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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May 04. 2022

오성일, <이별>

이별에 대하여 


감기가 다녀갔습니다


지독한 여름감기가 다녀가는 동안 

나는 홑이불을 감고 누워서 

간 봄에 잘못한 짓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오성일, <이별>




매년 봄과 여름, 둘 중 한 계절에는 감기를 앓고 한 계절을 회복하는데 보낸다. 나에게 봄과 여름은 생생하고 시작의 계절이 아니라 상실의 계절이다. 봄과 여름엔 꼭 좋아하는 사람을 잃어버린다. '잃어버린다'라고 쓴 이유는 내 잘못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로 가까운 사람과 관계 단절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나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서, 상대의 진심에 대해서 의심하고 원망하고 각자 최선을 다했다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관계를 돌아본다.      


사람은 오고 간다. 사람이 가면 사람이 또 온다. 그때까지 홀로서기를 한다. 상대와 함께 보낸 추억과 별개로 상대가 없는 날들을 나 혼자 새롭게 보낸다. 화가 나서 울기도 하고, 있는 힘껏 원망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흘려보낸다. 후련해질 때까지 그렇게 반복한다. 밥을 잘 챙겨 먹고 따스한 봄볕과 초여름 볕을 쬐며 어떻게든 일상을 보낸다. 사소하지만 행복해질 만한 것들을 자주 만든다. 좋다고 느낄만한 것들을 적어 나중에 읽는다. 상대가 그리워질 때면 상대도 내가 그립겠거니 하며 넘긴다. 가끔 참을 수 없을 때면 기념일 때 편지를 쓰는 것처럼 매번 맞는 기념일 마냥 편지를 쓴다. 그렇게 감정을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해방감과 후련함, 그리고 씁쓸함. 무엇보다 남은 감정을 잘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덧난다. 곪지 않기 위해서는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만난다. 만나서 한바탕 내 얘기를 쏟아내고 공감을 받고,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은 위로가 된다. 그 위로는 다음번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것이다. 

한편 한참 시리즈가 많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인물 관계처럼 화해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다. 주인공 의사와 주변 의사들이 닥친 갈등은 환자와 의사, 환자와 환자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보며 힌트를 얻고 갈등은 해결된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나는 해결할 수 없을지언정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감을 얻는다. 그들의 다정함을 배운다. 그리고 다음번 나의 상대를 위해 남겨둔다. 지금보다 나중에 난 더 나아져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론 희망한다. 더 다정한 내가 되어있기를, 지금보다 깊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상대의 가치는 물론 나의 가치도 알아볼 수 있기를.   

   

봄이 왔다고 대청소를 했다. 겨울 이불과 겨우 내내 사용한 베개 커버를 벗겨 빨래방 세탁기에 넣고 적정량의 세제를 붓는다. 낙차를 이용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며 슬픈 기억들은 다 씻겨 가기를, 건조기엔 갓 나온 뜨근 뜨근한 열기처럼 따스한 기억들이 많아지기를, 내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빈다. 겨울 이불은 장롱 깊숙이 두고, 홑이불을 꺼내 깨끗한 마음으로 새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지독한 봄여름 감기가 낫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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