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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주 Nov 20. 2021

그놈의 술!

  호탕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모임이 많은 인사이더이다. 남편은 여러 부류의 사적 모임을 가지고 있었고 회사에서는 사랑받는 직원이었다. 자연스럽게 모임과 회식으로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게 되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았다. 술독에 들어갈 것처럼 마셔서 머리 꼭대기까지 취한 다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후 앉은자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술잔을 내려놓으면 그대로 잠들었다.


  술 마시고 잠든 남편을 보면 이렇게 까지 마셔야 하나 싶은 마음에 남편이 미련해 보였다. 

         

  신혼 때는 함께 모임을 즐기거나 우리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서 먹고 마시며 놀았다. 그러나 내가 임신을 한 후 더 이상 모임에 나갈 수 없었고, 남편의 모임은 대부분 밖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린티라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모임 약속으로 술을 마시러 가는 남편에게 음료를 부탁하며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알았다고 대답한 남편은 자정을 넘긴 이후 얼큰하게 취해서 안방으로 들어와 애매하게 식은 그린티라떼를 건네주었다.


   그린티라떼를 들고 올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입덧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전화하기 직전에 들어온 남편이 반가운 것도 잠시, 식은 그린티라떼는 느끼했고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입덧만 아니면 직접 사 먹으면 되는데, 입덧하는 나를 두고 나간 것도 섭섭한데, 좀 더 일찍 들어오지 않은 남편에게 너무 서운했다.


  사실 나는 입덧 중에 먹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정말 어쩌다 한 번 생각나서 그것만 꼭 먹으면 되었다. 그 어쩌다 한 번을 제대로 완성해 주지 않은 남편이 미웠다.     


  서운, 섭섭, 미움의 마음을 쌓아놓고 술 마시는 남편에 대해 생각해보니 내가 아파도 술 약속은 취소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마음이 씁쓸했다.              

  

  나는 술을 마시는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술을 마시면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나는 남편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막연히 기다렸다. 


  자리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건지, 핸드폰을 꺼내면 예의가 없어 보여서 그런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짙은 밤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애가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술에 아무리 취해도 집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걱정이 덜할 텐데, 남편은 과하게 술을 마시면 마신 자리 또는 집 앞 벤치에서 잠들어서 코 앞에 집을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뉴스 사회면에 나오는 흉흉한 소식 중 하나가 내 남편이 될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잠도 못 자며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이 무사히 들어오기만을 기도했다. 갓 결혼한 새댁이 과부가 되는 건 싫었으니까!! 


  이런 내 속을 모르고 새벽 즘 술좀비가 된 남편이 들어왔다. 좋은 침대를 놔두고 딱딱한 거실 바닥에 누워서 코를 골며 잠들었다. 육두문자를 날리며 깨우고 싶었지만, 소용없는 짓이라는 건 일찍 깨우쳤다. 젠장!!!!! 


  참았다.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거니까 좋은 사람들 만나서 세상 이야기를 하는 재미에 빠져있는 남편을 뭐라고 할 기운은 없었다.


  하지만 거실에 잠든 남편을 보고 있자니 화가 솟아오르는데 남편의 팔이 눈에 띄었다. 내 손에 힘이 들어가며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힘껏 남편의 팔을 내려쳤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전 날 넘어진 적도 없고 힘을 쓴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팔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한 짓을 모른 척하며 눈을 흘겼다. 그리고 술을 마셔서 기억 못 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 일은 '술'때문에 일어나는 앞으로의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가 부모가 된 이후에도 남편은 술을 조절하지 못했고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나는 고통과 괴로움에 싸여 몸부림쳤다.


  우리 부부 사이에 있는 술은 결코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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