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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라이터 호 Oct 29. 2022

일장춘몽

나는 매일 집으로 출근한다

그 겨울의 계절을 기억한다. 시베리아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해 추위가 절정에 달하던 새벽이었다. 떨어질 듯 볼을 에던 아침이었다. 어슴푸레 미명을 뚫은 동이 겨우 얼굴을 내밀 무렵, 그날따라 무슨 일인지 나는 얇은 가죽 단화만 신은 채 지하철을 탔다. 잠실에서 안산으로 수업을 가던 길이었는데 멋을 부리느라 그랬는지 마땅한 신발이 없었던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듯 밑창만 겨우 깔린 크림색 단화를 신었는데, 남색 테두리 장식이 탄성이 있어 가운데를 탁 당기면 리본을 묶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춘추용 구두였다. 영하 10도도 넘는 날씨였는데 무슨 용기로 그 신발을 신고 나갔는지 모르겠다. 비몽사몽 서둘러 나가느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내리면 기다리고 있을 셔틀버스를 떠올려 안이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양말 비슷한 소재의 두꺼운 스타킹을 껴 신고도 있는 대로 발가락을 오므렸다. 발이 무척 시렸다. 한 시간은 훨씬 더 가야 도착할 수 있던 그 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맹 추위를 뚫고 몸을 쭈그린 채 6개월도 넘게 수업을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알람 소리에 겨우 눈곱을 떼고 이불을 박차고 나가면 계속 한기에 시달려야 했다. 종종거리며 역으로 가는 길도 지하철 안도 추웠다. 분명 난방을 켰을 텐데 촘촘히 들어찬 찬 공기가 온기를 다 삼켜버리기라도 한 듯 지하철 안은 무척이나 추웠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어깨를 쪼그라뜨린 사람들과 출근길을 같이 했다. 아마도 현장에 나가는 일용직 근로자들이었을 것이다. 동생과 사는 빌라의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그 새벽을 깨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새벽은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수업하던 학생들의 온기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버틸 수 있었던 건 온기 덕분이었다. 학생들은 늘 온기가 있었다. 부스스한 아침을 훈훈하게 맞아주던 학생들의 온기가 이른 새벽의 고단함을 달래 주었다. 날은 추웠고 학생들은 따뜻했다. 서투르지만 온기 가득했던 사람들과 연 화목한 아침이었다. 서른 초반의 어느 날, 나의 이야기일 것이다.


지난해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견딜만한 날씨였고, 정신이 번쩍 드는 서울 추위에 비하면 이곳 추위는 온화하기까지 했다. 온난화 때문인지 검정색 코트 한 벌을 제외하고 별다른 외투를 옷장에 추가하지 않은 걸 보면 날씨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두꺼운 양말 위에 두툼한 슬리퍼를 신고 여기저기 외출하고 다녔으니 겨울이 두렵다는 말은 해당 사항은 아니었다. 묵직한 자동차 히터가 훈기를 유지해주어 어딜 가건 두려울 일이 없었다. 얼음장같이 차갑던 그 겨울 한파는 까마득한 추억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런 날이 있었지, 하는.


겨울 내내 아파트 산책로를 걸어 다녔다. 강바람은 셌지만 두 개 동이 강을 가리고 있어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걸 막아 주었다. 앙상한 나무 곁을 지나며 즈려밟는 푸성한 잎들이 알싸한 분위기를 더했다. 강둑으로 빠지는 길 사이로 새로 난 오솔길을 아침저녁으로 걷고 또 걸었다. 바삭거리는 죽은 잎들이 푹신한 털부츠에 밟히며 바스락 부서졌다. 두꺼운 패딩 점퍼 아래로 발목을 동인 양말이 운동화 위로 올라왔다.


‘일어날 거야.’

‘꼭 회복할 거야.’


걷는 내내 되뇌는 말이었다. 속으로 중얼중얼 주문처럼 읊으며 몇 번이고 오솔길을 걷고 또 걸어 다녔다. 인적은 드물었고 햇빛도 시들어 힘이 없었다. 온갖 장신구를 다 떨궈낸 마른나무들은 앙상한 맨 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매화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들메나무. 이름을 자세히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리게 겨울을 나는 마른나무를 한참 바라봤다.


‘나무에게도 봄이 올 테지.’


키 큰 나무에게 있을 봄을 생각했다. 돋을 움을 생각하고 우거질 여름을 생각하고 찬란히 물들 가을을 생각했다. 해마다 주기를 돌며 매년 새롭게 살아나는 나무의 생을 생각했다. 내 인생이 나무의 생에 오버랩되었다. 시린 겨울을 견디며 앙상한 모습으로 봄을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 서로 닮아 있었다.   


보호대를 찬 나무도 있었다. 거적때기처럼 보이는 두꺼운 천 조각들이 키 큰 나무 아랫둥에 씌워져 있었다. 트레이닝 바지 안으로 두꺼운 레깅스를 덧입은 모습이 설사 나무 같았다. 곧은 무릎으로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경기도까지 두루 돌던 나였건만, 어느새 생은 이제 속도를 낮추어 살라고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푸념이라도 할라치면, 나이도 없는 놈이, 라며 남편이 핀잔을 주었지만, 내 몸이 네 몸이 아니고 네 몸이 내 몸이 아니니 다 알 턱이 없을 테고. 어쨌든 낡은 볕에 시들어가며 봄의 소생을 바라 마지않던 나무와 나의 겨울이었다. 한 걸음씩 내려올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어쩌려고 겁도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나를 당황케 했는지. 선글라스 두 개를 겹쳐 끼고 텔레비전을 봐야 했던 안쓰러운 시절이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찬 겨울을 버텨내는 나무를 보지 않았더라면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것만 남긴 채 애쓰지 않으며 꺼져가는 불씨만 간신히 살려둔  겨울을 보냈다. 겨울의 적막 속에 추레히 나를 가두었다. 환희가 끝난 자리에 고독이 인사하듯 찾아왔지만 쓸쓸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시든 나무 곁을 지나며 인생의 계절을 깨쳤으니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찬란히 여름만 살리라 무모히 다짐하던 내 어리석음을 보았으니 그럭저럭 된 거였다. 무모함이 무모함인 줄 알았더라면 젊음은 젊음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비로소 지나야 깨닫는 미련한 생이었다. 그러니 내가 사람이겠지. 자연과 인생의 이치를 깨달으며 그럼에도 그 겨울 속에서 일어서리라 굳게 다짐했다.


