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때 겪은 일이었다.
집 앞에 있는 탄탄멘 식당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음속에 큰 응어리 같은 게 하나 있는데, 얇은 바늘 한 침에 펑하고 터져버리는 풍선처럼 아주 약한 힘에도 감정이 일시에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맛난 음식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가득한 식당에 앉아 있으니 내 마음도 조금 괜찮아지는 듯했다. 그동안 먹고 싶었지만 먹지 못했던 마라샹궈에 대한 욕망을 잠재워줄 만한 훌륭한 대체재를 찾았다는 생각과 함께. 잔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먹고서는, 친절하고 장사 수완 좋아 보이시는 사장님 부부께 넉살 좋은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왔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내 차에 다다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잔잔한 물결이 바람과 만나며 조금씩 커지다 중력에 못 이겨 부서지는 파도처럼,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이다.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까 봐 선글라스를 쓴 채 한 동안을 차 안에서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잃은 양.
3년간 나의 자아 그 자체였던 일을 그만두고 한 달간 제주 살기를 시작한 지 2주가 되어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해야지'라는 마음과 함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앞으로 나의 미래를 잘 준비해야지'라는 마음도 공존했다.
내 나이는 서른둘이 되었고, 이제는 정말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때라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나 자신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고자 제주 한 달 살이를 시작한 것인데, 생각지 못한 감정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내가 있는 숙소는 해가 떨어지면 의지할 수 있는 불빛이 가로등 밖에 없는 곳에 위치해있다. 심지어 주민(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 가로등 불빛이 눈부셔서 꺼달라고 민원을 넣기도 하는 곳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테스트를 하면 관종에, 분위기 메이커로 제일가는 ESFP/ENFP가 나오지만 사실 마음 맞는 소수와의 시간이 아니면 꽤 많은 시간 혼자 있길 좋아하는 성격인 나에게도 이곳은 상당히 외롭고 고독한 곳이었다.
거기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막막함은 아직 오지도 않은 어두운 밤에 이미 잠식당한 것처럼 절망적인 기분이 들게 했다. 걱정, 불안, 외로움, 고독함. 이 모든 감정들이 분갈이를 해야 할 때가 된 화분처럼 무럭무럭 자라다가 한계치에 다다라 뻥-하고 터져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게 그렇게 한 번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이 감정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적 감정의 폭발은 신체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내 몸이 나의 호르몬에 대적하는 방법은 '우는 것'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고강도의 운동을 하고 나면 에너지가 생기고 활기가 돌았던 여러 번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작은 동네에서 헬스장을 갈 순 없으니 밖에서 러닝을 하고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후에는 오늘 느꼈던 감정을 글로 씀으로써 해갈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 까지오니 몇 시간 전에 느꼈던 극한의 감정이 제주의 시원한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 감정은 휘발적이다.
모든 감정은 내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아니 붙잡고 있어도 사라진다(물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의미 있던 것들은 무의식에 기억되겠지만).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있었던 일, 했던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둔다. 그렇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지워지니까.
인간이 내면적으로 성숙해야 할 동기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을 통해서 부여받는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만 있고 즐거운 감정만 느끼면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서 성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방인처럼 불쑥 찾아오는 이 불안한 감정에 너무 압도되지 말자는 상투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달랐던 오늘의 대처 방법은, 불안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자세히 생각해보는 것과 이것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분명히 아까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나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