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의 싸움
❚고등학교 영어 공부는 다름 아닌 나와의 싸움
고등학교 영어 공부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중학교 때 전혀 하지 않은 독해 공부를 고등학교 입학해서 부랴부랴 하느라 영어는 언제나 나의 마음에 제일 부담인 과목이었다. 요즘 학교 영어 시험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역을 모두 다 평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단연 읽기 위주였고 학교 영어 시험은 대부분 읽기 영역이었다. 게다가 요즘 수능영어는 45문제 중 17문제가 영어듣기지만 그 당시는 8문제 뿐 이었다. 결국 고등학교 영어 공부는 무조건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집중했어야 했다. 지금도 영어 공부 중에서 제일 재미없는 파트가 읽기인데,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쭉 그것만 해야 했으니 얼마나 죽을 맛이었던가! 더군다나, 망망대해를 떠도는 작은 배처럼 앞뒤 분간도 안가는 그런 상황에서 그저 묵묵히 노를 젓기만 하는 것은 참 죽을 맛이었다. 나중에 대학교에 가서 영어공부의 즐거움과 참 맛을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영어 공부는 그저 그렇게 읽고 또 읽는 게 다 인줄로만 알았다.
❚너희가 성문기본영어를 알어?
그 당시 중3 졸업생들 사이에는 인근 단과학원에서 겨울 방학 특강으로 성문기본영어를 수강하는 게 필수처럼 여겨졌다. 남들이 하니 뭔가 싶어 나도 성문기본영어책을 한 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어도 어려워 죽겠는데, 한자로된 문법 용어에 대한 깨알 같은 설명과 빼곡히 들어찬 연습문제에 한 눈에 그만 질려버렸다. 나는 대안으로 맨투맨 기본이라는 영문법 책 시리즈를 인근 단과학원에서 배우기로 했다.
문장 형식, 문장 성분, 품사, ~적 용법, 생소한 문법 용어가 참 낯설었다. 지금 기억에도 한자로 된 영어 문법 용어는 그 쓰임과 매치하는 게 참 어려웠다. ‘to 부정사’라는 말은 왜 부정하다(not)이라는 말이 붙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수동태와 능동태는 도대체 무슨 생선 이름도 아니고. 현재분사, 동명사 뭐 이런 이름들은 도대체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같은 문법책을 거의 세 번 정도 통독해도 그런 문법 용어는 내 상식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해를 다 하는 건 포기하고 그냥 외우기로 했다. 그때 생긴 영문법 용어에 대한 반감은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독해공부: 리더스 뱅크 / 리딩 튜터
맨투맨 영어를 그래도 한 번 훑어보고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고등학교 영어에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월 첫 모의고사를 치고 난 이후 나는 나의 영어가 거의 바닥 수준임을 깨달았다. 완전 영어 초자인 나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날 이후 서점에서 리더스 뱅크 독해 문제집 시리즈와 리딩 튜터 시리즈를 구입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두 장 씩 풀기로 나와의 약속을 한 걸로 기억이 난다. 시간을 재면서 독해 해 보기도 하고 그날 부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단어공부: 엣센스 영어사전/프라임 영어 사전
당시에 영어 사전은 엣센스 영한사전과 프라임 영한사전이 사전 분야 베스트셀러였다. 언니가 엣센스 영한사전을 쓰길 래 괜히 난 마이웨이를 택하고 싶은 마음에 프라임을 선택했다. 독해 문제집에서 만난 새로운 단어를 종이로 된 영한사전에서 일일이 찾았다. 알파벳을 알고는 있지만, 매번 단어를 찾을 때면 또 처음부터 abcdefg를 입으로 흥얼거려야 했다. 웃픈 일이었다. 그렇게 한땀 한땀 장인 정신을 발휘하듯 새단어를 사전에서 찾은 후 단어 카드에 영어 단어와 뜻을 기입했다. 그리고 링으로 끼워서 보관했다. 그렇게 느려터진 단어 공부를 하다 보니 귀차니즘이 당연히 스멀스멀 생기곤 했다.
