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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연두 Nov 01. 2024

이상하게 나물이 맛있다.

어릴 적 엄마는 커다란 고구마줄기를 가끔 사 오셨다. 

고구마줄기로 반찬을 만들려면 끝부분에 붙어있는 잎도 떼어야 하고, 빨간 줄기도 벗겨야 한다.

동생과 함께 줄기를 벗기면서 누가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줄기를 벗기나 내기하기도 했다. 

손끝이 살짝 빨갛게 물들 정도로 고구마줄기를 벗겨내었다.

한참을 앉아서 벗겨내면 재미가 꽤 쏠쏠했다. 

잘 벗겨지지 않는 줄기도 있을 땐 "이쒸!" 성질도 내고, 한 번에 '쓰윽'하고 벗겨질 때는 쾌감마저 느껴져서 재미나게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서 반찬을 해주셨지만, 반찬으로 만난 고구마 줄기와 친하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한두 개 집어먹는 그런 반찬.

고구마줄기뿐만 아니라 엄마는 다양한 나물반찬을 종종 해주셨다.

비름나물, 취나물, 도라지 무침, 시금치 등등.. 하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나물반찬은 반찬이 아니었다.


그냥 "풀떼기"였다

풀맛나는 비슷비슷한 것에 양념을 해놓은 것들... 참 철이 없고 입이 짧았다.

어떻게 서든 먹여보려는 엄마와 풀은 싫다면서 고개를 젓는 나!

몸에 좋은 반찬들은 몇 개 먹지도 않고, 좋아하는 계란이며, 고기반찬만 찾는 아이였다.



내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면서 매일 걱정인 부분이 바로 반찬이었다. 

"매일 뭐 먹지????????" 

왠지 매일 새로운 걸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저 그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무거나 잘 먹는 남편이었다. 

지금껏 내가 해준 음식을 가지고 단 한 번도 "맛없다", "이건 별로네", "이게 음식이냐", "이걸 먹으라고!" 하면서 뭐라 한 적이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뭔가되었든 맛있게 잘 먹고,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직접 만들어서 같이 먹는다. 

하하하! 그래서 우리는 19년을 같이 살아가는 거야!!!!!!



시골이 고향인 남편은 입맛도 완전히 한식 파다. 그래서인지 종종 나물을 찾는다. 

"흠... 난 별로인데...!"

나물을 사다가 무치고 볶고 네이버의 힘을 빌려서 만들어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물이 맛있다. 

들기름에 마구 볶은 깻잎나물도 고소하니 손이 자꾸 간다.

된장을 넣어 무쳐낸 취나물도 먹을만하다.

샐러드처럼 무친 쑥갓나물도 한번 더 먹고 싶어지는 맛이다.


참 이상하다. 왜 그런 걸까?

나물에 밥을 먹고 나니 오히려 속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되는 것 같다.

분명 그냥 풀떼기였는데, 먹어보니 나물마다 맛이 다 다르다. 

그리고 또 먹고 싶어지는 맛이다.


어릴 때 모르던 맛을 찾은 걸까? 이제는 냉장고에 나물반찬 한두 가지는 꼭 해둔다.

나이를 먹으면서 입맛이 변한 건지... 한식파인 남편을 따라먹다가 나의 입맛도 바뀐 건지 모르겠다.

이유를 몰라도 상관없다.

이제는 이번주 나물반찬을 "뭐해먹을까??"에 관심이 많다.


이제야 나물맛을 알게 된 나! 

하지만 아이들 역시 나물에는 전혀 손대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릴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한입 먹어봐~~"열심히 권해보지만 나물은 전혀 먹지 않는다.

아직은 잘 모르나 보다. 

다양한 나물이 만드는 그 환상의 맛들을! 아마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렇지만 너무 고기반찬만 찾지는 말아 줘! 한 달 식비가 장난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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