‘나무처럼 소생해 다시 피어야지.’

그리고 봄을 맞아야지.’


그렇게 서너 달이 흘렀고 차가운 겨울 뒤에 숨어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던 봄이 마침내 찾아왔다. 죽들 듯 단숨에 목을 떨구는 늦겨울 목련은 전보다 늦게 피었지만 누런 볕이 걷히고 순이 돋아나며 가지를 뚫은 망울들 사이로 고운 색이 드러났다.     


‘봄이 오고 있구나.’

‘봄이 오고 있음이구나.’


꽁꽁 언 벌판에서 치이다 짓이겨져 맥없이 풀어져 그녀가 떠올라 짧은 글을 보냈다.



연분홍 복사꽃도 봄이 있고

붉은 동백도 겨울이 있거늘

하물며 너의 계절이 없을 쏘냐


그러니

너무 슬퍼는 말아라

누구나 한 철은 피는 꽃일 테니



운명의 계절이 서러워 목을 매던 어느 날 밤 휴대전화에 적어둔 글이었다. 흐느끼던 처량한 밤이 내게 준 글이었다. 대신 살아줄 것은 아니지만, 애처롭게 선 그녀를 보며 가만히 내 마음을 전했다. 너의 계절이 있음이라고. 그러니 희망을 거두지 말라고. 봄에 피면 진달래면 좋겠지만 여름에 피는 장미라도 좋겠지만,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면 어떠하고 겨울에 피는 동백이면 어떠하리. 필시 우리의 계절에 우리의 색으로 번은 피어날 것을. 그러니 가만히 기다리자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자고 내게 말하듯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꽃은 결코 때를 정해 스스로 피어날 수 기에.


기녀라도 된 듯 이런저런 상념들이 가락처럼 흘러나왔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겨울이었다. 지난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시려 발가락을 있는 대로 오므리던 그 해 겨울처럼 시름한 겨울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수순처럼 봄이 왔다. 소리 없이 봄이 오고 있음이었다. 수순처럼 꽃이 다. 꽃이 피어나고 있음이었다. 그러니 너무 슬퍼는 말아야지. 누구나 한 철은 피는 꽃일 테니.


겨울의 방 안에 갇혀 생의 시간을 생각했다. 꽃과 나무의 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의 인생을 생각했다. 그 속에 내 인생을 끼워 봄 맞을 채비를 했다. 꽃도 없이 잎만 무성한 봄은 더는 맞고 싶지 않았기에 이 봄에는 꽃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하고 내 인생에게 바랐다. 줄곧 듣고 있었을 내 인생에게 그러자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 번도 마음을 떼지 못하던 인생이었다. 낮이고 밤이고 속삭이며 글을 썼다. 피어나라고. 이제 그만 서둘러 피어나라고. 때가 길지 않음이라고. 한 번쯤은 전 존재를 녹여 촛불처럼 빛나라고 말해주었다. 울어준 이의 물방울에 내 울음을 보태 이제 그만 꽃 피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글을 썼다. 내 맘을 알았던지 글은 그리고 봄은 더디게 나를 가야 할 곳으로 밀어주었다. 소리 없이 버둥거린 시간이었다. 겨우내 나무가 그러했듯 꽃도 그러하듯 나도 그러하길 바라면서.


나무의 생이 무엇이고 사람의 생이 무엇일까. 춘삼월 서리 뚫어 한번은 피워내야 꽃일 테지. 지난 계절들이 긴 겨울밤 꿈처럼 느껴졌다. 자는 내내 질펀하게 꿈만 꾸다 퍼뜩 잠이 깬 사람처럼 봄을 놓칠까 두려워 자투리를 기우고 기웠다. 허송한 밤은 그만하면 되었기에 이제는 다른 밤을 맞길 바라며 그 밤을 기우고 기웠다. 인생이 한 바탕 놀음처럼 느껴졌다. 봄밤의 긴 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까 시간을 기워 썼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오늘에 다다랐다.


봄이 오고 있음인가! 그 너머 다시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오고 있음인가! 시린 계절을 보낸 후 마침내 당도한 이 계절은 그럼에도 봄일 테니 나는 그 봄이 어떠하건 이 봄의 문을 열려한다. 봄의 색을 다시 보려 한다. 그러다 꽃이 피듯 나도 피고 꽃이 지듯 나도 지겠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어차피 짧은 봄밤 잠깐 꾸었다 깰 꿈일 것을. 그러니 이제는 봄을 노래하자. 기나길  봄밤을 노래하자. 한 바탕 봄꿈을 노래하듯 내 인생을 노래하자. 그것이 허송한 세월이 나지막이 세상에 남길 나의 유일한 자취일 것이기에. 그러니 봄밤의 긴 꿈이여, 이제 어서 일어나 다시 올 너의 봄을 마침내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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