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서현이 다닌 대학과 주현이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은 같은 대학이었다. 주현은 익숙한 듯 학교 계단을 하나씩 올라갔다. 서현도 익숙한 발걸음으로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꽤나 변한 캠퍼스 풍경이 서현은 재미가 있었다. 유학을 하고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면서 자기가 이렇게 잘 정비가 되어 있는 건물의 학교를 다녔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 좋겠다. 학교가 더 좋아졌네.”
“학교가 거기서 거기지 뭐.”
둘은 걸었다. 많은 학교들이 그렇듯(물론 평지인 캠퍼스도 많지만) 주현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오르막이 많았다. 약한 등산로 느낌이었다. 학기초라서 그런지 학생들은 에너지가 있어 보였다. 오후 수업을 들어가는 사람도 보였고 수업 끝나고 운동을 하러 가는 학생들도 보였다. 그리고 곧 가을 축제인지 축제 준비를 하는 풍경들도 보였다.
“이탈리아 학교는 어때?”
“건물 두 개야.”
“어?”
주현은 너무 의외의 대답에 당황했다.
“한국이라는 대학의 개념이 조금 달라. 대부분은 전문학교들이야, 특히 내가 전공한 미술품 복원은. 이렇게 여러 학과가 모여 있는 종합대학이 아니니까, 건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지.”
주현은 납득이 되었다. 서현은 주현 보다 앞서서 걸었다. 주현은 항상 돌아다니던 학교가 시시하기만 한데 서현은 신난 아이처럼 캠퍼스를 구경했다. 고등학생들만 저런 느낌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어서도 저런 느낌이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주현은 서현의 뒤를 걸으면서 서현에 손에 들려있는 하얀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주현은 생각했다, 윤도진은 왜 언니한테서 저걸 가지고 갔을 까? 그리고 왜 이사를 나가는 아파트에 그대로 두고 갔을 까? 주현은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는데, 언니가 말하는 걸 듣다 보니 그 사람도 언니를 함부로 대하거나 싫어하거나 했던 거 같지는 않았다. 아니, 좋아했던 거 같았다.
“새로 지은 건물이 저거야?”
서현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새 건물을 가리켰다.
“응.”
“저기 옥상뷰가 그렇게 좋다며.”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인스타그램?”
주현은 언니의 인스타그램을 아직 검색하지 못 했다는 걸 생각해냈다. 오늘 중에 해야지.
옥상은 정말 시원했다. 서현은 화장실에 갖고 주현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옥상 벤치에 앉아서 경치를 내려다 보았다. 남산타워가 보였고 한강과 한강 위의 대교들이 보였다. 구름이 예뻤다. 가을 하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주현은 자신에게 맡기고 간 서현의 가방과 쇼핑백을 바라봤다. 쇼핑백 안에는 곤색의 긴 박스가 들어있었다. 주현은 박스를 꺼내 보았다. 박스를 움직이자 안에서 유리들끼리 스치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 거 같았다.
주현은 썬캐처를 구경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열지 않았다. 자신이 이걸 봤다는 걸 알았을 때 맥도날드에서 봤던 서현의 표정을 다시 보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도진이 이 썬캐처를 왜 가지고 갔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 싶지 않았다. 근데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걸 열면 언니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시 후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현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주현은 서현이 옥상 경치를 보고 한 마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서현은 주현과 두 사람 정도의 거리를 놓고 서서 경치를 말 없이 바라만 봤다. 주현은 언니가 왜 호들갑을 떨지 않지? 그리고 자신은 왜 언니가 호들갑을 떨 거라고 생각했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서현은 한참을 그렇게 경치를 보더니 벤치에 앉았다. 주현은 서현의 말을 기다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
서현이 주현에게 질문했다.
“언니가 오자고 해 놓고 아무 말이 없길래?”
“경치가 좋네.”
“그게 다야?”
“스케치라도 해줄까?”
“아냐 됐어.”
서현은 아니라는 주현의 말이 약간 의외였다. 자신이 바르디니 정원에서 주현을 주려고 스케치했던 게 생각이 났다. 아 그거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자신은 주현에게 주려고 했던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특히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서현은 그런 것들이 계속 생겨났다. 그런 것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이라는 눈으로 서현이 주현을 쳐다봤다.
