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_ 파혼자와의 첫 장면

자매의 도시

by Yun

서현의 집에서 학교를 가는 길은 아르고 강을 따라서 걸어서 20분 정도가 걸렸다. 서현은 항상 걸어서 학교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말 피곤할 때는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걸어서 통학을 했다. 아르고 강을 따라서 걷는 길은 관광객이 많은 날이 아니면 평화로운 편이었다. 부활절 기간이 되면 관광객이 그냥 너무 많아서 끔찍하다고 느낄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그 때는 학교가 부활절 방학이어서 서현이 집 밖을 나가지 않으면 됐다. (물론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가만히 있을 타입은 아니지만.)

서현이 피렌체에 온 것은 그녀가 22살 때였다. 한국에서는 서양화 전공을 했다. 엄마가 미술을 했고 외가댁 가족들 대부분이 미술과 관련된 전공을 했다. 서현은 자연스럽게 미술을 하게 되었고 아주 어릴 때부터,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자신은 어른이 되면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고 확신했다. 미술과 관련된 일은 그리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는 그리지 않는 일을 해도 미술과 관련 된 일을 하려면 그리는 건 기본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현은 (다행스럽게도) 그림을 곧 잘 그리는 편이었고 그림을 그릴 때 좋았다. 서현이 그림을 그릴 때 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서현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먼저는 예쁘장한 외모 때문이었다. 특히 군부대에서 살 때는 그녀만큼 예쁜 외모가 없었다. 충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관심 거리가 되었다. 외모 다음으로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았다. 외모와 달리 서현은 특이하다고 했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생각 구조가 다르다고 했고,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일을 자주한다고 평가를 받았다. 서현은 사실 스스로는 왜 그런 이야기를 듣는지 잘 몰랐다. 서현은 자기가 생각이 나는 것들을 말했을 뿐이었고, 부당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들에 대해서는 참지 않았으며, 대책이 없어도 일단 앞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결국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대부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더 당황해 하고 더 관심을 두었다.

서현은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그 때, 그 당시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개의치 않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일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서현은 아예 움직이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는 주현을 이런 면에서 답답해 했다.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현은 알고 있었다, 주현은 생각이 깊은 편이고 계획적이며 오차가 없는 타입이고 말과 행동에 신중한 편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고민이 항상 많다고 느꼈다. 이건 느낌이었다. 유학을 가고 한국에는 딱 두 번 왔었다. 자주 오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만큼 자주 올 돈이 마땅하지 않았고, 중간에 한 바탕 전 세계적으로 큰 전염병이 돌았고, 복원사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두 번 왔을 때, 서현은 두 번 다 주현을 보지 못했다. 주현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대부분 주현의 학교나 입시 일정 때문이었다. 이해가 되긴 했지만 마음 한 켠에 한국에 언제까지 있는지, 자기랑 잠깐이라도 볼 시간이 되진 않는지 조율조차 해 보려고 하지 않는 주현이 서운했다. 일부러 조율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주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서 정리해야 할지를 몰랐을 뿐이다. 생각은 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결국엔 못했고, 서현은 그런 동생을, 입시 중이라는 애를 이거로 어떻게 하고 싶지 않았다.


피렌체 생활은 생각보다 적응할 것이 많았다. 언어는 기본이고 문화와 도시 생활 방식조차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한국이 얼마나 편리한 나라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군인이다 보니 애국심이 없었던 편은 아니었다. 또래 보다 애국심이 있었다. 자신을 더 이상하게 볼 까봐 애국심이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았다. 애국심이 있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자기를 보는 시선들이 어떤지 대충 깨닫게 된 다음부터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걸 쉽사리 드러내기 어려웠다. 차라리 잠깐의 웃음 거리가 되는 것들은 쉬웠다. 아무튼 그 있던 애국심이 밖에서 유학을 하면서 나라에 대한 자랑스러움 때문에 더 깊어졌다.

