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스스로를 미워했을까

자기혐오, 낮은 자존감과의 싸움.

by 유라

매일 플래너에 계획을 썼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이 공부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운동

출근

퇴근 후 집에서 다른 공부

잠자기 전 30분 정도 자유시간 후 취침


쉬는 시간까지도 짜놓고 갓생이란 단어도 없는 시절에 그렇게 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학교 때는 목표하는 고등학교,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를 준비한다며 플래너를 작성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 매일 플래너를 쓰지 않으면 무엇인가 인생을 굉장히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꽤 자주, 실패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은 하루에도 많은 변수를 깔고 있었다. 학생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쉽지 않았다.

플래너대로 계획하고 살면 많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유혹을 무시하고 플래너대로 하루를 살기엔 어렵다.

하루씩 플래너대로 하지 못하는 날이 쌓이면서 스스로에게 가슴 아픈 말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어느 날에는,

넌 그것밖에 못하니? 이렇게 밖에 못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해?

넌 정말 쓰레기야.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라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계획대로 한 날에도 딱히 칭찬을 하지는 않았다.

'겨우 하루 해놓고 무슨. 못 지킨 날이 훨씬 많잖아. 오늘처럼 몇 번은 더해야 따라잡을 수 있어. 오늘 하루 한 것 가지고 자만하지 말자.'


왜 그렇게까지 몰아세웠을까?

항상 끝날 겨를도 없이 무엇인가를 해왔다. 어떤 것을 달성해도 칭찬보다는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집어내며 그것을 비난하기 바빴다. 욕을 할 때는 이 세상에 나보다 별로인 사람은 없다는 듯이 말했고, 칭찬해야 할 때는 자만하지 말자고, 더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라고 생각했다.

계속 열심히 하지만 칭찬은 한 마디를 해주지 않고 시간을 보내니 점차 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두꺼운 자기혐오가 쌓였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넌 정말 쓸모가 없어.

왜 살고 있니? 죽는 게 더 이득일지도 모르겠어. 이게 무슨 민폐야?

왜 살까?

거울을 보며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끄집어내어 스스로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그게 쌓여 뭘 해도 기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 덜 불안해진 일상을 살게 되었었다.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잘 잤다. 항상 잠이 부족한 상태였다. 심할 때는 전날 공부와 일을 해놓고 잠도 안 자고 다시 일을 하러 간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무엇인가 부족하다며 계속 새로운 일을 벌였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했을까

뭘 해도 스스로가 한심하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진짜 나를 알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너무 싫었고 또 싫었다. 왜 내가 나인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싫었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는 이젠 정말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도 이젠 그렇게 생각이 되지도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혐오라는 단어도 몰랐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며 옛날에 썼던 일기를 찾아봤다. 한 5년 정도 전에 쓴 일기인데, 어디에서 질문 문구를 봤나 보다.


질문: 본인과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친구하고 싶나요?

답: 네, 친구가 돼서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자기혐오에 빠져있으면서도 일기에는 다행히 솔직했던 것 같다.

자기혐오를 사전에 찾아보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혐오가 한참 심할 때 저런 일기를 썼다는 게 좀 많이 놀랍기도 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상태가 악화되어 치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나비포옹을 배웠다. 나비포옹은 스스로를 안아주는 행동이다.

처음 나비포옹을 했을 때는 제대로 안지도 못하고 그 제스처를 취하려고 하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적응하는데 2~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시도조차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곧 잘하고, 가끔은 기분이 좋을 때도 나비포옹을 한다. 내가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 참 좋다.

나비포옹을 시작으로 나와 친해지고 인정해 주기까지 많고 다양한 과정을 겪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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