“그 반지 말이야. 윤도진인가 뭔가 하는 사람 미국 갔다며.”
“돌려줘야지.”
“돌려준다고?”
“응 돌려줘야지. 주소까지 받아왔잖아. 편지든 택배든 붙일 거야.”
주현이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맨 처음, 공항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어지만 주현은 서현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말을 다시 들으니 주현은 언니가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 다시 처음부터 물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주현은 이제는 언니랑 대화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를 이해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지를 돌려줘야 하겠다는 건 반지가 특별한 걸까? 제작이라도 한 거였을까? 그러면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려나? 주현은 문뜩 갑자기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은 파혼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서현은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돌려주기는 할 사람이었다. 그걸 막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주현은 서현이 그 행동을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반지 가지고 있어? 지금?”
“왜?”
“나 보여줘.”
갑자기 서현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주현은 자기가 왜 갑자기 그렇게 말했는지 이유가 딱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해야 할 거 같았다. 반지를 보여달라고 하다니. 주현과 서현 사이의 공기가 탁 달라졌다. 서현은 자기도 모르게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반지를 돌려주겠다고 말을 하고 다니면서도 하루 종일 주현에게 그 반지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없었다. 설명을 했어야 했나? 라고 지금 주현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건 자신과 도진과의 관계다. 서현은 관계를 어떻게 복원시키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작업은 복원이 아니다. 마감을 잘 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복원 안에도 마감의 단계가 있었다.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감에 소홀한 순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이 반지는 돌려줘야했다. 자신이 혼자 만든 게 아니었고, 자신의 것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만 정리해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반지를 봐서 뭐하게?”
“아니, 솔직히 말하면 뭐 하루종일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미 헤어진 사람한테 반지를 왜 돌려주는 거야? 언니가 미련이 있는 거야?”
“아니야.”
“그럼 왜 그렇게 해?”
“신경 꺼.”
서현의 목소리가 아까 민호를 대하듯 중저음으로 딱 깔렸다. 긴장감이 확 올라왔다. 그런 서현의 반응에 주현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현도 갑작스러웠고 서현도 갑작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주현은 쇼핑백에서 썬캐처 박스를 꺼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지만 될 것 같았다. 주현은 서현이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 썬캐처는 또 뭐야?”
서현이 썬캐처 박스를 들자마자 서현의 눈썹이 날카롭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주현은 직감했다. 언니가 가장 반응하는 것은 바로 이 썬캐처다.
“야, 너 그거 이리줘.”
“그리고 왜 화를 내? 화 낼 사람은 언니가 아니라 나야.”
“하...”
서현의 큰 한 숨이 주현에게까지 들렸다. 오늘 중 가장 크게 들린 한숨이었다. 사실 서현은 그렇게 한숨을 많이 쉬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서현은 한숨을 쉬는 성향이라기 보다는 일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쉽게 쉽게 해결하는 쪽에 가까웠다. 오늘 하루 다니면서도 한숨은 주현이 많이 쉬었지 서현이 쉬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서현이 큰 소리라고 느낄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서울 괜히 왔어.”
그리고 이어진 서현의 말이 주현은 순간 가시처럼 들렸다. 뭐라고 한 거지?
“뭐?”
“서울 괜히 왔다고.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주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썬캐처 박스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말을 들으려고 이 대화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서현은 그 말을 하면 안 됐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왜 갑자기 저렇게 말하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을 온 건 자신의 추천도 아니었고 남이 등떠밀어서 된 일도 아니었고 서현이 스스로 선택해서 온 것이었다. 심지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을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10시간이 넘게 끌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주현의 얼굴은 일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서운했다. 아니, 이건 배신감이었다. 민호가 무례하다고 느꼈던 것만큼 지금 이 순간 서현도 자신에게 너무나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가족에게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실제로도 신경을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있는 존재들인데, 참 놀랍게도 그들에게 가장 무례하게 굴 때가 많다.
“그럼 하루종일 따라다닌 내가 뭐가 되?” 주현이 말했다.
“그럼 따라오지 말지 그랬어.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가 하자고 하면 왜 다 해?”
주현은 배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정에 박스를 손에 쥔채 벌떡 일어났다.
“내가 따라간 거야? 언니 진짜 이기적이다.”
