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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an 04. 2024

아이가 졸업하다

비에도 지지 않고 by 미야자와 겐지

 2024년 1월 2일,

Y의 초등학교 졸업날이다.

졸업식 당일, 학교에 갈지 말 지를 두고 몇 날 며칠을 애태우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 쌓여 고민으로, 번민으로 머릿속을 채워가는 나날이 계속될수록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는 뾰족하고 날 선 감정의 독이 묻은 칼로 사정없이 찌르고 결국 부부간의 다툼까지 이어져 집안 공기는 축축하고 무겁기만 하다.



 

 지난 두 달여 시간 동안 가정학습을 하면서 심리상담센터를 나가게 되고 위클래스 주관하에 학업중단 숙려제를 택한 채 쭉 학교를 나가지 않던 Y에게는 졸업식 당일, 스스로 교실에 들어선다는 생각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내색이 역력하다.

 생전 처음으로 당한 모욕감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집단따돌림을  Y에게는 그 가해집단이 그 친구들이니.. 두 번 다시 보기도 싫을 텐데 졸업식이라고 별반 다를까,

그 아이들을 다시 마주한다는 생각만으로 두려움이 앞서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Y.

자신을 향한 그들의 석연치 않은 시선들이 자꾸만 떠오른다며 울먹이 Y를 보고 있는 난  말을 잃은 채 가슴이 미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아프다.

그래, Y가 힘들다그깟 졸업식 못 가는 거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나중에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그때 졸업식장에 들어설 용기조차 내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진 않을까 이럴 때 난 부모로서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은지 머릿속에 떠다니는 말들은 많은데 정작 Y에겐 닿지 않는 듯하여 그저 애만 태운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책감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트레스는 어떤 진통제로듣지 않는 편두통까지 야기시켜 기어코 내 머리 한가운데 정수리를 바늘로 찌르고 둔기로 내리치는듯한 둔탁한 진동으로, 귓속 달팽이관을 치는 이명으로 괴로워하는 날이 이어지고, 어느 날은 통증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금세 무기력해져 머리를 쥐어 싸매고 드러누워 일어날 수가 없다.



 방학식 준비로 분주한 2023년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그간 여러모로 도움을 받은 위클래스 상담선생님께 직접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Y와 함께 학교를 찾은 나는 이왕 왔으니(아무래도 졸업식에 안 갈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을 인정하고) 담임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권하였다. 오랜만에 담임선생님을 마주한 Y는 잔뜩 긴장한 채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뭉툭한 신발 머리로 애먼 바닥만 문질러대고 있다. (최근 통화로 반 아이들에 대해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Y의 심경을 알렸음에도) 선생님께선 졸업식 참석을 전제로 한 몇 가지 준비사항을 속사포로 일러주시고 그날 보자황급자리를 떠났다.

내가 담임선생님과 미리 짜놓은 판에 꼼짝없이 Y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한 걸까, 그때서야 원망 섞인 눈빛으로 날 흘기더니 금세 애절하게 내뱉는 말이 "졸업식 가기 싫은데 진짜 안 가면 안 돼?" 

Y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나 역시 간절하게 속마음을 전해보았다. 네가 그동안 학교를 나가지 못한 건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고 그 아이들이 나빴던 것이고, 그중 몇 명은 네게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사과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다더라, 네가 오길 기다렸다더라,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아이들과 쉽게 오해가 풀릴 수도 있는데 피하고 도망치는 쪽으로만 선택한다면 그 기회마저 잃게 되는 거라고!  

한 번쯤은 Y가 용기 내어 그 반아이들 앞에 당당히 서 있어 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무엇보다 네 졸업식의 주인공은 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그간 참아왔던 서러운 마음을 눈물로 주룩주룩 주르륵 흘리고 있다.

위클래스 선생님께서도 엄마랑 같은 마음으로 Y의 졸업식 참석을 독려하자, 어렵게 입을 뗀다.

"그래도 교실은 도저히 안될 것 같고, 강당에서 하는 행사에는 부모님들이 다 같이 있으니까 갈게."




