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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희원 Feb 25. 2022

눈높이 운동으로 몸 재조립하기

여성중심운동클럽 '예스 무브먼트' PT 10회 회고

들어가며: 만만치 않은 운동치

여자들 중 선뜻 '나 운동 잘해'라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체로 턱걸이 한 개가 어려울 것이고, 누워있는 걸 좋아할테고, 그러니까 내가 "난 운동 정말 못해"라고 하면 대부분 "나도야"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렇지만 알아두라고. 나는 정말 정말로 운동을 못한다. 얼마나 못하냐면 살면서 나보다 운동을 못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며 운동을 못해서 생긴 특수한 에피소드는 끝도 없다. 다섯 살 때 발레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이 못 가르치겠다고 돌려보낸 이야기부터, 6개월 동안 수영을 배우며 끝까지 물에 뜨지 못해 혼자 초급레인에 남겨진 이야기.(보통은 첫 날 뜬다. 늦어도 어지간하면 일주일 내로 뜬다) 친구들이랑 놀러간 볼링 장에서 점수를 3점 받은 이야기. (공을 스무 번 굴려서 핀을 세 개 쓰러뜨렸단 그 의미가 맞습니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나라고 몸을 써서 노는 게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당연히 운동을 싫어하게 됐다. 수준에 맞는 지도를 받아본 적은 없고 체육시간엔 늘 망신만 당했으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30대가 되니 잘하든 못하든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고 살아야 했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고. 돈은 없고. 몸은 점점 못 버티고. 있는 체력 없는 체력 끌어다 쓰면서 살려니 늘 건강에 있어서 빚을 내며 사는 기분이랄까. 이러다간 곱게 죽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동갑내기 하우스 메이트 덕분에 2대 1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이 운동 저 운동 홈트, 등산, 요가를 찔끔찔끔 건드리다 마침내 정말로 꾸준히 운동하는 몸으로 거듭나리라는 마음으로 1:1 PT를 받게 된 것이다. 



진단: 수치로 확인한 저질 체력

예스 무브먼트 소라쌤에게는 이전에 그룹 운동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여성 대상의 120분짜리 그룹 수업이었는데, 일요일에 하루 나가서 폼롤러 마사지로 울면서 뭉친 근막 풀어주고, 빡세게 근력 운동 하고 나면 수요일까지는 피가 평소 보다 빨리 돌았달까, 목이랑 어깨 통증이 확연히 줄었달까. 여러모로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운동이었지만... 온갖 프로젝트의 마감으로 정신없을 때 잠깐 쉰다는 게 또 흐지부지 영영 안나가게 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찾았다. 그룹 운동 수업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그 사이 체력이 더 떨어졌지 싶어서 아예 PT를 받아보기로. 목표는 다른 무엇보다도 체력 강화. 


첫 수업에서는 인바디 측정, 동적 스트레칭과 심박계 체크로 몸 상태를 확인했다. 지난 2년 사이 몸무게가 10키로 정도 늘었는데, 과연... 심각한 수준의 체지방율이 나와서 머리가 띵해졌다. 뭐 그렇지만 그건 차치하고, 더 인상적인 건 심폐지구력 측정이었는데, 명치 즈음에 심박계를 차고 메트로놈 리듬에 맞춰서 너무 빠르지 않게 스텝박스 오르내리기 운동을 한 뒤 3분 간 쉬면서 휴식기 심박을 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희원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이제... 36이요"
"오 다행이다. 30대 후반이라서. 30대 초반이면 아예 맞는 단계가 없을 뻔 했네요. 베리 푸어(very poor)에요. 제일 낮은 단계"
"역시. 이런 거 젤 낮은 단계를 벗어나 본 적이 없어요... 근데 그게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에요?"
"희원님은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이 에너지 총량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써요. 남들은 걸을 때 60% 쓴다면, 희원님은 걸을 때 80% 쓰는 거에요. 그리고 회복기 심박수가 너무 높아요. 금방 안떨어져요."
"그게 빨리 떨어져야되는 거에요?"
"예를 들면 엘리트 선수들은... 단거리 달리기 하면 바로 심박수가 확 오르고, 휴식하면 바로 심박수가 안정되거든요. 심장이 몸이랑 동기화가 잘되어 있는 거죠. 힘을 써야될 때 심장이 바로 힘을 내고, 쉬어야 될 때 바로 쉬고."
"그러면 뭐가 좋은데요?"
"그니까 그 사람들은 조금만 쉬어도 금방 회복되는데, 희원님은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고, 오래 쉬어도 회복이 느려서 계속 피곤하단 얘기에요"

"헉. 진짜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맨날 피곤했던 거구나. 보통은 진짜로 이만큼 안피곤한 거였구나... 그럼 이제 전 어떻게 해요?"