서현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주현에게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주현은 말 문이 막힌다. 할 말이 없어진다. 말은 안 나오지만 온 몸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따라오지 말지 그랬어라는 말은 서현이 해서는 안 된 말이지 않은가. 그녀가 따라오라고 했기 때문에 따라간 거였다. 어려워했으니까, 부탁을 했으니까, 심지어 10년만에 서울에 온 친언니이지 않은가! 주현은 속에서 따지고 싶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화가 났다. 정말로 서현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은 생각한다. 하지만 서현은 주현만큼은 그냥 자기가 있는 그대로 좀 생각해 주기를, 아니, 생각까지 안해도 된다, 그냥 그대로 좀 받아주기를 바랐다. 시간이 갈수록 서현도 자신을 받아주는 뭔가가 필요했다. 오늘 하루, 서현의 입장에서 서현은 자신을 받아준 곳도 사람도 없었다. 서현은 그런게 필요 없다고 말을 쉽게 했지만 사실 최근 몇 년간, 도진을 만나는 기간 동안 그런게 필요 없다는 말과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도진이 사라졌다. 자신은 오랜만에 서울에 와 있고 주현이 있다.
서현은 주현을 쳐다본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주현이 보인다.
“그럼 너 오늘 나 왜 따라왔는데?”
“...”
“아니, 너 오늘 나 왜 따라왔는-”
“언니니까, 언니잖아!”
서현의 말을 끊고 주현이 소리쳤다. 주현의 소리에 서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현을 쳐다봤다. 주현은 온 몸에서 불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잘 못 된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주현은 앉아있던 계단에서 하나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오니 서현과 같은 계단의 높이에 서 있었다.
“같이 있다보면 괜찮겠지, 뭔가 달라진게 있겠지. 아니면 우리 둘 사이가 좀 변할 수도 있겠지. 내가 멀리서 따라가던 사람에게 의지를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괜한 생각이었네.”
“... 그럼 그랬다고 말을 했음 되잖아.”
“아니, 됐어. 오히려 따라오길 잘 했어. 나는 오늘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그래.”
서현은 어디서 갑자기 화가 났는지 스스로도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갑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말에 꽂혔다. 주현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서현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 이상하다고, 특이하다고. 그러면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내리는 결론은 무엇일까. 서현은 궁금할 때도 있었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주현에게서는 아니다. 이미 나를 알고 있었어야 했던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저 굉장히 깊은 밑바닥 어디부턴가에서 올라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길래? 도대체 어떻길래?”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현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현은 멈춰지지 않았다. 사실 이런 순간에 도진의 얼굴이 잠깐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그 때문에 서현은 더 화가 났다. 그리고 주현은 순간 서현의 눈을 마주보고 직감했다. 뭔가 잘 못 됐다.
“같이 있다보면 괜찮겠지, 뭔가 달라진게 있겠지라고? 그럼 너는? 너는? 너는 뭐가 달라졌는데? 야, 너도 뭐 달라진 거 하나도 없어. 똑똑한 척 상식있는 척 잘난 척은 다 하지만 너는 여전히 내가 부르면 오고 하기 싫어도 하고 네 인생 어떻게 살아야할지 머리 아프면서 너 나한테 묻지도 못하잖아!”
쨍그랑!
주현의 손에서 박스가 날아간 건 서현의 말이 있고 3초 뒤였다. 주현은 던질 생각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던질 생각이었다.
박스에서 빠져나와서 깨진채로 대동댕이 쳐진 유리파편이 보였다. 유리 조각들 하나하나가 주현의 눈에 들어왔다. 뭔가 들어가 있는 듯한 유리구슬, 납작한 비행기, 구름, 그리고 말. 주현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 조각들은 주현이 좋아하는 것들의 모양들이었다. 서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썬캐처의 깨진 유리조각들을 바라봤다. 주현은 유리 파편과 함께 그걸 말 없이 바라보고 있는 서현의 모습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서현의 긴 머리는 흔들렸다. 긴 머리에 가려져 있는 언니의 얼굴이 바람 때문에 잠깐 잠깐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모든 순간들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깨진 썬캐처를 보는 서현의 눈을 주현은 앞으로 잊지 못할 것이란 걸 직감했다.
“야, 너... 너 이거 내가 왜 만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