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 묻고 싶은 것
2020년 4월 6일
광화문 에무시네마 1층 카페에서 만나다.
ㄱㅇㄹ는 셰프다. 파아프가 성수동에 오기 전까지 협력 셰프로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발효 스터디 '미음미음'의 멤버이기도 하다. 몇 달 전, 회현동에 비건을 위한 도넛 가게 '오베흐트'를 열었는데 아주 대박이 나버렸다. 내가 만난 ㄱㅇㄹ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에너자이저다. 인터뷰만 보아도 Part 1이 충분히 길고 재미있어서, Part 3까지 가질 모했다. 그런 ㅇㄹ도 요즘은 지치는 모양이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 일 년도 훨씬 지난 기억을 소환한다.
Part 1. 초성을 들으며 떠올린 것: ㅇㄹ
‘애리’
내 이름 초성이 떠올랐다.
이름 참 마음에 든다. 외국 생활했을 때 외국인들이 영어 이름 만들지 않아도 편했다.
엄마가 지어주셨는데 한자로 사랑 '애'에 다스릴 '리'.
사랑으로 다스린다, 그렇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침이 없어서 참 좋고, 영국 랭귀지 스쿨에 있었을 때 중국 친한 친구가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네 이름을 하고 싶다고~ 근데 아들 낳았다.
1년 정도 호주에도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리빙 푸드 스타일링하는 실장님 밑에 들어가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열정 페이. 자기들 다이어트한다고 멸시하고… 밥도 안 주고. 요리를 멈추고..
(아 ‘요리’도 ㅇㄹ이다.)
‘올레’ (올레길)
오는 길에 제주도 친구들 전화 오고 해서.
스치듯이 생각난 단어긴 한데, 올레길 추억… 작년 2월쯤, 혼자 여행한 적이 있었다.
2월엔 한가하고 일이 없을 때라 혼자 올레길을 걸으면서 일도 없는데 제주도 내려와서 살까?
목적이 있어서 걷기보다는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혼자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으니까. 레이 빌려서 풍경 따라다닌 거다.
어딘가 드라이브를 하다가 좋은 풍경이 보이면 마냥 걷는다.
걷는 게 안 가본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이 카페도 호기심에 걷다가 우연히 알게 된 카페였다.
서촌도 그러하고 새로운 길에 대한 흥미가 있다. 아는 길로 잘 안 가고 새로운 길로 가는 걸 좋아한다.
영국에서 유학시절에 안전한 길, 익숙한 길 좀만 익숙해지면 바로 안 가본 길로 바꾸고…
그런 것들이 바뀌어서 지도 안 보고… 마냥 풍경 따라 걷는다.
다른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길, 골목.. 새로운 풍경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었다.
새로운 걸 보고 싶었다.
특히 서울, 경복궁이나 강북 쪽 예스러운 곳 다니는 걸 좋아한다.
최근에 발견한 좋은 길, 카페 밑으로 하는 창경궁으로 연결된 것이 좋았다.
가다 보면 담장이 무너져서 인왕산이랑 밑에 허름한 집들이 쭉 보이는 길이 있는데 너무 좋더라
‘오래’
오래된 옛날 느낌이 나는 옛길을 좋아한다. 오래된 건물, 오래된 물건에 집착하는 편이라 물건 잘 못 버린다.
초등학교 1-6학년 때 받은 편지 같은 것도 가지고 있고 물건 하나 꽂히는 거 사면 진짜 오래 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영국 유학 갔는데, 캠브리지 지나가다가 가죽 수공예 가방 산 거.. 아직도 쓰고 있고.
고1 때 백화점에서 산 떡볶이 코트.. 아직도 입고 다닌다.
옛날 노스탤지어, 향수가 있다.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궁, 사찰 산책.. 취미. 혼자 할 일 없고 마음 우울하면 좋아하는 절이 서울에 몇 군데 있다.
종교는 천주교인데…
절은 수시로 간다.
역사가 있고 오래된 곳이니까.
내 의지로 간직한 오래된 물건?
물건 중에 하나 있는데 어렸을 때 친할머니랑 살다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는데, 전쟁 때 피난 내려오신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단추 주머니, 단추를 모아둔 주머니… 빨간색 조그만 동전 주머니가 있다.
