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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May 08. 2021

팝콘의 부활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일 년을 훌쩍 넘기며 나의 일상을 뒤바꿔놓았다. 


집 안에서 유독 눈에 잘 띄는 곳에 마스크가 걸렸고, 자동차의 컵 홀더에는 손소독제가 테이트아웃 커피를 대신했다. 쇼핑리스트에는 감기약이 추가되었다. 살짝 미심쩍은 증상도 유심히 살핀 탓인지 일 년 내내 감기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건 되레 쌉쌀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라짐 속에서 의외의 재미를 맛보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보통 팝콘을 먹지 않는 편이었다. 한껏 들뜬 심정으로 업그레이드한 팝콘과 콜라를 품에 안고서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가령 무인도에서 표류하는 인물을 마주한다고 해보자. 그는 아무런 기약도 없이 코코넛과 꽃게(아니면 이름 모를 어류)로 끼니를 때우며 간신히 생존을 이어간다. 식량이라기보다는 주전부리에 가까운 팝콘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영화 취향 탓에 벌어진 비극일 수도 있지만, 남기고 버리는 일이 반복되며 팝콘은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것이 영화에 어울리는 정도를 세심히 귀띔해주는 '팝콘 가이드'같은 것이 나오지 않는 한 영화를 보며 무얼 먹는 일은 영영 없을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파트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신박한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정도가 전부였다.  


지루함에 비례하며 영화감상의 시간은 늘어만 갔고, 나는 그 일에 적응해나갔다. 그러던 와중 나름의 장점을 발견해냈다.  입체적인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음향 장비나 미장센을 즐길 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은 없지만 내 멋대로 다룰 수 있는 '리모컨'이 있었다.


입이 자유로운 상영관에서 나는 반쯤 누운 자세로 리모컨의 재생 버튼을 지그시 누른다. 나른한 오후 기운에 졸리면 잠시 이야기의 진행을 멈추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하고, 문득 딴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화장실도 마음껏 . 어쩌다 혹시, 배가 고프면 즉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는 집에서 영화를 보며 무얼 먹는 일을 구체화시켰다 - 인터넷에서 입에 맞는 팝콘을 골라 주문했다.


그 후 나는 미각을 강탈하는 장면을 맞닥뜨리면  비축해둔 팝콘을 살짝 뜯어 전자레인지에 빙 돌렸다. 느긋이 타다닥 옥수수 알갱이가 터지는 소릴 듣는다. 별다른 조리법이 없는 그것이지만 모든 알갱이가 꽃을 피워야 제대로 한 기분이다.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던 어느 날, 빈 속에 커피 한 잔만 달랑 들고 상영관에 들어갔다가, 씬스틸러처럼 '두둥' 등장한 먹는 장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속 쓰린 기억이 떠올랐다. , 기양양한 포만감이 차올랐다.


이제 나는 재생과 정지 버튼을 마음껏 오가며, 술 한잔을 부르는 영화도 빈틈없이 즐긴다. 






각자의 고충으로 모두가 힘들어서 내가 특별히 더 힘들다고 말하기도 멋쩍은 그런 시기이지만, 보려고 애쓰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폭염과 혹한에도 기꺼이 방호복을 입고 다수의 안전을 지켜준 고마운 분도, 마스크의 답답함을 꾹 참아내는 기특한 아이도, 출입 명부를 채운 꼼꼼한 손글씨도,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손소독제를 바르던 나의 이웃도, 그리고 어쩌면 무심히 스치는 남인 줄 알았던 우리가 같은 공기에 머무는 사이라는 걸 증명한 코로나의 역설마저도...


무엇보다, 우리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장면 틈새로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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