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고민스러운 일은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이다. 매번 사 먹자니 그렇고, 나 혼자 먹는 건데 거하게 요리를 하는 것도 그렇다. 아, 나는 요리를 못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요리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어쨌든 요리가 취미도 아니고 잘하지도 않는데 나만을 위해 요리하는 건 노력 대비 효과를 아직 잘 모르겠다. 내 고민은 아침메뉴 선정에도 이어진다. 눈 뜨자마자 배고픔을 달래줄 간단하면서도 맛있고, 또... 하루의 시작을 위한 열량을 낼 수 있는 것. 그렇다, 빵이다. 아침에 이것저것 먹어봤지만 도돌이표처럼 나는 아침에 빵과 디카페인 커피, 그리고 한 줌의 견과류를 먹는다.
오늘도 내일의 식량을 사기 위해 비장하게 빵집으로 들어섰다. 먹잇감을 찾는 (아직도 능숙하지 않은) 사냥꾼의 눈길로 진열된 빵들을 훑는다. 소시지 브레드, 크로와상, 베이글... 아니, 내일 아침은 이것들을 먹고 싶지 않다. 그러다 내 눈길은 우유 크림빵으로 향했다. 크림빵 3종 세트인 건지 그 양 옆에는 옥수수 크림빵과 땅콩 크림빵이 놓여있었다. 우유 크림빵 안에는 까만 알갱이 같은 게 들어있었는데 이게 초콜릿인지 팥인지 헷갈렸다.
"혹시 이 안에 들은 게 뭐예요?"
"초콜릿이에요!"
"아, 그럼 이걸로 할게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젊은 분들은 초콜릿을 좋아하더라고요. 애기구나!"
예상치 못한 "애기구나!"라는 말에 나는 그만 기분 좋게 수줍어져 버렸다. 서른 후반이 애기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는 결코 아니건만, 나보다 나이가 많아 뵈는 그분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아직' '초콜릿 같은' '단맛'을 찾는 '애기.'
이번에는 사과잼이 들어간 빵을 보고 있는 내게 대뜸 물어보셨다.
"지금 이거 보이세요? 알갱이! 이게 뭘까요?"
"사과요!"
"맞아요, 사과 알갱이! 그러니까 설탕이 안 들어갔단 이야기죠!"
초콜릿 찾는 애기에게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사과빵을 자랑하는 직원 분의 유쾌함에 웃음이 났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계산을 하며 직원 분과 사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눴다.
빵을 들고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나는 왜 애기라는 말에 수줍은 한편 기분이 좋아졌을까? 이 나이에 애기라는 말을 듣는 건 퍽 양심이 없는 일이기에 수줍어졌나? 하지만 그럼에도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나는 어리광을 피워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진짜 애기었을 때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무뚝뚝한 애기였으므로 아마 그다지 어리광을 피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녀라고 하기엔 어느 순간부터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제멋대로 살고 있기에 철없어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애기처럼 군 적이 별로 없다. 특히 부모님에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부모님, 그중에서도 엄마는 공감을 잘하실 줄 모른다. 그에 반해 감수성이 차고 넘쳐 상대방의 감정까지 내 감정으로 흡수하는 나는 늘 공감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공감은 받지 못하면서 남의 감정까지 불필요하게 떠안는 나는 매번 감정쓰레기통이 되었다. 엄마를 비롯한 사람들은 내게 휙휙 자기감정을 던졌다.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떠안느라 지친 나는 어리광을 피울 새가 없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나는 어른이지 않았을까. 미성숙한 어른들이 던진 감정을 떠안느라 아이다운 아이가 되지 못한 기형적인 아이. 또, 기형적인 어른.
그래서인지 나는 간혹 가다 나를 애기 취급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을 만나면 그만 수줍어져 버린다. 자신보다 어리고 약하고 순진한 존재에게 사랑을 보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애기 다루는듯한 말투를 쓰는 사람을 보면 한순간에 무장해제가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연애를 할 때도 거의 매번 어른 노릇을 했는데, 나를 '애기'라고 부르며 케어해 준 딱 한 사람만 오랫동안 못 잊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내가 어떤 감정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그들의 엄마나 누나가 되어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 역할놀이가 지겨워서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서로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그걸 기꺼이 감싸주는 게 사랑일지 언대 나는 늘 어른으로 강해야 했으니까. 사랑이 사랑스럽지도, 연애가 즐겁지도 않았다.
새로운 해가 되며 또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진작에 애기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점점 더 애기로부터 멀어지는 삶이 되어간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도 애기를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될지도 모르지. 지금도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 휘청대는데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난 내 안의 애기를 보살피지 못했는데.
그래서 생뚱맞게 다짐한다. 다음 연애는 꼭 내가 어리광을 피울 수 있는 사람과 하겠다고. 그에게만큼은 애기가 되겠다고, 되고 싶다고. 이런 나의 소망이 간절하면서도 웃기다. 웃기면서도 애처롭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렇게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느냐고 묻자 역시나 쾌활하게
"저는 직장인이니까요! 열심히 일해야죠! 보고 계시나요 사장님!"
하고 답하시던 빵집 직원 분은 퇴근은 잘하셨나. 그토록 에너지 넘치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해 주셨지만 실은 빨리 퇴근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그분. 그분 안에도 작은 애기가 있겠지? 씩씩한 어른인 것처럼 굴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애기가 있을지도 모를 그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안받기를 바란다. 오늘 내게 깜짝 위안을 선물하신 것처럼.
*애기
표준어는 '아기'이나, 직접 들은 말을 소재로 쓴 것이기에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애기'라는 단어를 고집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