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소리
시냇물이 소리를 내는 것은 물속에 돌멩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들쑥날쑥한 돌멩이가 있기 때문에 시냇물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들쑥날쑥한 일상의 일들이 있을 때, 우리 인생도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여운학, '희망다운로드' 중)
오랜만에,
아름다운 소리를 실컷 듣고 왔습니다. 역시 피서는 바다보다 계곡이지, 이렇게 말하며 아내는 텀벙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꽤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계곡물이었습니다. 지리산 뱀사골계곡 근처에 위치한 자동차야영장 A16 데크였습니다. 도착하자 바로 옆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습니다. 물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물소리, 백색소음이라고 하던가요. 아내는 물속에 반쯤 잠겨, 여기 너무 좋다, 너무 좋다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시끄럽긴 하지만 타의가 아닌 자의로 돌아가는 엔진소리였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편안한 소음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거기에서,
물과 돌멩이에 의해 소리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딱딱한 돌멩이가 흐르는 물에 부딪치는 마찰음이 골짜기를 우렁차게 공명하고 있었습니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성격이 모났거나 둥글거나, 모여 있거나 혼자 있거나, 힘이 세거나 약하거나, 돈이 많거나 적거나 등 여러 형태의 돌멩이들이 음률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우열이 아니라 다양성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으로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소리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물속,
돌멩이들이 마치 사람들 같습니다. 돌멩이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가 계곡 같습니다. 시간이 물처럼 흐릅니다. 흐르는 세월이 사람들과 부딪칩니다. 크고 작은 일상들이 사건이 됩니다.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첩첩산중보다 도시의 소리가 더 요란하고 소란스럽습니다. 도시의 소리도 계곡의 소리처럼 음률과 곡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듣는 아름다운 음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은,
큰 산이 최고입니다. 산이 커야 물이 흐릅니다. 지리산 정도는 되어야 첩첩산들을 돌아 우렁찬 물이 흐르는 겁니다. 세상에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의 사물이 부딪치면 반드시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말없이 웃고 있는 사람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슬픈 소리가 납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주말의 시간도 깊이 들여다보면, 누군가 힘든 소리를 삼키고 있습니다. 참지 말고 소리를 내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소리가 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 줘야 합니다.
계곡 물 위로,
위로가 흐릅니다. '아래로'가 아니라 '위로' 흐릅니다. 위로.. 는 가라앉은 마음이나 기분을 위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말합니다. 즉, 기분을 업(UP)시키는 모든 기술을 '위로'라 하는 것입니다. 물이 위로가 되는 건, 흐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지금 내 발을 간지럽히는 이 물은 아까의 물이 아닙니다. 아까 그 물은 이미 흘러가 버렸습니다. 물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물과의 만남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살아갈 힘을 거기서 얻는 것입니다.
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사람도 흘러갑니다. 이미 흘러간 물과 시간과 사람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내 위로 흐르는 만남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떠나야 할 것들은 떠나야 하고, 만나야 할 것들은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떠남에 집착할 것인가, 만남에 집착할 것인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산도 한 삼십 년쯤 바라보아야 산이고, 물도 한 삼십 년쯤 바라보아야 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야 산도 보이고 물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 고단하면 바다건 산이건 물이 있는 곳으로 여행할 것을 권합니다. 가급적 고여 있는 물보다 흐르는 물을 추천합니다. 어느 큰 산 아래, 차갑고 많은 물이 흐르는 한적한 계곡이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둥 같은 물소리 옆에 누워만 있어도 말끔해지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가급적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서 보고, 가급적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