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탈리 Dec 23. 2022

사실 비행기가 뜰 때 도망가고 싶었어

이슬람 국가에서 일하기

호텔도 안 가 본 내가 외국계 체인 호텔에서 6개월 인턴을 했다.


짐을 바리바리 싸서 서울로 가는 길은 

에버랜드 패스트 트랙을 탄 것 마냥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땐 그랬다.)


3성급 비즈니스호텔에 짐을 푼 뒤 외국계 특급호텔로 면접을 보러 간 그날.

바닥부터 천장까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걸 보고(직원용 엘리베이터와 지하 벙커 같은 직원 이동 통로는 빼고) 인턴따리였지만 마치 신분상승한 주말드라마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고 평생(미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서비스가 팔 할인 이곳에서는 외모도 제법 까다롭게 관리해야 했고 고객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캐치한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호텔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호텔 특유의 경직된 문화가 어려웠다.


그때 해외 취업에 눈을 돌렸다.

검색이라고는 네이버밖에 몰랐는데 구글링은 한국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태평양의 일자리까지 소개해줬다.


스물다섯 살, 당시에는 칼졸업 후 취업이 트렌드였기 때문에 내 나이면 조급함을 가지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약 3개월을 취업에 매진했고, 

요즘은 zoom이 대세지만 그때는 skype로 남태평양 근처 몇몇 호텔과 나름 혁신적인 비대면 면접을 진행했다.


길고 긴 서류가 네다섯 번 왔다 갔다 하며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났고, 진짜 떠날 때가 왔다.


가족들 앞에서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도착하면 바로 비행기 티켓을 다시 끊어서 한국으로 돌아갈까?' 말도 안 되는 계획까지 세웠다.


환승차 싱가포르에서 잠시 내린 뒤 몰디브행 작은 비행기로 갈아탈 때 내 기분은 절정에 다다랐다.

그 와중에 한 승무원이 '너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따뜻한 물이라도 마실래?' 라며 혼자인 날 달래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괜찮다고 안대를 쓰고 눈을 감는데 눈물이 났다. 수 없이 후회하는 동안 비행기는 착륙을 준비했다.


모두가 연인이고 가족인 주위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아무도 이슬람 국가인 줄 모르는 이슬람 국가를 처음 만났다.












이전 02화 기자 그리고 리포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