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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Jul 08. 2024

내가 바람피울 날짜는 이미 지났건만

신아연의 영혼 맛집 1002 / 나의 재판일지(7)


1000회의 글을 쓰는 동안 소쩍새는 울고 울어 기어이 국화꽃을 피워냈습니다. 


그것도 한 송이가 아니라 다발로. 



시편 126편 말씀이 시나브로 제 노래가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시편 126 : 5,6 



모세의 광야처럼 아연의 광야에서 눈물로, 울음으로 피워 낸 국화 다발을 품에 안고 저는 이제 기쁨으로 가나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사람일수록 50언저리에서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자각이 강하게 오는 듯 싶다. 물론 구체적인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생의 어느 순간에는 본래의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는,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의지가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것에 있고, 그것이 곧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 아닐까. 



저의 10년 고난의 기록, 아니 60년 아픔의 압축,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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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놓아지지도 않는 생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대로 그 시간을, 그 일을 살아내십시오. 눈물로, 한숨으로 지나가십시오. 저처럼 말입니다. 



대신 버둥거리거나, 투덜거리거나, 안달하거나, 의심하거나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원점으로 되돌아와 다시 뺑이를 돌게 됩니다. 



다행히 저는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지 않아 오롯이 국화꽃을 피워낼 수 있었습니다. 그 꽃이 피기까지 저는 1000회의 글을 쓰고, 1000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사흘에 한 권꼴로, 한 달에 10권, 1년에 100권을 읽다보니, 10년이 모여 1000권 독서가 되었던 것이죠. 



할 일도 없고, 돈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그저 곤궁하고 외로워서 10년 세월을 그렇게 '죽였던' 건데, 돌이켜 보니 그것이 곧 제게는 광야훈련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성경 빌립보서 3장, 바울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제가 예미녀(예수에 미친 여자)가 된 것도 천 권, 만 권, 아니 이 세상 책이란 책을 죄다 읽는다해도 예수 한 분을 아는 것에 견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하재열 작가의 '심상'





재판 이야기 또 좀 잠깐 해야죠. 



재판의 쟁점은 이렇습니다. 여기 제가 쓴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제가 썼으니 저는 당연히 제 것이라 말하는데,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은 자기네 것이라고 우깁니다. 일본의 독도 우기기도 아니고 원. 



그러면서 그 글로 제가 책을 내지 못하게 해 달라고, 법적으로 출판을 막아달라며 소송을 한 겁니다.  



제 글인 건 분명하지만 그 글로 책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재단측은 제가 책을 낼 거라고 우겨대니 "바람 필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너는 바람을 필 거라고, 반드시 필거라고, 그러니 바람피지 못하게 해 달라며 저를 법정까지 끌고 온 거"라고 판사 앞에서 제가 비유적으로 항변했던 것이죠. 



그러자 원고 씨알재단은 "아닙니다, 판사님. 이 여자는 반드시 바람을 피울 것입니다(책을 내고야 말 것입니다). 바람 피울 날짜까지 말했다니까요(출판 날짜까지 통보했다니까요)."라는 뜻으로 주장하며, 그 날짜가 6월 30일이라고, 카톡에 제가 그렇게 명시한 문자가 증거로 남아있다고 매우 억울해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질이 나서 상대방에게 "확 죽여버린다."고 말했다 칩시다. 그 말 한마디로 고소당할 것 같으면 조선 팔도 온 천지가 재판소로 덮여도 부족하겠죠. 



저 역시 씨알재단으로부터 하도 괴롭힘을 당하다보니 "자꾸 애먼소리, 억지소리 지껄이면 6월 30일까지 내 책을 내 버리겠다."고 말했던 것 뿐이었습니다. 



"판사님, 오늘이 벌써 6월 26일입니다. 6월 30일까지 4일 밖에 안 남았는데 4일 만에 무슨 책을 냅니까. 그리고 저 책 안 냅니다. 낼 생각도 없고요."       



이러니 재판 자체가 성립이 안 되게 생긴 거지요. 바람 핀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고, 빼박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필 것이란 의심만 가지고 법정에 끌고올 것 같으면, 내심 피려던 바람도 마음을 싹 바꿔 안 피게 될텐데 말이죠. 



그러면 어째서 씨알재단은 제 글을 자기네 글이라고 우기는 걸까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하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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