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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냥이 Oct 30. 2022

아빠의 <전국노래자랑> 도전기

1980년 시작해 42년 최장수 프로그램이 된 KBS ‘전국노래자랑’. 전 국민 노래 경연 역사를 만든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올해 95세인 국내 최고령 최장수 MC 송해의 관록이 빛나는 이 노래 쇼는 40년간 평양에서 마라도까지 전 국민을 찾아다니며 위로했고, 평범한 서민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과  기쁨을 줬다. 황해도 출신 송해의 구수한 진행과 무명 시절 ‘전국노래자랑’을 거쳐 간 트로트 스타들이 재조명되면서 이 노래 쇼가 보여준 인생 희노애락 한 자락이 떠오른다.


#  1989년 서울. 

강남구 편 ‘전국노래자랑’ 예심 며칠 전부터 아빠는 엄마를 열심히 졸랐다. 

 “  아, 같이 갑시다. 응원해줘야 더 잘하지. 진짜 안 갈 거요?” 

  “ 아이  참, 이 양반이… 갑자기 노래바람이 나서. 아 몰라요, 앞집 백 씨하고 가든가.” 


아빠의 애처로운 눈길은 나로 향했다. 다음 목표는 나였다. 

“ 너도 친구들하고 와서 응원해.” 

“ 아빠, 나 학교 안 가? 학교 가야지 그 시간에 어떻게 가….” 


사춘기 딸의 무심한 반응에 또 한 번 상처 입은 중년 남자는 그렇게 응원단도 없이 홀로 예심을 보고 풀죽어 돌아왔다. 현철의 ‘봉선화 연정’을 수백 번 연습했건만, 현실은 안 봐도 실로폰 소리 때~~앵.


아빠의 예심 도전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30년 뒤 내가 아빠의 나이가 되고서야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고 아려오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 트로트를 좋아하고 밤마다 집 앞 가라오케를 드나들며 엄마 속을 썩이던 울 아버지.

어느 날 날아든 카드 내역서에 엄마는 드디어 폭발했고 우리 집에서 모든 트로트 카세트 테이프는 사라졌다. 춤바람보다 무서운 트로트 바람에 물든 아버지 탓에 우리 가족은 디즈니 만화 ‘코코’ 속 할머니만큼 트로트엔 진저리쳤다. 


그랬던 엄마와 내가 30년 뒤 나란히 앉아 트로트 방송을 보며 응원하고 있으니.


“엄마. 그때 아빠는 참 외로웠겠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아서. 그때 아빠 마음 알 것도 같아.” 

 “니 아빠 살아있으면 분명 ‘미스터 트롯’ 맨 앞자리에서 응원하고 있었을 거야.” 

“ 그러게. 울  아빠 취향은 딱 영탁 팬인데… ‘막걸리 한잔’을  얼마나 좋아했을꼬….”

" 아냐... 추억으로 가는 당신' 따라 부르고 있었을걸... 


그렇게 트로트는 우리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PS:  아빠. 

오늘은 아빠가 좋아했던   <전국노래자랑> 을 보다가 아빠가 생각났어요. 그 때 내가  좀 철이 들었더라면   응원가서 맨 앞자리에서 아빠 응원해줬을텐데....^^   

 그  <전국노래자랑>에서  노래했던   참하고 바른 청년이  떠올라서  아빠한테 소개시켜 줄라고요...트로트 가순데 목소리가 어찌나 카랑카랑 한지..

이 사람,  아빠가 지어준  내  이름을 맨날 외치고 다녀요. 온 동네 떠나가게..

아빠가  만약  <미스터트롯>을 같이  봤다면  누구를 응원했을까.

아마 아빠 원픽은 나랑 같았을거야.   울 아빠고 난 아빠 딸이니까...

하늘에서도  이  착하고  바른 청년 잘 되라고 꼭  지켜봐주세요. 꼭요...

그럼  우리,  추석에 만나요... 그 때   내가  이 가수  새 노래   '오케이'  들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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