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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상 Apr 24. 2021

바다 건너에서 만난 깊은 좌절

그때 내 영혼이 찾아서 들었던 음악들

모니터 안에 붉은 글자로 선명하게 찍혀있는 $30.


왜 내 은행 계좌에서 30달러의 과태료가 빠져나간 건지 멍하니 앉아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32살, 이제 미국에 온 지는 햇수로 3년째. 하고 싶던 공부를 위해 유학은 왔으나 모든 것이 내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시스템, 불안한 신분, 너무 비싼 집세와 학비 등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에 허덕이고 있을 때쯤 은행 계좌에 뭔가를 잘못했는지 벌금이 30달러가 빠져나갔다고 쓰여 있었다.


뭘까. 뭘까.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그동안 쌓여온 좌절감과 답답함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오며 분노에 휩싸이고 있을 때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Personal Check, 미국에서 현금 대신 본인이 발행해서 돈을 보낼  있는 개인 수표. 이걸로 며칠 전에 공기관에 보낸 120달러. 기한이 아직  남아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벌써 빼간 것이었다. 은행의 잔고가 부족해서 나는 벌금을 맞은 것이었고. 당시에 일하던 리쿼 스토어에서 주급 날이 가까웠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늦지 않게 입금을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이 꼬인 것이다.


120달러, 당시 환율로는 한국돈 12만 원이 조금 넘는 돈. 이게 없어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갓 돌 지난 아들과 아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인가 하는 회의감이 너무 강하게 밀려와 버텨낼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피아노 공부하러 왔는데 돈 버느라 급급해서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출석만 겨우겨우 하고 있는 현실도 한심스러웠고.


가장 힘든 건, 이 상황이 나아질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실도 캄캄하고, 미래도 캄캄한 방향을 찾을 수 없던 그 시절.


한국에서 즐겨 마시던 소주 한잔 마시며 마음을 달래 보고 싶었지만, $5.99 하는 소주가 너무 비싸 돌아서야 했던 그 시절.


마음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듣고 싶어 졌었던 곡들이 있다.  



https://youtu.be/-_brPf510eA



들국화의 곡들은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이 곡이 아닌 다른 곡들을 더 좋아했었는데 답답한 상황에 놓여있게 되니 나는 왜 여기 서 있냐며 울부짖는 전인권 씨의 목소리는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해서 많이 듣게 되었다.


내가 들국화라는 그룹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재미있는데, 90년대 중반, 강변역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두 여성분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고 나서이다.


“나는 들국화가 너무 좋아”

“그러니까 은퇴할까 봐 걱정돼 죽겠어”

“전인권은 마약을 해도 괜찮고 도둑질을 해도 괜찮으니까 노래만 계속했으면 좋겠어. “


도대체 전인권이 어떤 사람이길래?라는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대화 아닌가. 그렇게 알게 된 들국화였고 그렇게 알고만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니 노래들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https://youtu.be/464Ux-B_5uY




워낙 비틀스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레논의 몽상적인 곡들은 묘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면이 있다. 그의 앨범을 사고, 사진을 벽에다 붙여놓기도 했었다. 요즘 그 아들놈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그 부모에 그 자식이 아닐까 싶어서 후회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 음악이 그리 좋았다.


자꾸 뭔갈 떠올려보라는 저 노래 가사가,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하고만 싶던 상황에 자연스레 듣고 싶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는 이 곡만 자꾸 치게 되었던 것 같다.


https://youtu.be/qnEfzOHdOXM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19살 때 작곡했다고 하는데, 그 젊은 나이의 청년이 어떻게 이리도 깊은 슬픔과 절망을 음악에 담아낼 수 있는지. 그의 타고난 우울감이 고스란히 담긴 화음 하나하나의 색깔과 멜로디와 모든 것들이 너무 좋았다. 마치 분출하듯이 이 곡을 계속 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음악에 위안을 받는다고 생각지 않았다. 음악을 듣다가도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바로 당면한 현실들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힘들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음악을 찾아서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하며 연약한 내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 버텨서 공부를 끝낸 것을 보면


‘음악보다는 내 지갑 속으로 들어오는 한 장의 지폐가 더 큰 위로이다’


라고 우겨대던 강퍅한 마음속에도 음악은 슬며시 스며들어 무언가 변화를 일으켜 놓았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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