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 묻고 싶은 것
2021.07.21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다.
PaAp LaB 안쪽 사무실에는 장범준이 산다. 여수 밤바다에 같이 가고 싶은 사람, 걷다가 보면 샴푸 향이 떠오르는 사람, 그래 같이 걸으면 좋을 그런. 장범준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건 더 좋아한다. 누구보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누구보다 경쾌하게 걷는다. 파아프 또 한 명의 체육인. 언제나 '완충' 상태인 당신을 그 자체로 긍정할 수밖에.
초성을 떠올리며 생각한 것 - ㅈㅊ
'종찬'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나 자신에 의지하는 편이다.
늘 그렇게 살아왔기도 하고, 남들이 나를 봤을 때 '뭘 해도 될 것 같다'는 기운을 풍기는 게 좋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믿고 꾸준히 해나갔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주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조찬'
아침을 안 먹은 지 꽤 오래됐다. 15-16년 정도 된 것 같다. 첫 식사는 점심인데, 그러다 보니 더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려나? 먹으면 불편하다. 쉬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저녁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저녁 식사를 한다. 결혼 전에는 술자리가 많았는데, 그런 날에는 점심을 안 먹었었다. 몸이 개운하고 편안하고 가뿐한 상태를 좋아한다. 커피 - 베리에이션 커피는 거의 안 마셨다, 입 안에 뭔가 남아있는 느낌이 싫어서.
'조총'
그냥 떠오른 단어다. 어휘력이 딸려서 그런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개인주의가 강한 성격이다.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SNS에 개인 삶을 공개하는 것도 싫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걸 힘겨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단어를 떠올리며 생각한 것 : 다음 세대, 시작
'다음 세대'
아기가 있기 때문에 더욱 '다음 세대'에 대해 생각한다.
뭔가 불쌍한 느낌이 있다. 한국사회는 경쟁 사회가 아닌가.
선택하고, 고민하고,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삶을 사는 우리들.
나 또한 34년간 그렇게 살았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이라는 목표로 살았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 이후에는 평생직장을 고민하고... 돈을 어떻게 벌지?
한 직장에 3-40년씩 근무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나니 자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런 힘겨운 삶을 다음 세대들도 살아야 한다는 게 참 안쓰럽다.
내 아기가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내가 겪었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쉽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부모의 역할이다.
좋은 부모란 지표도 없고, 점수도 없으니 늘 불안함에 산다.
아기를 낳고서는 늘 불안하다.
걱정거리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 삶의 특징 같다.
삶은 미션의 연속!
'시작'
18세부터 일을 했으니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첫 일은 주말 뷔페 알바였다.
일급은 6만 원, 주말이면 12만 원씩 버니까 한 달이면 4-50만 원씩 벌게 됐다.
이때부터 용돈을 거의 받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고, 갖고 싶은 거 사는 재미가 있었다.
번 돈으로?
돌체 앤 가바나 시계를 하나 샀다. 모델 명은 '유니크'. 20만 원이 넘었다.
내가 번 돈으로 뭔가를 사니까 위안이 되었고, 돈을 버는 게 슬프지 않았다.
대학 합격 후에는 명동에서 서빙을 했다.
'고불'이라는 가게에서 1년 정도 일을 하고, 입대를 했다.
대구에서 시작한 고추장 불고기 가게다.
말년 휴가를 13일 받았는데, 3일만 딱 놀고 10일 동안 압구정 닭집에서 일을 했다.
마지막 날엔 '매니저님 저 전역하고 올게요!'하고 군대에 복귀했다.
대학 시절 내내 주말이든, 평일이든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2학년부터는 등록금도 직접 벌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 오른쪽 다리 복숭아뼈가 골절되었다.
내가 타고 가던 오토바이를 탑차가 박았다.
세 달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
합의금으로 1천70만 원을 받았다.
이것저것 쓰고 나니 900만 원 정도 남았다.
복학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래 봐야 두 학기 학비였다.
생활체육을 전공했는데, 운동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재활 중에 당구장 알바를 했다. 절뚝거리면서도 일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복학 후에는 충무로의 '비어 플러스'에서 일을 시작했고, 27세까지 꽤 오래 근무했다.
야간 2시까지 일을 하고, 주말에는 수영과 헬스 강사로 일했다. 평일 아침 수영반 강사는 시급이 세다.
당시 평균 시급이 오천 원 정도였는데, 수영강사는 만 이천 원이었으니까. 중앙정부청사에서 헬스 트레이너 일도 병행했다. 그 사이 틈틈이 취업준비도 했다.
잠을 안 자면 가능했다. (젊었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지금이 제일 일을 안 하는 시기다.
대신 육아라는 더 큰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내 삶의 가장 인상 깊은 타인
엄마.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강단이 있다.
어려운 삶 속에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주셨다.
자유로우면서도 엄격하고, 아닌 건 아니고 맞으면 맞다고 한다.
모든 일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내게 맡겨주었다.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데 그걸 해낸 사람이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아들 둘 모두 평범하고 무탈하게 자랐다.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주말에 전화하면 늘 어딘가에 나가 있다.
코로나 19만 아니었으면 한 달에 두 어번은 1박 2일로 여행을 하신다.
몇십 년 동안 아침, 저녁에 운동을 하신다.
존경할 만큼 자기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다. 평생 54kg을 유지하셨다.
요즘 들어 엄마랑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엄마가 피한다.
내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밌지, 너랑 노는 게 뭐가 재밌냐고 하신다.
삶의 즐거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게 유일한 낙이다.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상담을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기 위해 만난다.
그런 시간이 스트레스가 많이 풀린다.
나를 포함해서 10명이 주로 어울리는데,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까지 함께 했다.
최근에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 같이 익스트림 스포츠 즐기고 노래방에 갔다.
노래 부르는 것도 즐거움이다.
나도 모르게 부르고 있어서 사람들이 당황할 때가 있다.
집 근처에 북서울 꿈의 숲 공원이 있는데, 1-2시간씩 이어폰 꼽고 노래 부르면서 산책을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 부르고 싶은 팝송을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최근 애창곡?
장범준의 <잠이 오질 않네요> (방금 전 팝송이라며...?)
<I'm yours>도 정말 많이 들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기타를 샀었다.
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자신에 대한 애정은 이런 자부심에서 오는 것 같다.
삶의 미션은 나 자신을 더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5세에 은퇴해서 배우를 하고 싶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원한다.
10년 정도 남았다. 10년에서 최대 13년, 만 45세까지만 일하는 삶으로.
나는 시멘트 같은 남자, 1988년 10월 2일생 밤 10시 2분에 태어난 문종찬입니다.
시멘트와 물과 섞이면 잘 굳는 것처럼 이 회사에서 굳고 싶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두 눈도 10시 2분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