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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Sep 06. 2024

#36. 농구에 진심인 아들 키우기 7

: 귀한 움츠림

❚여름의 방황

“얼른, 아침 먹고 학교 가야 되지 않니?”

“오늘 학교 안 가?”

“응? 학교 안 간다고?”

“안 가도 돼?”

“응, 어제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어. 이제 보충 수업 안 간다고.”

“으~응..... 왜?”

“수업이 별 도움이 안돼!! 그냥 집에 있을래.”

“그래, 알겠어. 다음에는 당일 아침에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전날 미리 말해줘야 한다.”

“응”


아들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꿈쩍하지 않는다.

아침을 나 혼자 덩그러니 먹고 출근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아이는 혼자 집에 덩그러니 침대에 누워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기가 막혔다. 내 자식이 아닌 아이는 멋지게 가르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어떻게 가르칠지 도무지 방법을 알 수가 없다.      

1학기 중간고사와 6월 모의고사를 시작으로 아들의 방황은 여름 방학에도 이어졌다. 학교 보충 수업도 결국 그 날 이후로 가지 않았다.       


❚U.S. Air force Academy (미 공군 사관학교)

그게 아들의 현실 자각 타임인지, 방향을 잡기 위한 조정기간인지 아니면 사춘기의 방황인지 그게 무언지 정확히 구분도 되지 않지만, 그게 무엇이든 초여름부터 아들의 마음 속에 폭풍우가 시작된 건 분명해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 즘에 미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딸이 우리를 만나러 왔었다. 미국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영주(가명)씨의 딸은 우리 딸과 나이가 같다. 그리고 그 집 아들은 우리 아들과 나이가 같다. 미국 유학 첫 해 첫 달부터 영주씨 네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마지막 떠나올 때까지 나는 영주씨와 우리 딸은 그집 딸과 우리 아들은 그집 아들과 각각 친하게 지냈다. 그 집 딸은 공부도 꽤 잘하고 열정적인 편이었고 우리 아들은 그 집 딸과 성향이 비슷했다. 한편 우리 딸은 그 집 아들과 비슷했기에 영주씨를 만나면 서로 성향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고충을 나누며 더 친하게 되었다.      


  그런 그 집 딸이 올봄 미 공군 사관 학교에 합격하고 잠시 모처럼 모국 방문을 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그간 미국 생활과 합격 후기를 들었다. 물론 그 자리에 우리 아들도 참석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이 놀고 장난치던 그 누나가 이젠 멋진 미 공군이 된다는 사실에 아들도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우리나라의 공군 사관학교는 여전히 공부를 잘 해야 가는 곳이지만 미국의 사관학교는 공부 이외에도 운동도 열심히 해야 입학할 수 있다. 그 집 딸은 우리 아들이 농구에 빠진 것만큼 테니스에 푹 빠져있었다. 우리가 떠나오던 그 여름 테니스를 치느라 집에 밥 먹으러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도 여름 내내 농구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진학에 별 소용이 없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나라를 바꿨을 뿐인데 두 나라의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터널 속 한 줄기 빛

아들의 현실 자각 타임은 그 즘부터 시작된 듯 해보였다. 긴 터널 속에 갇힌 아들은 어떤 한 줄기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그 터널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걸음을 멈춤해버렸다. 아들은 마땅한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은 학업에 쓰일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발산하기 시작했다. 학업에 쓰였더라면 전교 1등이라도 할 듯한 엄청난 에너지를 아들은 농구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것 이외에는 아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없다는 듯이 여름 방학 내내 농구 연습에 몰두했다. 그 뙤약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들은 인근 체육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공원이라 매번 라이드를 해줘야 했는데, 비올 때만 빼고 거의 매일 갔다. 하루에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간 적도 많았다.     

 

비가 오는 날은 심드렁하게 집에 있었다. 핸드폰으로 농구 게임을 하기도 하고 온라인 서핑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기도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면서부터는 다니던 과학 학원도 중단하고 싶다고 하기에 중단시켰다. 누구는 새 학기 예습을 위해 학원을 추가로 다닐 법도 하지만 아들은 오히려 다니던 학원 수업을 그만두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아들에게 더 이상 공부하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것 같아 안 하기로 했다. 그저 느긋하게 긴 호흡으로 아들을 바라봐 주려 애를 썼다. 한 번씩 아들이 체육 분야의 진로를 생각하는 듯 해서 그 계통의 대학교 전공이나 입시정보를 전해주는 정도만 했다. 올봄만 해도 나는 체육 분야의 전공을 하거나 영문학을 전공하려는 아들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영어 교사인 나는 물론 나의 직업에 만족한다. 하지만 아들이 막상 교사를 하겠다고 한다면 기필코 반대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기껏 체육 교사나 영어 교사를 시키려고 그 멀리 미국까지 데려가 세상 구경을 시킨 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아들이 더 큰 멋진 꿈을 꾸길 너무너무 기대했다.      


