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서현은 가방과 쇼핑백을 들고 건물을 뛰어 나갔지만 주현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얘는 어디로 간 걸까. 서현의 입장에서 주현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애처럼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얘 열 받으면 보통 어디로 가? 이렇게 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여의도였고, 서현은 몇 년만에 온 서울이었고 서울 안에서 주현의 공간을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주현이 가지고 있는 공간 어디도 서현은 잘 알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도로들과 횡단보도가 보였다. 주현의 성격상 그렇게 나가서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거 같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현은 지하철역을 지나쳐서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공원 길 비슷한 느낌의 길이 멀리 보였다. 여의도 한강 공원 길이었다.
주현은 에코백을 꼭 쥐고 앞으로 마구 걸어갔다. 이 기분이 뭔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짜증이 났고 숨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내가 잘 못 한 건 없는데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지 생각하면서 답답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나와버렸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든 건, 졸업 작품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 같단 것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걷다 보니 여의도 한강 공원에 진입하는 입구였다. 주현은 뒤를 돌아봤다. 서현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평일 낮이었고, 공원 근처니 한가로웠다. 일찍 수업을 끝낸 대학생들이 나들이를 온 정도만 보였다. 서현을 놓고 왔다는 생각이 스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시 돌아가야 할 까. 하지만 그 여의도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민호가 서현에게 무례한 말들을 쏟아내는 그 표정과 제스처, 목소리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분은 언짢지만 그 소리를 그냥 듣고만 있는 서현의 얼굴과 아메리카노와 얼음이 가득 든 잔을 넘어뜨리는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니를 난처하게 하고 싶었다. 망가트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근데 자신이 이걸 원한 게 맞았을까?
주현은 공원 길로 들어섰다. 그냥 앞으로 걸었다. 반포 방향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는 날씨였기 때문에 햇살은 좋았다. 온도도 괜찮았다. 강바람이 주현의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전투적인 느낌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던 주현의 발걸음은 조금씩 평정심을 찾기 시작했다. 주현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언니한테 보내야 할까, 말까. 언니랑 문자나 카톡을 했던가. 자주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생일, 크리스마스, 새해를 제외하고 무슨 말로 문자와 카톡을 했었을 까. 아빠의 승진, 아빠의 마지막 비행, 엄마의 전시회, 사촌의 결혼식 … 그런 것들을 언니한테 보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나에 대해서 언니에 대해서 둘이 이야기 한 것은 별로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자매들은 어떻게 지낼까. 나이 차이가 적으면 어떨까? 나이 차이가 많더라도 같은 집에서 같이 살면 어떨까? 언니에 대해서, 동생에 대해서 잘 알까? 잘 아는 이유는 대화를 많이 해서 아는 걸까? 아무래도 살다 보면 관찰이 많이 되어서 그렇겠지? 그렇다면 육감적인 것은 어떨까? 주현은 종종 언니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할 때가 있었다. 물론 매우 어릴 때였다. 그 순간에 기분이 좋았다. 왜 좋은지 그 때는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나랑 언니랑 자매라는 게 증명 되는 순간이어서 좋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는 특별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나랑 언니만 아는, 자매이기 때문에만 알 수 있는 그것이 좋았다.
언니한테 사과를 해야 할까? 근데 언니도 나한테 사과를 해야 하잖아. 오늘 하루에 대해서 언니는 나한테 사과를 해야 하지 않아? 그런데 한 편으론 주현도 서현에게 사과할 만한 하루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어제 자기 전에 주현은 잠깐 생각했다. 10년 만에 만나는데 잘 좀 해 주자, 잘 해보자 이주현 이라고.
“주현아! 이주현!!”
그런 생각들로 걷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은 순간 뒤돌아 봐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고민이 된 것은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서현을 봐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단 돌아는 봐야했다.
“언니는 화도 안 나?”
언니가 무슨 말을 할지 사실 좀 예측이 되지 않아서 주현은 자신이 먼저 첫 마디를 뱉었다.
“주소 받았으면 됐어.”
“언니!”
분명히 한강 공원길을 걸으면서 심박수가 내려가고 있었는데, 분명히 강바람에 평정심을 찾고 있었는데 서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다시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소를 받았으면 됐다니, 뭐가 이렇게 간단하고 편한 거지?
