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혼자 보내는 연말, 아니지 이번에는 고양이가 있지. 고양이와 둘이 보내는 연말. 연말이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마음도 몸도 힘든 12월이다. 심해지고 또 심해지는 우울에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서 시작한 심리상담이다. 엄마아빠에게 어렵게 꺼낸 이야기 었지만 부모님은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노력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심리상담이 정말 심한 우울증 환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은 누구든지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여기 와서 누구랑 말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더욱더 우울해져 가는 나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우울해지면 끝도 없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잠도 자지 않고 그냥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해 내려고 노력한다. 굳이 기억해서 좋을게 하나도 없는 과거를 들춰내고 또 들춰낸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는가? 오래전 일이지만 뇌리에 박혀버린 기억조각들과 장면들. 생각해내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기억해 내어 굳이 생각하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내가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되도록이면 현실을 피하려고 했던 거 같다. 내가 우울할 때도 나는 우울하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슬플 때도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의 감정은 항상 뇌와 따로 놀았다. 항상 부정하고 마주하기를 거절했다. 하지만 지금 겪고 있는 우울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어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처음 줌을 켰을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긴장이 무섭게 나를 덮쳤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꺼낼 때 울컥하고 나오는 눈물을 막느라 바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볼래요?” 숨이 턱 막혔다. 내 어린 시절은 어땠나 생각해 보면 내가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 불쌍하고 안쓰럽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똑같았다.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똑같은 하루, 똑같은 장소, 똑같은 것들을 하는 하루를 반복했다. 대답을 한 후 심리상담사께서 “어릴 적 트라우마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버텼어요? 힘들었겠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참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내가 뭐 때문에 우는지 몰랐지만 그냥 눈물이 막 나왔다. 우울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기에 이 모든 감정들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나였다. 어릴 땐 우울해도 연습실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울하면 몸에 힘도 없어 침대 밖을 나갈 힘조차 없다.
심리상담사께서는 이주일동안 내 감정을 체크할 수 있는 표를 주시고 작성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보셨을 때 난 당연히 나를 잘 알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줄 알았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너무 충격이었다. 도대체 난 지금까지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몰랐던 것인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도 말하지 못한다니. 한심하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항상 우울했지만 이 우울을 피하느라 바빴던 거 같다. 마주하지 않고 대면하지 않고 항상 회피하기 일상이었다. 내 삶 자체가 피할 수밖에 없었던 삶이기도 했다. 내 감정하나 챙길 시간 없이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 이번 우울은 달랐다. 너무너무 힘들다. 근데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야 괜찮아져야지. 심리상담을 받은 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우울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