하지만 방황을 시작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아들 나름의 꿈꿀 자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영어 교사라고 해서 아들에게 같은 일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거나, 취업의 문이 좁을 것 같아 체육 교사는 안 돼.’라는 식의 태도는 아들을 더 오래 그 터널에 가둬둘 뿐이라 생각했다. 터널 안에서는 어떤 빛이라도 한 줄기 빛은 있어야 한다. 비록 그게 터널의 끝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맞은 편의 기차가 비추는 빛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적어도 그게 터널의 끝이라 믿으며 달려간 기간만큼 앞으로 나아가게 될 테니까 말이다.


❚몸과 마음, 밸런싱

여름 내내 아들열심히 먹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운동을 했. 해가 있는 날은 농구장에 비오는 날에는 친구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 가곤 했다. 그 이외 집에서 학업이랑 관련된 일은 전혀 하는 모습을 볼 수 었다. 여름 내내 아들은 그저 몸 키우기에 열을 올리며 세월을 보냈다.


어느 저녁 딸이 스파게티 소스 병 못 열고 낑낑 거리고 있으니 아들이 옆에서 밥 먹다 말고 와서 단번에 그 단단히 닫힌 두껑을 열어줬다. 아들의 어깨는 한껏 으쓱 했으리라.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 “멋지네. 고맙다.”     


몸 키우기를 하며 아들은 어쩌면 마음을 키우는 중 이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부분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학업으로 점점 작아지고 있는 자기를 그렇게 가만히 두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아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키우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몸을 키우며 자신의 존재감도 더불어 키우려 애쓰는 중이었으리라. 이제는 아들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기 위 스스로 준비해야 할 때임을 서서히 느끼고 있다. 문과 이과를 선택하는 것도 결국 아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권한을 이양해 주었다. 진작에 그래야 했을 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놓아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게 천만다행이다.     

 

❚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 주에 아들은 여느 때처럼 학원을 마치고 농구를 하러 갔다. 그러다 그만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다행히 골절상은 아니지만 당분간 농구를 쉬어야 할 만큼 허리 부상을 입었다. 당분간 운동도 못 하게 되었다고 해서 아들이 그 시간에 공부라는 걸 할 리는 없다. 역시나 아들은 여전히 공부는 하기 싫은 지 자신의 제2의 취미 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들은 한동안 멀리하던 책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얼른 학교 가자.”

“잠깐만, 엄마 그 책 어디 갔어?”

“무슨 책?”

“저번에 내가 읽다가 만 책, <총,균, 쇠>”

“글세, 아빠가 가져갔나? 아빠한테 물어보고 오늘 가져다 놓으라 할게.”

“오늘 그거 읽으려 했는데....”

“일단, 다른 책 하나 가져가, 늦었다.”     


여름 내내 그렇게 에너지 발산을 한 후에서야 비로소 아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할 힘을 얻는 듯 해 보였다. 여름 내내 운동하느라 멀리했던 책을 가까기 하기 시작했다. 새 학기 시작하며 등교할 때는 꼭 읽을 책을 하나 씩 챙겨가곤했다. 문제집을 풀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아들은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책은 대충 이런 책들이었다.    

  


 - <Killing Mocking Bird> by Harper Lee

 - <Giver> by Lois Lowry

 - <Can't Hurt Me> by David Goggins

 - <Gun, Germ, Steel> by Jared Diamond     


올봄까지만 해도 주로 Rick Riordan의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있던 아들이 요즘 부쩍 현실적인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총, 균, 쇠>를 영어 원어로 읽으려던 계획은 무산이 되고 대타로 아들이 들고 간 책은 David Goggins가 쓴 자서전 <Can’t Hurt Me>였다. 어려운 유년 시절을 극복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을 한 주인공이 삶의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이 잘 묘사 책인 듯 했다. 아들은 흥미를 느꼈는 지 며칠 만에 그 책을 제법 빠른 속도로 완독했다. 그 책에서 인사이트를 좀 얻었기를 기대할 뿐 무뚝뚝한 사춘기 아들에게 시시콜콜 그 책이 어땠는 지 물어 보지도 못 했다. 다행히 간간히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해주기했다.   <앵무새 죽이기( Killing Mocking Bird)>는 우리가 살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아들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달려보기로

그렇게 책만 주구장창 읽는 줄 알고 있던 어느 날 아들이 영어 자습 시간에 작년에 친 영어 모의고사를 혼자  한번 쳐봤는데 만점이었다고 자랑을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은근히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후 문자로 나에게 물어왔다.      



