서, 집에서 조용히 혼자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많이 애용했던 취미다.

그래서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면 그림 내용보다는 그걸 그리며 떠올렸을 아이의 생각에 좀 더 마음이 쓰인다.


카톡 줘서 고마워, 내 새끼~


그동안 학교 생활이 빡빡했는지 최근 그림을 거의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봉사 활동을 하며 뭔가 생각에 잠겼었나보다.

가뭄에 단비처럼 쓱쓱 그린 그림을 받은 어미는 왜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


아마도 그리는 시간만큼은 아이가 힐링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을 거라 믿고 싶은 건 아닐까.

덕분에 아이의 다섯 번째 갤러리 글도 오랜만에 발행하고 말이다.


곧 방학하고 집으로 온다.

그리고 기나긴 겨울 방학, 아니 겨울 특강이 시작된다.

학기만큼이나 쉼 없는 2학년 준비를 계획했지만 얼마나 실행될지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 들어올 신입생을 보며 초심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기를...


아이는 그림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나는 아이의 그림과 함께 글을 쓰며 아이를 헤아린다.

그래서 끄적이는 아이의 그림이 더없이 소중하다.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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