하지만, 영어 어휘력도 바닥인 상태였던 터라 어린 내 마음에 그런 귀차니즘에 넘어가면 더 이상 나에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귀차니즘이 찾아올 때는 ‘이 단어가 시험에 나올 거야’라고 되내였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그렇게 매번 마음을 다잡으며 나와의 싸움을 계속해 갔다. 그 덕분에 이제는 영어 사전 찾기가 나의 취미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정성들여 모아둔 새단어들을 눈으로 매일 반복해서 단어를 익혔다. 매일의 영어 공부는 전날 까지 만든 단어카드를 눈으로 훑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단어를 매일같이 까먹고 매일 같이 또 보고 한 덕분에 어휘력은 많이 향상된 것 같았다.
두꺼운 그 영한사전을 늘 가방 한 구석에 넣어 다녔다. 10분 버스 타고 20분을 걸어 등하교하며 그야말로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영어 단어 공부는 영어와 우리말 뜻 뿐 인 반쪽짜리 영어 단어 공부였다. 제대로 된 영어 공부법이 아니라는 걸 아는 지금으로선 그 시절 내가 참 안쓰럽기까지 하다. 행군하는 군인처럼 매일 그렇게 두꺼운 종이 사전을 짊어지고 등하교를 하며 기초 체력이 다져진 듯하다. 미국 유학 살이 때 나를 지탱해준 기초 체력은 아마 그때 길러졌을 것 같다.
❚영어성적은 계단처럼
3월 첫 모의고사에서 인생 최악의 영어 성적을 받았다. 고1부터 영어를 포기하자니 가야 할 세월이 너무 길었다. 한 번 해보자하는 마음에 시작한 영어 공부였지만 매일 같이 해도 영어 성적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글의 흐름 상 어울리지 않는 문장 찾기와 제목/주제 찾기 문제는 정답이 한 눈에 딱 들어오지 않았다. 독해 공부를 그저 줄 단위 해석하는 데만 급급했다. 당시 나는 그런 단락 글의 구조나 글 속의 작은 생각들 간의 관련성을 파악하면서 글을 읽는 훈련을 받지 못 했었다. 가끔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 비슷한 걸 가르쳐 주신 것 같았지만, 영어 시간에는 문법과 문장단위의 해석 위주의 수업이 전부였었다. 마을에 도서관이 없던 아주 시골출신이라 우리말로 된 책조차도 교과서외에는 읽은 기억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우리말이든 영어든 그런 고차원적 리딩 스킬은 있을 리 만무했다.
영어 독해력은 단기간에 겅중겅중 향상되는 능력이 절대 아니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영어 독해 공부를 하면서도 회의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해도 안 되는 건가?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 하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매일의 루틴을 지켰다. 이제까지 정리한 단어장의 단어들을 누가적으로 읽고 그 날 계획한 분량 만큼 글 읽고, 새단어를 종이 영한사전 찾아 그 뜻을 단어장에 기입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또 그렇게 반복했다. 달리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그 루틴을 미련스러울 만큼 계속 해갔다. 일 년 정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영어 성적이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계단식 영어 성적은 아주 느리지만 우상향을 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영어 공부의 재미 발견: 일본학교 교환 프로그램 (글로 쓰고 글로 답하기)
읽기, 단어공부, 그리고 문법 공부를 주로 하던 나에게 아주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땐가? 우리 학교가 일본의 어떤 고등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 학교에서 학생 20명 가량 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견학을 온다고 했다. 영어 빼고는 나름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 나는 그 일본 학생과 면담을 하는 자리에 뽑혔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행사 후반부에 갑자기 우리학교 학생과 일본 학생의 일대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는 거였다.
나에게도 차분하게 생긴 일본 여학생 한 명이 배정되었다. 그 간의 영어독해 공부로 나름 영어에 흥미와 자신감이 조금 생겼었다. 그런데, 이일을 어째? 우리는 영어랍시고 서로에게 뭐라고 했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우리는 연필과 종이를 꺼냈다. 우리는 글로 질문하고 글로 답했다. 멀쩡한 입을 두고 우리는 그렇게 글로 묻고 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했을 것 같지만, 피장파장인 상황이라 우리는 부끄러움도 몰랐다. 오히려 나는 그날 어렴풋이 영어 공부의 재미를 발견했다. 내가 영어로 다른 나라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영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