"수준에 맞는 운동을 하면서 심폐체력을 키우면 좋아집니다. 아직 뛰는 건 안될 것 같고, 일단 걷는 것부터 하루에 2-30분 좀 늘리세요. 애플워치 있으시니까 심박수 140 정도 유지하면서 걸으시고요."


하. 난생 처음 낮은 체력을 구체적인 수치와 측정지표로 확인하고 그 이유까지 설명으로 들으니까 명쾌했다. 게다가 솔루션이 있었다. 나는 내 수준에 맞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되는 거였다.(그런데 그 수준이 놀랄만큼 낮았던 것이다. 홈트 컨텐츠 같은 데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평생 피곤한 얼굴로 피곤하게 살아왔는데, 어릴 때부터 아침에 기분좋게 일어나는 날이 일년에 손꼽을만큼 적어서 남들은 안 그렇다는 걸 믿기가 힘들었는데, 고등학생 때도 커피 없이는 오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그냥 내 의지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무조건 정신력으로 돌파(되지도 않음)할 게 아니라 차근차근 개선할 수 있는 거구나. 어차피 하루 아침에 좋아질 거란 기대는 없었기 때문에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게된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 날은 동적 스트레칭을 하고 소라쌤과 관절 움직임을 체크하며 어디가 잘 움직이지 않는지를 확인했다.



변화: 몸을 일깨우는 운동들

다음 심폐체력 측정 때는 베리 푸어에서 푸어로 한 단계 나아져 있었다. 여전히 좋은 체력은 아니지만 나로써는 5단계 탈출만으로도 꽤 뿌듯했다. 이 글은 어느덧 PT를 10회나 받았다는 걸 알게 되고 회고 겸 쓰기 시작한 건데, 첫 날과 비교해서 운동능력에 있어서 대단한 변화가 생기거나 하진 않은 것 같다. 동네 뒷산(이 북한산이긴 함)을 조금 올랐을 때 최고 심박수가 예전보다 늘어난 정도? 그리고 최근에 어? 했던 순간은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던 일인데, 예전 같았으면 그냥 놓치고 택시를 탔을 걸 어지간하면 그냥 뛰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건 이 정도지만, 내가 느끼는 몸의 변화는 꽤 크다. 내 몸이 이전과는 아예 다른 차원으로 느껴진달까. 앞으로의 가능성 자체가 달라졌달까.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려보았다.

 3n년 만에 졸라맨에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달까. (그림: 나)

예컨대... PT 첫 날 소라쌤이 매트 위에 누워있는 내 다리를 빙글 빙글 돌릴 때 누워서 생각했다. '이게... 고관절이라는 것이구나. 이렇게... 돌아갈 수 있는 거였구나.' 그런 순간은 매 회차 마다 있었다. 밸런스볼 위에서 간신히 스쿼트 자세를 잡으려다보니 '코어'가 그냥 배 가운데 부분이 들어가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종횡으로 몸을 잡아당기는(?) 근육들로 느껴졌다든지. 그런 식으로 어깨, 발목, 윗 등, 허리 아래 부분 등 하나 씩 하나 씩 새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예스 무브먼트에는 내가 이름도 다 모르는 여러 운동 기구 및 도구들이 잔뜩 있다. 나는 그런 기구들이 운동 강도를 높이는 데만 쓰이는 건 줄 알았는데 운동 강도를 낮추는 데도 쓰이는 거였다. 맨몸으로는 내 수준에 맞는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심각하게 굽은 어깨에 윗 등을 전혀 못 쓰는 나를 위해 세팅된 기구에 앉아 아무 무게도 안실린 바를 잡아당기면서 처음으로 등을 쓰는 느낌을 받았다. 움직임이란 게 아예 없는 줄 알았던 곳이 힘들어서 소리를 지를만큼 힘을 쥐어짜니까 아주 약간, 찔끔 움직였다. 그런 게 큰 변화였다. 움직임이 0이었던 곳이 1cm라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그룹 운동 때보다 움직임의 범위가 적은 동작을 했는데도 다음 날이면 운동 부위에 근육통이 확실하게 와서 내가 움직일 때 힘을 안줬던 곳이 어딘지, 앞으로 어디를 써야하는 지 새롭게 알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발바닥부터 발목, 정강이, 뒷 허벅지와 둔근까지를 함께 사용하며 움직이는 수업을 했다. 다리 근육과 고관절을 먼저 스트레칭하고, 무릎 주변 근육도 마사지건으로 풀고, 그리고 평소에 전혀 힘 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발가락들과 발 볼 안 쪽 앞 부분을 깨우는 운동을 하고 나서야 다리를 앞뒤로 벌린 자세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스플릿 스쿼트를 했다. 힘이 부족해 다리가 안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나를 위해 자꾸 도구가 추가되었다. 몸을 더 조금만 낮추도록 아래 블럭을 쌓고, 다리를 바깥 쪽으로 밀어내게 의식하도록 밴드로 약간 힘을 가해주고... 그랬더니 최종적으로 아래 사진처럼 알록달록한 상태가 되었다.