그거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천이 주는 말랑함, 콩주머니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생각난다.
또 비디오들…
나 홀로 집에 1, 2. 비디오로 나온 것들. 엄마 아빠가 버리라고 해도 못 버린 것들.
DVD도 많이 모았었다. 지금은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깝네…
오래된 물건들 좋아한다.
엄마는 이런 쓰레기 같은 거 돈 주고 사 오냐고 갖다 버리라고 하는데.
뭐 하나 물건에 정이 들면 쉽게 못 바꾼다.
고장 나서 어떻게든 끝까지… 쓰게 된다.
‘요리’
<요리왕 비룡> 때문에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였나. 요리왕 비룡이 쌀알이 까매질 때까지 웤질… 나도 따라 한다.
요리하면 재밌겠단 생각에.. 중2 때 요리학원을 엄마가 끊어줬다.
영수학원 다닐 때 중2 때 요리학원 다니기 시작… 호텔리어 유행 당시,
멋있는 호텔 주방장 요리 자격증도 따고, 고등학교도 생활과학고 조리과 학교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고…
학교가 희망이 없어 보여서 영국으로 게 됐다.
고2 때 어학연수 1등 하고, 제이미 올리버가 나온 학교 가려다가 유학원에서 추천한 시골 대학원에 진학했다. … 런던에서 일, 한국에서 일, 잠시 요리하기 싫어져서.. 어시일, 영어학원 강사도 하다가.. 호주 가서 요리하고… 다시 재밌기도 하지만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아는 분을 통해 <이코노미 리뷰>라는 매체의 국장님 소개받아서 2주에 한 번씩 제철 식재료 요리 개발해서 칼럼 써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서 2주에 한 번씩 요리 관련된 칼럼을 썼는데… 글은 잼병이더라. 나는 글은 아니구나~ 글을 써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그 사람도 아무나 쓴 건 아니겠지란 생각으로 나를 믿고 한번 써봤다. '김떡순'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 글을 다듬어서 보낼 테니 그걸 보고 결정하라고 해봤다. 속으로 "이 정도면 해? 그래서 이렇게 아무나 글 써도 되는 건가?" 생각하면서.
그 국장님이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 같아. 정직원으로 들어와서… 음식 문화 관련 기자가 되라고...
'나 이렇게 이코노미 기자가 되는 건가?' 했는데 그때가 25살쯤이다. 그때 신장투석을 받게 되었고, 모든 일을 올스탑 했다. … 그때부터 계속 놀았죠 뭐. 3-4개월 투석받다가 신장이식을 받았다.
요리는 그만해야 하나 고민했다. 면역력이 약하고 몸을 많이 쓰고 무리 가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말이다.
요리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하다가 의류 브랜드 자라에 취업도 했고, ‘윈도 디스플레이’도 잠깐 하다가… 영어학원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애들한테 미안해서 관뒀어요. (ㅋㅋㅋㅋ)
영어 선생님 아무나 하는 건 아니더라고 ‘테솔 자격증’ 따고… 영어학원에서 일하다가… 이건 미래가 없어 보여서 한국방송통신대 식품영양학과 지원해서 공부했다. 겨우 졸업은 했는데, 아직도 졸업장을 안 받아왔네...?
지금도 방황 중이긴 한데, 영국 유학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방황 그 자체였던 것 같아.
영어학원 다니면서 식품영양학 공부하다가 그때 한참 사귀고 있던 Love of My Life 러브 오브 라이프가 있었는데 걔랑 헤어지면서 공허감이 너무 심해서 스콘을 굽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맛있다고.. 그러다가 도곡동에 카페에 납품까지 하게 됐다. 힘들어지고 돈도 안 되던 시절에.. 한참 인스타그램에 빵, 쿠기 이런 사진 올렸는데 그게 반응이 있었다.
'애리 계속 요리하는구나?'하고 사람들이 생각해주었던 것 같다. 서울 브루어리 대표님이 친구를 통해 연락을 해왔고 메뉴 컨설팅과 개발을 부탁했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을 개발해줄 수 있냐고 제안이 왔는데, 그때는 영어학원에서 일할 때라 감이 떨어졌을 텐데도 무작장 '오케이'를 외쳤다.