적응해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견디기 쉽지 않았던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유럽인들은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종차별이 많았다. 이탈리아인들은 강했다. 도시 보다 시골로 갈 수록 더욱 그랬고, 피렌체는 도시보다는 시골이기 때문에 로마 보다는 인종차별이 많았다. 언어연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학기를 시작 때, 그룹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앞두고 그룹이 짜여졌는데 서현과 같은 그룹에 있던 한 남학생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현의 팔목을 잡고 교수님께로 끌고 갔다. 그는 이 동양 여자애와 같은 그룹을 하게 하면 이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현은 이탈리아어를 말로 잘 하지 못할 때였지만 다 알아는 들었다. 그 때 그 남자애가 한 말은 전부 알아들었다. 하지만 서현은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 것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서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 것 하지 못하고 굴욕을 당하고만 온 날이 되었다. 서현은 굴욕을 당하더라도 괜찮았다, 자신도 상대방을 굴욕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날, 그 장소에서는 어려웠다. 이탈리아어를 그녀가 잘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서현은 아르고 강을 따라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처럼 빠르게 집으로 돌아 간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를 끌고 그렇게 한 남자애한테 할 말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발음도 억양도 완벽에 가깝도록 연습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남학생과는 다른 수업을 들었는데 그 학생이 있는 수업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연습해 온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서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를 굴욕 줬던 남학생은 귀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수업 강의실로 돌아왔고 하루를 끝냈다. 강의를 다 마치고 하교 하는 길에 2명의 이탈리아 여학생들이 자신을 따라왔다. 그녀들은 오늘 서현의 모습을 칭찬했고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자기들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고 한국 가수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평소에 자기들이 밉상이라고 여겼던 남학생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 것이 속이 시원해서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두 친구 중 한 명은 갈색의 긴 곱슬머리를 한 사라였고, 다른 한 명은 금발의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는 마르티나였다. 사라와 마르티나는 이후 졸업을 하고 복원사로 일하고, 또 서현이 도진을 만나고 결혼을 약속하고 파혼을 할 때까지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서현의 이탈리아어 습득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고 그녀는 유학 온지 1년 만에 사람들과 이탈리아어로 미술 작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서현, 저 남자가 아까부터 너를 계속 쳐다보고 있어.”


오랜만의 휴일에 사라와 마르티나와 함께 바르디니 정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잠시 앉아서 각자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서현은 피렌체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다음에 서울에 갈 때 주현에게 줄 생각이었다. 서현은 주현이 그림을 잘 그리는 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어떤 순간을 포착해서 그것을 주현의 느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과감했다. 스케치를 갖다 준다면 주현은 좋아할 것이다. 만난지는 너무나 오래 되어서 걔가 어떤 모습으로 컸을 지 좀 상상이 안 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분명 좋아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주현이 줄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사라가 서현에게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서현을 보고 있다고.

서현은 그 쪽을 보았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둘 다 키가 컸는데 한 사람이 좀 더 컸다. 관광객이라고 하기엔 반듯한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이 낯익어 보였다. 낯익은 그 사람은 둘 중 키가 좀 더 큰 사람이었는데 서현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낯익은 사람이 서현을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서현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서현을 의식하고 있었다, 아주 많이. 서현은 그를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났다. 얼마 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몇 작품들이 한국에서 선 보일 프로젝트 기획 모임이 있었고 그 때 서현은 복원팀 멤버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때 법무 관련 쪽에 있던 남자였다.


“나를 쳐다보는 남자는 누군지 모르겠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본 적 있어.”

“아는 사람이라고?”

“아는 사람까진 아니고 본 적이 있다고. 얼마 전에 우피치 미술관 관련 일 때문에 갔던 행사장에서 봤어.”

“근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야?”

“응.”


남자 둘은 서현을 보면서 뭐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마르티나도 서현과 사라 쪽으로 와서 상황을 물었다. 마르티나는 서현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서현과 안면이 있는 사람인데 소심해서 지금 친구한테 도움을 받는 거 아니냐고 했다. 서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서현, 그럼 어떻게 할 거-“


사라가 서현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도 전에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남자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서현은 생각했다. 저 사람 이름을 봤었는데, 알았었는데, 법무팀장이 조용한 친구이지만 일할 때만큼은 과감하고 능력 있다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나는데, 이니셜을 들었는데, Y로 시작하는 이름이었어.

서현이 자기들 쪽으로 걸어온 걸 알아챈 남자들은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봤다. 서현은 다섯 걸음 정도 남겼을 때 남자의 이름이 생각났다.


“윤도진 변호사님?”


도진은 놀란 얼굴로 서현을 쳐다봤다. 옆에 있던 민호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현과 도진을 쳐다봤다. 민호는 처음 봤지만 자신만만한 느낌이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도 변호사였을 것이다. 확실했다. 그에 비해 도진은 프라우드한 느낌이 덜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없었다.

도진이 능력이 좋은 건 맞았다. 겸손한 면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아갈 수록 자기 능력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튼, 서현은 그 첫 느낌이 괜찮았다. 민호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서현은 도진이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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