스플릿 스쿼트 중인 나와 소라쌤. 운동 수준을 맞추려고 도구가 하나씩 추가되는 게 넘 재밌어서 호다닥 사진을 남겨두었다.

그러니까 무지 단순해보이는 이 움직임을 내 몸에 맞게 제대로 하려면 꽤나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희한하게도 나한테 맞는 수준으로 할 때 가장 힘(!)들다. 아마 더 정확하게 움직이기 때문이겠지. 혼자 집에서 대충 동작을 따라해보는 걸로는 결코 알 수 없었을 일이다. 이 수업 이후로는 그저 앉은 자세에서 의자에 붙어 있는 부분이었던 뒷 허벅지가 계단을 오르거나 할 때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이 바디, 마이 무브먼트

글을 쓰다가 잊고 있던 운동치 에피소드가 하나 더 떠올랐다. 5단 뜀틀. 초등학생 때 5단 뜀틀을 끝끝내 못 넘고 졸업했다. 뜀틀을 넘은 아이들은 자유시간을 받고, 못 넘으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 돌아가며 뜀틀을 뛰어야 했는데 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뜀틀 과정 자체가 종료될 때까지 넘지 못했다. 만약에 그때 무작정 5단 뜀틀에 계속 도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관찰을 통해 내가 못넘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주고,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움직임 훈련을 더하는 방식으로 개선했다면 나도 언젠가는 뜀틀을 넘을 수 있지 않았을까? 


몸의 부피감, 기능, 움직임에 관여하는 기관(?)들을 하나 하나 깨달아 가는 과정은 기계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동물'로서의 몸을 지어나가는 느낌. 그럼 그 전에는 안 움직였나? 물론 움직였지만, 몸뚱이를 질질 끌고 A에서 B까지 이동하는 느낌이었달까. 즉, 마지못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몸이었다면, 이제는 비로소 몸을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운동을 할 때도 눈이랑 감보다 머리에 의존해야 편이라 수업 중간 중간 자주 질문하고 설명을 들은 것도 꽤 도움이 된 것 같다. 


예스 무브먼트 PT 수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날이 조금 따뜻해지면 달리기를 병행하기로 했는데, 이전에 몇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훈련하면 운동은 하면 할 수록 (비록 느리더라도) 반드시 는다는 것. 숨이 차고 힘들어 죽겠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심장이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심장은 꾸준히 일하게 해줘야 더 잘 일한다는 것. 지쳐서 뻗어버리는 것보다 적절한 움직임이 함께할 때 더 잘 회복할 수 있다는 것. 봄이 끝나갈 때 쯤엔 좀 더 튼튼한 심장과 다리를 갖게 되면 좋겠다. 언젠가 팀 스포츠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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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글을 읽다 예스 무브먼트가 궁금해진 분들을 위해. 꼭 PT가 아니더라도 그룹 운동 수업이나 원데이 클래스를 경험해보시길.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어쩐지 마음이 편안하고 유쾌한 공간이다. https://www.instagram.com/yes.mov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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