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셀린 송(Celine Song)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는 잔잔하지만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이제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유태오' 배우와 '그레타 리'가 남녀 주인공으로 열연했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무감각해지기 쉬운 일상의 생각을 환기시키며, 속 깊은 스토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인 '해성(유태오 분)'과 그녀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여자 주인공 '노라(그레타 리 분)' 그리고 노라의 현 남자친구인 '아서(존 마가로 분)'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영화는, 잔잔하지만 의미 있는 언어들로 다가와 우리의 생각을 전환시키는 강렬한 대사들을 담고 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가지 명대사 중, 오늘 다루어 보고 싶은 대사는 '결혼'에 관한 것이다. 결혼에 관해 수많은 명언이 있지만 근래 들어본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와닿았기에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결혼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며 묻는 해성에게 노라는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하게 대답한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의 화분에 심어진 것이 결혼이야
노라의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그간의 결혼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 화분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이도 싸워 왔는가! 얼마나 많이도 서로 생채기를 내며 자리 잡아 왔는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서로의 사랑의 크기나 깊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부부는 서로 결혼으로 한 화분에 담기기 전에, 이미 다른 어떤 화분에서 자라던 뿌리이다. 남편이나 아내나 본인 고유의 뿌리의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 화분으로 옮겨졌다고 해서 그 뿌리가 작아지거나 없어지지는 않는다. 서로의 뿌리를 보존하고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 서로의 뿌리가 편히 뻗어 갈 수 있도록 형태나 자리를 조절해 가며 조금씩 공간을 양보해야 한다.
가끔 내가 숨 쉴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내가 물을 빨아들일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뿌리를 함부로 뻗쳐대면 상대의 뿌리가 걸리고 만다. 그리고 걸린 뿌리를 떼어 내려고 몸부림치면 상대의 뿌리에 상처를 입힌다. 아니 가만히 살펴보면 나의 뿌리에도 상처가 나있다. 이렇게 서로 상처를 내다보면 누군가는 뿌리를 움츠리고 성장을 멈춘다. 누군가는 뿌리를 제멋대로 뻗쳐나가 안하무인이 된다. 때론 서로의 뿌리가 제멋대로 커져 화분이 깨어지고 만다.
결혼은 다소간의 '요령'과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
'요령'은 서로의 성향과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상대방 뿌리의 특성을 알면, 내가 피해줄 공간과 내가 차지해야 할 공간이 보인다. 그리고 서로 얽혀야 할 공간도 보이기 시작한다.
'인내'는 다소의 시행착오 서로 간에 참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이 보여도 실제 자리 잡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더군다나 얽혀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 번에 해내기는 어렵다. 서로의 기대를 다소 낮추고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배려와 사랑이다. 사랑의 힘이 인내의 시간을 견디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견디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다!
한 화분에 적절히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그리고 부드럽게 얽혀있는 서로 맞댄 뿌리, 그 조화로운 모습이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의 뿌리는 상대방을 넘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받치고 있는 형상이 된다. 두 나무가 한 화분에 든든히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