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도시 (완결)

자매의 도시

by Yun

주현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무슨 생각을 하면서 했는지, 일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순 육체 노동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낮에 한강 공원을 걸으면서 아르바이트까지 취소할 걸 생각한 자신이 미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거였다. 주현은 자신이 던져버린, 자신이 깨뜨려버린 썬캐처의 파편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주현은 그 썬캐처가 자신과 관계가 되어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연히 파혼자인 도진과 관계가 깊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의 연관일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서현은 왜 그게 자기하고 연관이 있는 물건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걸 다시 찾았을 때 원래 너 주려고 한 거였다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 썬캐처를 찾고 무려 반나절을 같이 다녔는데 언니는 왜 그걸 들고만 다녔던 걸까.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주현은 이 모든 것은 그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남탓을 하고 싶은 자신의 모자라고 이기적인 모습과 생각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 썬캐쳐를 던져 버린 건 자신이었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그 마음과 감정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니를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컨트롤 하고 싶었다. 오늘 이 하루를 결국엔 끝까지 힘들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그 사람을 제대로 곤란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근데 그건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그 마음 뒤편에 고스라니 오늘만큼은 잘 해주자, 하는 애정어린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주현은 방으로 들어와서 가방을 방바닥에 던져버리고 침대에 몸을 무너뜨렸다.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속상했다.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울지 말아야지. 안 울거야. 속으로 이 생각을 10번은 한 거 같았다.

주현은 깨진 썬캐처를 보자마자 속으로 도진이 왜 저 썬캐처를 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서현이 동생인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온전히, 있는 그대로 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이미 산산조각이 났는대도 애정이 느껴졌다. 주현은 언니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만 언니를 동경하고 있었다는 굳은 믿음이 부끄러워졌다. 언니 마음을 다 알았다는 것도 아니고 서현이 자신을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뜻도 아니다. 갑자기 그렇게 될 순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서현은 주현에게 주현이 모르는 애정이 있었던 것이고 그건 다른 사람에게까지 느껴졌다. 서현에게 애정을 받는다는 건, 서현을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도진이 서현을 왜 떠났는지는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썬캐처를 달라고 한 이유는 알 것만 같았다. 주현은 도진이 서현을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좋아했고 서현의 애정을 원했을 거란 마음이 스쳤다. 윤도진이라는 사람이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사람은 유일하게 언니를 바르게 본 사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슬며시 들어왔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현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방에서 포장 되어 있는 빨강색 말키링이 가방 밖으로 튕겨져 나와있었다. 주현은 전날 밤에 자신이 조각해 놓은 말을 다시 꺼내들었다. 말을 좋아했던 이유는 서현이 닮은 동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모양인 키링을 만들어서 가방에 달고 다녔고, 말모양 키링을 처음 만들었을 때 언니를 만나게 된다면 하나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항상 느닷없었고 대책도 없었고 갑작스러웠던 사람이었기에 언제 갑자기 나타날지 몰라서 주현은 생각이 날 때마다 조각을 해놓았다. 공항에서 서현을 본 순간에도 이 키링이 그녀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가 왜 썬캐처를 자기한테 주지 못한건지 탓했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냥 주면 되는 거였는데, ‘그냥’이 잘 되지 않았다. 주현은 핸드폰을 꺼내서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켜는 SNS가 아니었다. 주현은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며 자기를 팔로워하는 사람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충주에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서현은 서울역 물품보관함에서 캐리어를 꺼내고 플랫폼 벤치에 앉아있었다. 서현의 옆에는 가방과 하얀색 쇼핑백에 썬캐처가 담긴 곤색 박스가 보였다.

서현은 또다시 복원에 실패했다. 오래 된 미술품은 기간을 따지자면 200년, 400년이 된 작품들도 있었다. 자신은 400년 전 사람도, 시대도, 그 때 당시에 물품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색에 대한 개념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원을 해내는데 지금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는, 하다 못해 자기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이랑도 관계를 복원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얼굴은 그러지 않았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무덤덤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 뒤로, 서현의 마음은 그런 마음들이 몰려왔다.

