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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연두 Oct 18. 2024

엄마에게도 밀키트가 필요했다

한.. 세 박자쯤 늦은 걸까?

이제야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응답하라 1988]

어느 날부터 유튜브에 짧은 영상들이 올라오기에 무심코 보다가...

드. 디. 어 본격적으로 보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덕선이처럼 고등학생도, 진주처럼 어린아이도 아닌.. 초등학생이었다.

(아! 이런 나이가 나오는구나... 그래 그때의 초등학생은 지금의 사십 대 후반이다)

우리 집 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아마도 덕선이네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방하나에서 온 가족이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드라마 속처럼 둥근상에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었다.

화장실은 집 안이 아닌 집 밖에 있었다. 겨울엔  점퍼를 입고 가야 했다.


시장 근처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시장까지는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걸어서 시장으로 가셨다. 자가용은 없었다.

분명히 집 근처에 마트가 있었을 텐데.. 엄마의 주 방문지는 시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시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한참을 걸어 시장에 가면 재미있는 것들, 볼거리들이 많다고 느꼈나 보다.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는 까만 비닐봉지 여러 개를 손에 들고 왔다.

가끔은 무겁고 힘들었지만 어린 마음에 그렇게 엄마를 돕고 싶었나 보다.

과일이며, 야채를 사가지고 다시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시장으로 가는 길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그때의 그 길이 아직도 생각난다.


어릴 적 엄마는 우리 가족에게 만능요리사였다. 못 만드는 음식이 없었다.

온갖 김치도 척척 담그셨다. 콩을 사다가 직접 불리고 갈아 콩국수를 만들었다. 무와 각종 야채를 넣고, 육수를 내어 냉면도 만들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는 만능 요리사였다.

매번 엄마는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일 년에 몇 번씩 있는 제사음식부터 일상의 음식들까지...

엄마의 몸은 늘 부엌에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깔끔한 싱크대가 있고, 바닥이 온돌로 된 부엌이 아니었다. 슬리퍼를 신고 내려가야 했고, 바닥에 물도 버릴 수 있는.. 지금은 어딘가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부엌이 엄마의 부엌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는 홀로 많은 음식들을 만드셔야 했다.

그때 만약 밀키트 같은 게 있었다면 엄마가 조금은 편하시지 않았을까?


그 당시 엄마가 애용하던 간편식이 하나 있었다.

밀키트라기보다는 즉석요리라고 해야 하나? 바로 3분 짜장과 3분 카레다.

어떤 요리든 척척 해내는 엄마가 짜장이나 카레를 할 줄 몰라서 사 오시는 건 아닐 것이다.

분명 더 맛있는 짜장과 카레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 즉석식품을 가끔 사 오셨다.

전자레인지도 없는 우리 집에서 짜장과 카레를 데우려면 뜨거운 물을 끓여야 한다

조심조심 봉지째 짜장을 냄비에 넣고 따뜻하게 데워주셨다.

뜨끈한 짜장에 밥을 비비면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다.


입이 짧은 나는 어릴 적 카레를 먹지 않았다.

노란 똥 같다고 쳐다보는 것도 싫어했다.

하지만 동생은 나와 달랐다. 짜장보다는 카레를 더 좋아했다.

입이 짧은 두 아이들의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이나마 엄마의 쉼을 위해서 3분 요리를 선택하신 건 아닐까?

아쉽게도 그 시절엔 그다지 간편식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다행인 걸까??

지금은 3분 요리 이외에도 다양한 밀키트들이 많이 나와있다. 이미 다 계량되고, 잘려서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들이 마트에 넘쳐난다.

어떤 것들은 아예 요리가 다 되어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시간만 맞추어주면 몇 분 만에 뚝딱 요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 집 부엌은 엄마의 부엌과는 다르다. 디귿자형의 넓고 길쭉한 싱크대에 에어프라이기며, 전기밥솥이며, 오븐까지 필요한 것들은 대체로 갖추어져 있다. 엄마보다 더 깔끔하고 편리하게 요리가 가능한 곳에서 나는 배부르게 무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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