해본 적은 없는 일인데, 기회인 것 같았다. 메뉴를 제안하니 되게 마음에 들어 했다.
그걸 계기로 메뉴 컨설팅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게 잘 됐다 반응도 좋았고, 따른 것도 소개받고…
양양에서 서핑하는 취미가 있는데, 양양에 아는 분이 양양에 공간이 하나 있는데 놀고 있는 공간이니, 주말에 와서 장사해보라고… 여름에 잠깐 2-3개월 정도 빵 굽고 커피도 팔고, 저녁엔 친구가 술을 팔고 그랬었다.
그러다가 발리 다녀와서 케이터링 일을 하게 된 것이다.
Part 2. 단어를 보고선 떠올린 것: 재료, 주거, 다양함, 실연
'보리'
보리는 인간이 제일 먼저 섭취한 곡물이다. 그래서 보리라는 곡물에 꽂혀있다.
보리고추장, 보리 조청 등 제품을 만들어볼까 하는 중이다.
계속 젓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 밥솥에 해봤는데 자고 일어났는데 밥솥이 터졌다.
집안에.. 온통 조청. 첫 번째 보리 조청은 실패로 끝났다.
'실연'
그동안 실연을 함으로써 뭔가 전환이 있었다.
스콘도 일명 '실연 스콘;
영어학원도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서 취업한 거다...
친구들이 사귈 때보다 헤어지고 나서 더 잘 된다고 놀린다.
또 도약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ㅋㅋㅋ (오프 더 레코드)
나는 예전에 내가 멀티플레이어인 줄 알았다.
몇 년 전부터 그게 확실히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이더라.
그래서 남자를 사랑할 때보다는 일에 집중할 때가 더 나은 것일 수도 있고, 한 가지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농사'
씨앗, 텃밭이라도 같이 가꾸어보는 게 어떨까 이야기했지 않나.
농사를 거창하게 하는 건 아니어도, 좀 관심 있어하는 파 아프 템페팀이 되었어도 좋고, 텃밭을 가꿔서 작물을 심어보는 건 좋은 경험일 것이다.
근교에 하면 어떨까. 주말농장 같이… 멤버들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기록하고 이미지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우리가 수확한 작물로 밥상 차려먹고 껄껄 웃어보고 그럼 좋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식량난이 시작된다는 기사도 봐서, 농사법을 배우는 게 생존법이 아닐까 생각도 들고-
'감자'
좋아하니까 감자. 옥탑에서 감자 키워본 적이 있다.
그때 재밌다고 생각했고 수확했을 때 기쁨이 어마어마하더라.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내가 준거라곤 물밖에 없는데 알아서 자라서…
감자전을 해먹은 게 너무 신기해서.
감자 고구마를 해봤으면 좋겠다. 뿌리 식물.
그런 것들을 시작으로 하면 어떨까?
옥수수, 방울토마토,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앞에 바로 산이었는데 할머니가 그 텃밭에 옥수수 토마토 항상 심으셔서 여름에 심고 그랬는데~ 옥수수 토마토 감자 고구마 당근~ 좋을 것 같다.
허브도 좋고.
허브도 예민한 것 같다.
로즈메리 바질 민트~ 바질 -> 민트 죽음. 로즈메리는 살아있다.
'다음 사람에게'
음악 쪽으로 관심이 많은데, 비스킷사운드 스콘을 구울 때 그렇게 지었는데, 음악을 좋아해서
사운드를 결합. 내가 관심 있는 사람들 흥미로운 사람들을 음악으로 인터뷰하는 것!
이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해주는 것.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도 있었고, 사운드 콜렉터라고 생각함.
처음엔 트위터로 기록 다음엔 이것을 발전시켜서 재밌는 사람들을 인터뷰~
인터뷰이
저는 김애리고, 파아프에서는 템페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보면서 실험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템페로.. 다양한 레시피 만들고 있는데, 다양한 템페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서 템페 레시피북 <책>을 내고 싶다. 꿈이 있다면, 뜻이 맞는 요리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분과 조그마한 공간을 얻어서 꽂히는 재료들로 제품을 개발해서 온라인 델리샵을 하고 싶다. 가끔 팝업 식당 열 수도 있는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