아들: 엄마, 나 오늘부터 과학 학원에 다시 다녀도 되?

나: 응.

아들: 알겠어. 그럼 오늘 학교 끝나고 과학학원 갔다가 집에 간다.

나: 그래.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물어본들 대답할 아들도 아니고 괜히 물었다가 대화가 산으로 갈 것 같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급기야 제는 한의원 진료를 보고 집에서 쉴 줄 알았던 아들이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에 가서 야간 자습을 하겠다고 태워줄수 있냐고 묻기까지 했다. 너무나 기쁜 나의 마음이 들킬세라  최대한 무심한듯 그러마 했다.


아직은 섣부른 기대일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의 방황이 좀 끝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들은 이제 새로이 그려 볼 자신의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게 아닐까?하는 기대감이 자꾸 차오른다.  


아들: 엄마, 사촌 형(더 좋은 의대를 가고자 재수하는)은 공부가 재미있을까?

나: 글쎄, 나라면 싫을 것 같아. 그 힘든 고3 공부를 다시 하는 거고, 게다가 의사를 하기 위한 거면 나라면 절대 못 할 것 같아.

아들: 그래도 돈 많이 버는 직업이라 모든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잖아.

나: 엄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그게 밥벌이가 되면 제일 좋겠어. 비록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라도 돈을 많이 못 벌면 많이 안 쓰고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하면 되는 것 같아.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아들이 나의 말이 이제는 진심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봄부터 여름까지 아들의 방황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갈팡 질팡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것이라것을.

아들도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탐색해 볼 자유,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애써볼 기회,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타고 난

존귀한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아들 덕분에 크는 엄마

집 앞 강변 야외 농구장도 드디어 완공이 되었다. 3년 전 국민 심문고에 요청의 글을 쓴 이후 많은 노력 끝 드디어 며칠 전 농구대 설치까지 완공되었다. 8월 말에 완공이 될 거라 지난 두 달 내내 손꼽아 기다렸다. 아들에게 멋지게 엄마, 아빠 덕분에 이게 만들어 진 거라 말하며 아들에게 맞수를 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계획은 아들의 허리 부상으로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어느새 동네 남학생들이 와서 농구를 즐기고 있다.    


‘나 덕분에 여기 농구장에 생긴 거야 나한테 고마워 해야해. 알겠니?’ 라는 말을 불쑥 가서 하고 싶었지만 그먼 발치에서 흐뭇이 바라만 볼 뿐이다.


 비록 우리 아들은 부상으로 그 완공된 농구장에서 플레이는 못 해보았지만 다른 농구쟁이들이 멋지게 운동하는 걸 보는 그 기분도 나쁘진 않다. 민 심문고에 제안을 한 이후 소음 발생의 민원이 생길거라며 제안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수포로 돌아갈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시의원에게 이메일을 쓰고 시청에 제안 글을 다시 올리는 등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관철되었다. 물론 우리 부부가 애쓴 것도 있지만 일련의 과정에 하나님의 임재에 감사다.

    

❚귀한 움츠림

이제 시작된 2학기엔 아들이 얼마나 더 훌쩍 클까? 몰아치는 현실의 공부를 아들이 어떻게 헤쳐나갈 지 이제는 불안함이 아닌 대견함과 감사함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무더운 여름 도무지 방향을 찾지 못하던 방황의 시간. 아들에게 여름의 시간들은 아주 귀한 움추림이었다. 이제 선선한 가을이 불쑥 다가왔다. 아들은 나름의 방향을 찾은 듯 경쾌한 발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듯 하다.  


먼 훗날  방황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아들을 키우는 현재의 나를 되돌아 보며  ‘그 때 내가 참 지혜롭게 대처했다’고 흐뭇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새 묵직한 여름 공기가 선선한 가을 바람으로 한결 가벼워졌다. 내 마음도 그렇다.  내 마음에도 그런 가을 바람이 불어줘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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