 불과 일 년 전 학급임원에 이어 전교 학생회 임원까지 승승장구하며 시쳇말로 인싸가 되어 교우관계의 중심이었던 Y에게 찾아온 두 차례의 학교폭력은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으리라.

오죽했으면 단 한 학기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전학이라는 선택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고 말하던 Y는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예전처럼 자기가 하는 말에 깔깔깔 웃으며 좋아해 주는 친밀한 관계의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단다. 다만 투명인간 취급받는 일은, 기름과 물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관계로 자신이 겉도는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단다.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 혼자서 급식을 먹어야 하는 날도 졸업하는 날까지만 견디면 된다고 생각하며 버텨보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급식실에서 마주 앉는 것조차 불쾌한 기색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욕하기도 하고 다른 자리  가서 처먹으라고 말하는 무리들 앞에서 아무 대꾸를 할 수 없었던 Y는 메뚜기처럼 자리를 이리저리  몇 차례 옮겨 앉아가면서까지 주린 배를 채울 오기는 부리기 싫어 바로 퇴식구를 향해 식판을 뒤엎고 나오면서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되뇌었다고...

행여라도 전학  학교에서 문제나 갈등이 생길까 봐 일부러 튀는 행동이나 말은 일절 하지도 않고 그저 죽은 듯이 조용히 졸업 때까지만 버텨 보려고 엄마한테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Y.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먼저 담임선생님께 이런 일에 대해 사실여부 파악을 요청드렸고 이내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지만, Y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고의적인 따돌림은 아니라서 학폭은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다만 뒤늦게 전학 온 상황 탓에 이미 친밀한 교우관계를 형성한 무리에 Y가 끼어들기 어려웠을 거라고.

그리고 아무리 담임교사라도 교우관계에 관여하는 것은 어렵다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Y를 위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정학습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간 켜켜이 쌓아온 Y의 심적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심리상담과 DBT 행동치료까지 병행하며 날마다 하루종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느라 엄마의 돌봄이 필요한 작은 아이에게 미쳐야 할 케어에는 숭숭 공백이 생기는 날도 다반사지만 여전히 Y는 자기 전에도 내가 옆에 있어야만 잠을 청한다.


 


 

 끝내 Y는 졸업식장 자신의 이름이 쓰여있는 의자에 앉지 못한 채 맨 뒷자리에서 청중들의 무리 틈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서 졸업식순을 구경하다가 이날 졸업하는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강당을 빠져나와야 했다.

감사하게도 주일학교 전도사님과 의형제 같은 찬양팀 동생이 식순이 다 끝나기 전에 학교로 달려와줘서 졸업식날 찍은 단 한 장의 사진 속에서 Y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다.

 

 새해 오가는 덕담 중 "꽃길만 걷자"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왜냐면 여전히 내게 고난은 축복이기 때문이고,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삶을 경험한 나로선 꽃길만 있는 삶은 불가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술램프의 지니가 단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2024년 한 해만큼은 Y가 걸어가는 길이 꽃길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해진 Y가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해서 단단해질 때까지만이라도 꽃길만 걷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싶은 날이다.

졸업식장을 나와 혼자 집으로 돌아온 뒤 차에서 내릴 수가 없어 주차장에서 한 시간가량을 꺼이꺼이 울고 또 흐느끼고 다시 또 울다가 Y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를 적어본다.


사랑하는 나의 보물 Y야,

그런 힘듦은 참지 말고 나누는 거야.

그런 짐은 혼자 지는 게 아니라 내려놓아야 되는 거야.

넌 혼자가 아니니까

네겐 언제나 네 편이 되어줄 가족이 있고

언제라도 널 위해 눈물로 기도해 줄 분들이 있으니 

죽고 싶을 만큼 모욕적이고 속상했던 지난 과거 속에 갇혀있지 말고

이제 그만 나와줄래?

언제라도 손 내밀면 네 손을 꽉 잡아줄 거야.

앞으로 네가 또 넘어지면 바로 등 뒤에서 네가 일어날 때까지 힘주고 응원하며 도와줄게.

널 정말로 사랑한다.

기억해 주렴.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음 짓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볏짐을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출처>
비에도 지지 않고
by 미야자와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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