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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연두 Oct 25. 2024

내 제사상은 차리지 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뭐가 됐든 여덟이라면 그건 적은 수는 아니다.

사탕을 8개 먹으면 입안이 너어무~~ 달다. 

사과를 8개 먹으면 엄청~~ 배가 부르다.

커피를 8잔 먹으면 그날 잠은 다~~ 잤다.

사람이 8명이면 한 마디씩만 해도 시끄럽다.


엄마는 8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을 왔다.

그 당시의 장남의 의미는 지금의 장남과는 좀 달랐다. 

주어진 책임감이 막중했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힘든 시집살이와 함께  엄마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짐들 때문에 엄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런 힘듦을 감당하기 힘들 때마다 어린 나에게 늘 당부하셨다.

"넌 절대로 장남에게 시집가지 마!!"


엄마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빠의 조상들을 위해서 1년에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는 제사를 지내야 했다. 

제사 때마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어릴 때부터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까? 

늘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부엌이란 장소를 싫어하게 된 것일까?

어린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엄마를 돕겠다며 옆에 앉아 소소한 일들을 돕고 심부름을 하는 게 다였다.


결혼하고 장남이라는 이유로 몇십 년 동안 지내던 엄마의 제사는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끝이 났다. 제사는 작은 아버지에게 넘어갔고, 엄마의 명절은 조금 홀가분해졌지만, 이미 몸은 많이 망가진 뒤였다.


그러는 사이 나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엄마의 소원대로 다행히 남편은 장남이 아니었다. 

장남은 아니었지만 제사를 지내는 일은 도와야 했다. 

어릴 적부터 본 제사문화에 익숙하기에  돕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준비할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분명 음식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

제사상위의 음식들을 모두 먹는 건 힘들다. 많은 양이라서 다시 집으로 바리바리 싸가기도 한다. 

매번 같은 종류의 음식들... 만드느라 기름냄새를 실컷 맡아 손이 잘 가지도 않는 음식들을 보고 있으면 왜 제사라는 것이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그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들어가는 정성과 비용까지 생각하면 그런 생각들은 더욱 커지게 된다.

참 쓸모없는 문화구나! 음식들도 아까워!


가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꼭! 말하는 게 있다.

"난 제사상 같은 거 절대 차리지 마!"

"왜?"

"그 음식들 너무 아깝고 차리기 힘들어! 난 살아있을 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갈 테니까... 절대 차리지 마! 차라리 내 생각을 하면서 맛있는 거 사 먹어. 그냥 외식해! "


이제는 우리 엄마아빠도, 그리고 시부모님도 모두 계시지 않는다.

친정 쪽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시댁 쪽은 제사를 지내기는 하지만 음식은 준비하지 않는다.

음식은 모두 업체에 맡긴다. 명절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준비된 음식으로 지내고 돌아온다. 

제사도 마찬가지다. 힘들게 쪼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서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업체에서 준비된 음식으로 간단히 제사상을 차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음식은 정성이라고 너무 성의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지도, 즐겨 먹지도 않는 음식들에 나의 시간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건 싫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노동 때문에 명절만 되면 남편이 미워지고, 시댁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짐은 더 싫다. 

살아있을 때 좋아하는 것 많이 먹고, 더 즐기고 나중에 하늘나라에 갔을 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작은 꽃이나 하나 놓아주면 좋겠다. 


**전은 술안주로 지인들과 수다떨면서 먹을때 맛있다. 나의 단골집에서 파는 전은 정말 엄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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