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미술 복원을 공부하면서 서현이 고민이 되었던 것은 미술품을 복원하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의 어떤 관계, 생각, 마음을 복원하는 건 규칙이나 공식이 없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평화를 깨는 사람이라고 했다. 서현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들이 왔다. 사람을 미워하거나 싫어한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 마음을 안 줬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적극적이다, 당돌하다 라는 단어들로 다가왔다. 이런 외모에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느껴지나 보나 생각했다. 서현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는 것을 잘 배우지 못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아서 지금까지 그래도 이만큼 됐다고 생각했고,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보호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쁘장한 외모가 평생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주현에게는 말할 수 없는 아찔한 순간들이 그녀의 삶엔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상대방의 액션이 문제이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다행이도 서현과 주현은 융통성 없고 딱딱한 느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정하고 성실하고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서현은 자신을 다정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격을 하려고 성격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타고나게 이상한 면도 있겠지만 나름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했다고 핑계를 대본다.
피렌체에서 도진을 만났고, 도진은 이후에 로마에 있는 회사와 업체들의 법률 문제를 담당하게 되었다. 바르디니 정원에서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두 번의 커피 타임을 가진 다음 3개월 후의 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도진은 어쩌다가 한 번씩 서울의 사진을 보내줬고, 말은 많지 않았다. “오늘은 한국 하늘이 예쁩니다.” 라고 보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피렌체에 왔다고 했다. 서현은 물감이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고 학교 앞으로 나갔다. 도진에게 1시간 밖에 없다는 말 때문에 그렇게 나간 거였다. 도진은 자기가 로마에 있는 회사들을 담당했다며 앞으로 자주 이탈리아에 오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가 그렇게 되도록 회사에 요청했다고 이야기했다.
내성적이고 자기 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로서는 서현에게 하는 고백이었다. 서현은 그런 그의 면모가 마음에 들었다.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로마와 피렌체를 왔다갔다 하면서 만났다. 그들의 만남에는 종종 민호가 함께 했다. 서현은 민호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민호는 도진에게 있어서 친구 같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진도 그걸 느꼈는지 민호가 올 때면 그가 왜 오는지,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줬다. 도진은 생각이 많아 보였지만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그런 면이 좋았지만 그게 불평거리였다.
갑작스러운 전세계 전염병으로 세계는 마비가 되었고, 도진은 이탈리아에 머물기로 했다. 그는 서현에게 “그렇게 됐어. 어차피 내 일들은 다 이탈이아에 있잖아. 문제가 터졌을 때 한국에 있으면 날아올 수가 없고 그러면 고객을 잃게 되니까.” 라고 말했다. 서현은 그의 말이 우스웠지만 좋았다.
그 말을 했을 때 서현은 자신이 그와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즈음 서현의 친구 사라는 유리 공예를 배우면서 종종 자신이 가는 공방에 서현을 초대했다. 서현은 사라를 따라 종종 공방에 갔고 거기서 서현은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유리컵, 작은 스푼, 유리인형, 썬캐처, 유리 종, 그리고 반지.
서현은 유리를 섞어서 반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도진에게 반지를 만들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도진은 그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도진은 웃으면서 색깔도 고를 수 있냐며, 자기는 파란색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반지를 만들기 전에 서현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썬캐처였다. 꽤나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서 만들고 있었다. 보라색 계열이었고 유리와 자개를 가지고 만들고 있었다. 썬캐처에 달리는 모양 하나하나가 달랐다. 신중했다.
“그 썬캐처, 아래 달리는 거 모양이 다 다른 이유가 있어? 물론 만드는 사람 마음이지만.”
어느 날 도진이 물어봤다.
“뭐가 달려있는지 봤어?”
“다는 기억 안나는 데, 동그란 구슬, 납작한 비행기, 구름, 말 … 이 정도?”
서현은 가끔 도진의 기억력을 확인할 때면 그가 로스쿨 나온 변호사라는 걸 상기하게 되었다. 다는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는 다 기억해 냈다. 물론 동그란 구슬 안에 벚꽃 잎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 그건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야.”
“음…”
도진은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해?”
“내가 말을 좋아했었나 생각했고, 그 다음엔 당신 주변에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생각했어.”
서현은 웃었다. 생각해 보니 도진에게 주현의 이야기를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았다. 부모님의 직업,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동생과는 8살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 정도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도진을 만나고 있는 동안 서현은 자신이 왜 도진을 좋아하는지, 편안해 하는지 생각해 봤다. 그동안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한 남자는 별로 없었다. 결혼을 생각한 사람은 더더욱. 서현은 까다로웠다. 그런데 도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서현은 하루 종일 복원 작업을 하고 돌아와 침대에 엎어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윤도진이랑 이주현이랑 닮았어.’
서현은 어릴 때 주현이 좋아했던 것들을 기억했다. 지금도 좋아할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왜 확신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럴 거 같았다. 그래서 모양을 고르는데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현은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했다. 가끔씩 주현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주현의 그림은 반짝거렸기 때문이었다.
서현이 유리 공예 기술을 익히고 썬캐처를 완성했을 때 즈음 전세계는 전염병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전세계가 다시 왕래하기 시작했다. 서현과 도진은 내년 정도에는 한국에 가서 서로의 가족에게 인사하자고 약속을 했다.
그 내년은, 서현이 반지를 돌려주겠다고 서울을 간 해였다.
격리가 많이 해제 되니 도진은 서울을 왔다갔다하기 시작했고 서현이 반지를 돌려주러 서울을 가기 4개월 전, 자신이 썬캐처 가지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서현은 왜? 라고 물었고, 그거 그냥 서울에 있는 집에 걸어둬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주인이 따로 있는 건 도진도 알았다. 그냥 그것을 잠시 가지고 있고 싶었다. 잠깐 걸어두고 사진 찍고 원래대로 포장해 둘 거고, 너 서울 오면 그 때 줄게. 서현은 도진에게 썬캐처를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사진이 왔다. 도심이 배경인 유리창에 걸려있는 보라색 썬캐처가 반짝거렸다.
서현은 사실 그 사진이 썬캐처와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도진의 그 문자가 오고 난 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