썬캐처를 바로 줬어야 했나 마음에 의문이 들었다. 바로 줄 수 없었다. 서현에게 있어서 그 썬캐처는 잃어버린 물건이었으니까.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은 건 기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바로 주현에게 줄 수는 없었다. 서현의 논리는 그랬다. 그것이 깨지지 않았다면 결국 서현은 주현에게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줄 수가 없게 됐다. 서현은 유리조각이 되어버린 썬캐처가 담겨있는 박스를 쳐다봤다. 반지는 주소로 보내버리면 되는데 이건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런 건 도대체 마감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냥 한 번 쯤은 평범하게 굴어주면 안 되?”


마지막으로 도진과 싸우던 날, 도진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물론 그 다음에 화해했고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썬캐처를 넘겨줬던 거였다. 주현이 자신에게 화를 내는 내내, 썬캐처를 던져버린 순간에 도진의 그 말과 그 목소리와 그 얼굴이 생각이 났다. 자신이 반지를 주소로 보내 버리면 역시나 하면서 그가 기괴함을 느낄까? 이건 올바른 마감처리가 아닌 걸까. 자신에게 평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어떻게 처리를 하고 마감을 할까. 확실한 건 서현은 반지뿐만 아니라 이제는 썬캐처까지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서현은 기차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서현의 인스타그램에는 두 장에 사진만 올라와 있었다. 썬캐처와 반지. 서현은 한참을 두 사진을 바라봤다. 슬픔이 다가오려는 거 같아 서현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 입술을 살짝, 하지만 힘껏 깨물었다.

서현은 주현의 피드에 들어갔다. 주현의 피드는 서현과 다르게 주현이 그린 그림들로, 때론 일상들로 올라와있는 게시물들이 많았다. 주현이 올린 그림들이 보였다. 서현은 주현의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왜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을까. 그러면 주현이 자신의 SNS 아이디를 알았을 텐데.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있었던 걸까.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서현은 주현이 자신을 알아서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어디 한 켠에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현은 확신했다.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주현은 다시 자신에게 다가 올 거라고. 그러면서 한 가지가 더 확실해졌으면 했다. 동생만큼은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서현은 주현이 올린 그림 하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그림은 크고 작은 손이 엉켜있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에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던 주현은 서현의 피드를, 그 중에 반지 사진을 마주했다. 누워있던 주현은 몸을 일으켰다. 일으켜서 가능한 최대한 자세히 볼 수 있게 사진을 확대했다. 이 반지구나. 주현은 생각했다. 파란색 계열의 반지는 아름다웠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그리고 언니가 이 반지에 얼마나 어떤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일 뿐이었는데도. 주현은 이 반지를 얼마동안이라도 가지고 있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짜증이 났다. 언니는 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이 들게 만드는 걸까. 이런 마음을 평소에 말로 해주면 안 될까, 적어도 행동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나. 왜 뒤늦게 나에게 이런 마음이었구나, 라고 상대가 후회와 같은 마음을 들게 만들면서 느끼게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언니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머저리 같은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언니에게 이럴까. 오만가지 생각이 이 반지 사진 한 장에 가슴을 후벼파며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주현의 그림에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알림이었다. 서현이었다. 같은 자세로 눈이 빠지게 서현의 사진을 보고 있던 주현의 고개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으나 크게 내쉬지는 않았다. 주현의 손은 그 알림을 누르고 따라 들어갔다. 서현이 좋아요를 누른 것은 주현의 그림이었다. 크고 작은 손이 엉켜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히 보면 두 손이 꼭 잡고 있는 것을 그려놓은 주현의 그림.

그림 아래 주현이 적어놓은 그림의 제목이 주현의 눈에, 그리고 서현의 눈에 보였다.


“그 날.”



- END-








단편영화로 찍었던 작품을 소설로 풀어내보았습니다.

해외에 떨어져 살고 있는 자매와 저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만들었던 작품인데 소설로 소개할 수 있음에 소소하게 기쁨을 표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꾸준히 작품을 함께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서서히 추워지는 계절에 마음만큼은 따뜻한 하루들이 지속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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