“그런 소리를 듣고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그 사람 원래 그래. 그리고 걸으면서 말하면 안 돼? 한강 오랜만에 오니까 좋다. 진짜 넓네. 아르고 강은 이거 반에 반도 안 되는 거 같은데.”
서현은 주현을 앞질러서 걸어갔다. 주현의 심박수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생각이 항상 복잡했다. 그런데 막상 서현을 마주하면 또 간단해졌다. 충주에서의 ‘그 날’, 교복 블라우스로 자신의 눈물콧물을 닦아줬던 게 생각이 났다.
“원래 알던 사람이야?”
“윤도진이랑 제일 친한 친구. 20년 지기. 중고등학교 대학교 로스쿨까지 같이 나왔고 로펌도 같이 들어갔어.”
“윤도진이라는 사람도 그렇게 무례해?”
“아까 들었잖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민호씨는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걸로”
“… 언니는 어떻게 생각했는데?”
“말은 없는데, 말하는 것 대신 마음을 좀 더 넓히고 있다고 생각했어.”
진짜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었다. 옛 애인 생각하면서 시를 읊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썬캐처 마음대로 들고 서울 가고, 문자로 헤어지자고 하고, 친구한테 파혼했다는 얘기도 안하고 미국으로 도망 가?”
“도망이라.”
서현은 도망이란 단어에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도망을 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현에게 다가왔다가 도망을 간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솔직히 서현은, 도진이 자신에게서 도망을 갈 거라고 생각 못 했다. 도망이 아니라 정리를 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만났던 거였다. 근데 동생한테서 그 단어를 객관적으로 듣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한심한 것인지, 도진이 한심한 것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어?”
“윤도진? 왜?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지. 그 사람 때문에 지금 내가, 어휴.”
“키가 커, 많이 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눈에 띄어. 근데 그 사람은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아. 얼굴은 밝은 피부톤이야. 타고난 거 같아. 쌍커플이 속쌍커플이고 시선은 항상 아래로 향해 있어. 키가 커서 아래로 향해 있는 게 아냐. 그냥 성격이야. 그래서 뭐랄까, 인상 자체가 다 좀 내려와 있는 느낌이야.”
주현은 도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서현의 얼굴이 이상했다. 언니한테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도진이 어떻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언니의 표정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괜히 슬퍼졌다. 그리고 아까 그 민호인지 만호인지 하는 사람에게 컵을 쏟는 게 아니라 얼굴에 뿌리고 왔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봐?”
“아냐. 그냥. 좀. 뭐. 그러네.”
“근데 너 아까 그거 실수야? 고의야?”
“뭐?”
“아메리카노 엎지른 거.”
주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좀 더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니랑 처음으로 대화를 길게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르고 강은 한강 보다 폭이 좁아?”
“말 넘기냐?”
“이미 엎지른 거 그게 뭐가 중요해. 아무튼, 아르고 강.”
“어 좁아. 엄청 좁아. 거기에 배가 뜨는 게 신기해. 또 물어봐. 궁금한 거.”
진짜 언니랑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한 걸 물어보라니, 주현은 순간 무엇을 물어볼까 영역별로 나눠져 있는 폴더에서 제일 괜찮은 애를 찾는 느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문은 정해져 있었다.
“내 그림이 좋다고 생각해?”
“어,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표현하고 싶은 게 확실하고 과감해. 그리고 친절한 느낌이야. 나보다 잘 그려.”
“… 이런…”
주현은 언니가 자기한테 ‘자기보다 잘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뭔가 진 느낌이었다.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니는 내가 자기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이미 알고 있었구나, 도대체 어떻게, 언제부터 알았을까.
“언제 알았어?”
“너 미술학원 가서 처음 그림 그렸다고 가지고 왔을 때부터. 나는 그림 잘 그리는 편이 아냐. 색을 잘 보고 작품에 대한 상상력이 좋은 타입인 거고. 그래서 복원사 하겠다고 한 거야.”
주현은 서현이 재수없단 생각이 들었다. 부러워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현은 이상한 사람이지만 어떨 때 보면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자신도 그런 게 있음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대책을 세웠던 이유는 자기가 뭘 잘 하고 뭘 잘 못할지에 대해서 인지가 잘 안 되고 두렵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칭찬을 들었는데도 언니가 부러웠다. 한강을 걷고 있었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학교나 가자.”
그 말을 하는 서현의 뒤로 한강 철교에 지하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