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입사 후 가장 많은 야근을 달성했고, 집과 회사만을 반복했다.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날에는 피곤한데도 자기가 아까워 드라마보다는 유튜브를 많이 보면서 기어코 늦게 잤다. 힘겹게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반복적인 일상을 보냈다. 나의 출퇴근 길엔 한강을 지나가는데, 12월까지만 해도 짧게 지나가는 한강을 보면서 기운을 차렸다. 하지만 2월이 끝나갈 때까지 지하철에선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있었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영상에도 지하철의 비중이 큰데, 이번 영상은 더 많이 차지하는 것 같다. 2월 중 가장 미세먼지가 없던 날과 9시간 동안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핸드폰을 보는 게 피로해 우연히 한강을 달리는 지하철을 보고 있을 때 해가 아파트 사이로 저무는 날을 카메라로 담았다. (사실 한강은 엄청 많이 찍는데, 정신을 차리고 촬영 세팅을 다 할 때쯤엔 지하로 들어가는 한강의 끝이 대부분이거나 막상 촬영본을 보면 생각 외로 잘 담기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번 달은 유난히 빛이 반사되는 풍경을 많이 보았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음료컵에 빛이 반사돼 음료와 비슷한 색의 빛과 무지개, 오랜만에 받은 손 편지에 창가에 반사된 무지개, 가고 싶었던 카페에 있던 무지개. 사람이 지나가면서 잠시 없다가도 다시 생기는 무지개가 이제 어두워지면 같이 없어지는 점이 꼭 이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잘 느끼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조금만 위치가 바뀌면 무지재가 없고 그림자가 지거나 그때 내가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이 빛이 영상을 만들면서 조금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지개도 우연이 만들어낸 그때의 필연이 아닐까? 내가 달마다 영상과 후기를 남기는 것도 그 순간에 대한 모습과 그에 대한 일화와 감정들을 기록하는 것도 우연은 잠깐이고 잠깐을 잘 즐기려면 어떤 형태로든 남겨두고 싶어서다. 마치 이번 영상 마지막 밤하늘의 한강을 찍다가 지하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엔딩 영상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내가 보는 일상 속 풍경이 하나씩 쌓여서 더욱더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싶다. 또한 비슷한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경험이 있다면 그것도 기록한다. 처음으로 삼각지역에 내려 역 주변 스탠딩 술집에 가보았다. 삼각지역은 늘 나에게 지나쳐가거나 환승하는 역이었는데, 지하철에 내릴 때가 새삼스러웠다. 이제는 거쳐가는 곳이 아닌 추억이 생긴 셈이다. 스탠딩 술집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일본 음악이 흘러나오고 모두가 서서 여러 술을 마시고 안주를 시킨다. 소리가 큰 음악만큼 사람들의 목소리도 크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테이블 번호로 알려준다. 무엇보다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큰 음악 소리에서 관심 있는 상대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장소였고, 우리에게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한 날이기도 하다. 용기를 내어 밥을 같이 먹자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 겨울의 끝무렵에 왔으니 다음번엔 한여름이 되기 전에 다시 오고 싶다. 그런 날씨가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땐 또 어떤 순간으로,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이번 영상은 2월인데도 눈이 녹지 않아 얼음이 되어버린 눈으로 아직 겨울임을 알리고, 시그니처라며 고집하던 초반의 오프닝과 엔딩은 버리고 각 영상에 맞게 영상을 구상하고 폰트도 바꾸었다.앞으로도 한 달 동안 모은 영상 분위기에 맞춰 폰트를 적용할 것이다. 처음으로 자막을 겹쳐 거의 동시에 크레딧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편집할 땐 비교적 마음에 드는 위치였는데, 영상을 만들고 다시 보니 다른 위치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영상 길이는 지금처럼 혹은 조금 호흡이 긴 방식으로, 지난번보다는 디테일하게 영상을 편집해 다양하고 덜 지루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상을 만들고 싶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효과도 써보고 싶다. 일상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예술적 일지 매번 고민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