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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Aug 15. 2021

가족의 맛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 나온, 튀긴 옥수수가 먹고 싶어 졌다.


이상한 일이다. 첫째로 나는 튀긴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지 않고, 둘째로 나는 옥수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 먹는 장면에 빠져드는 일도 드문 편이다.   








영화가 '무는 천재야’하고 시작되어버린 탓일. 


어떻게 조리해 먹어도 맛있는 무에 대한 찬사가 첫 대사였다. 그러나 영화는 요리가 아니라 십수 년 전에 물에 빠진 이를 구하다 목숨을 잃은 큰 아들(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


맨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아들을 잃은 노모, 토시코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녀는 매해 아들이 목숨을 구해준 이를 집으로 부른다. 그러고는 그가 떠나면 흉을 본다.


그런데 다시 본 영화에서는 다른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토시코뿐이 아니다. 의사였던 그녀의 남편은 노년이 되어 자연스럽게 일거리가 사라졌지만 빈 진찰실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노부부는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된 준페이가 살아 있던, 찬란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 느껴질 뿐이었다.


그 집에는 둘째 딸(지나미)과 막내아들(료타)의 자리가 없었다. 그날도 둘은 잠시 부모님 댁에 들린 사람처럼 하루를 보내고서 각자의 생활터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미스터리가 남아 있었다 - 나는 '옥수수'가 등장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폈다.



'키키 키린'이 연기한 토시코



토시는 옥수수를 튀기며  이야기를 한다.


옥수수 밭 근처에 살았던 적이었다. 어느 밤에 남편은 밭에서 서리를 하고, 다음 날 그녀가 그 옥수수를 튀기고 있는데 옥수수 밭주인이 그들의 집에 불쑥 나타난다. 그가 한 아름 안은 옥수수를 나눠주겠다고 말하는데 옥수수 튀기는 소리가 '펑'하고 났다던, 제법 스릴 넘치던 순간이었다.


삼십 년도 지난 공소시효마저 넘긴 무전취식이지만, 가족에게는 유효한 추억거리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찌거나 굽는 대신 튀겨서 먹는 토시코네 옥수수는 하릴없이 꾸벅꾸벅 조는 한이 있어도 진찰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아버지를 가족이 모인 부엌으로 나오게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도 토시코네처럼 사연을 품은 음식이 있었다.


고로케이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있는 무작위한 것이어서 솔직히 어떤 날은 좋았고, 어떤 날은 싫었다.


그날 밤에 수지맞은 건 동네 빵집이었다. 느지막이 현관문에 들어선 아빠는 가게라도 털어온 사람처럼 보였다. 자동반사적으로 엄마는 화난 듯 보였고...


다음 날 아침, 봉지 한 가득 담긴 빵은 식탁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예상대로 엄마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다 먹냐고 추궁을 시작하자 아빠는 방어태세를 갖추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로케를 발견하고는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맹세코 이건 산 적이 없다고 했다. 아빠는 그냥, '고러케 주쇼'라고 했는데 고로케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빵집 주인이 의도적으로 고로케를 넣은 것인지, 아니면 고로케를 산다는 뜻으로 들은 것인지 실랑이를 벌이다 웃어 버렸고, 나는 그날 이후로 고로케를 보면 저절로 입조심을 한다.


하루가 지나도록 진열대에 놓여있다가 우리 집 식탁에 놓인 고로케의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그건 우리만 아는 이야기가 생겨버린 맛이었다.


'고로케'는 지금도 대화가 끊어지며 정적이 흐르는 순간에 알차게 써먹을 수 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이니까, 그건 꽤 괜찮은 일이었다.   







고레이다 하로카즈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 서로에게 닿을 수는 없어도, 묵은 이야기의 감각을 나눈 존재'가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가족끼리 알던 그 맛이 떠오르게 만든 그가 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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