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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록 Sep 24. 2024

  감정을 흘려보내는 힘

24살, 나는 다제내성결핵에 걸렸고 병원에서는 나에게 신약을 추천했다. 그때는 그 신약이 나를 치료해줄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신약이 가져온 것은 치유가 아니라 더 깊은 고통이었다. 신약 부작용으로 찾아온 말초신경증은 발끝부터 시작된 저릿함으로 다가왔고, 결국엔 내 일상을 통째로 삼켰다.


신경은 점점 마비되었고, 발에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날마다 이어졌다. 걸을 때마다 수억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나를 무너뜨렸다. 평범하게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며, 나는 고통 속에서 내 자신의 무력함을 마주해야 했다. 진통제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고, 의사들은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어렵다고 했다. 그때 나는 24살이었다.


우리는 왜 슬픔을 느낄까?


고통은 육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내 마음은 점점 깊이 가라앉았고, 우울이 서서히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세상은 마치 나를 외면한 듯했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과 나란히 걸을 수 없었다.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점점 더 멀어졌고, 그럴수록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이 감정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단순히 고통이 아니다. 그저 세상을 경험하고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일종의 신호로 본다.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상기시키며, 마음속에서 처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음을 알려주려는 메시지인 것이다.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비로소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왜 강하게 느껴질까?


슬픈 감정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무거운 짐처럼 마음을 짓누르고, 평소에 하던 일조차 버겁게 만든다. 슬픔,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들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쳐, 삶의 균형을 잃게 한다.


슬픔은 무기력함을 불러오고, 작은 일조차 커다란 부담처럼 느껴지게 한다. 분노는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두려움은 새로운 도전을 막고, 우리를 제자리에 멈추게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더 힘든 이유는 그것들이 단지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몸에도 영향을 준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하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결국 피로가 쌓여 면역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이 모두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슬픔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찾아오고, 그 감정은 그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분노는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위협받았다는 신호이며,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일 수 있다.


결국, 부정적인 감정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문제는 그것을 억누르거나 피하려 할 때 생긴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감정을 경고 신호로 활용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가 위험을 인지하고 그에 반응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때로는 이 감정들이 지나치게 강하게 다가와 일상을 방해하고, 우리를 압도할 때가 있다.


특히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은 본래의 역할을 넘어서, 삶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감정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과의 거리 두기


우리가 흔히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슬픔이 찾아오면 그 감정에 압도당해 그것이 나의 본질인 것처럼 느껴진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고 슬픔, 분노, 불안 같은 감정은 자연스럽게 찾아오지만, 우리가 그것에 휘둘릴지 말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동양 철학에서는 감정을 물에 비유한다. 물이 흐르듯이 감정도 흐른다.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하면 물을 막는 것처럼 오히려 더 거세진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감정을 관찰하고, 지나가게 두는 것, 그게 감정을 다루는 첫 번째 열쇠다.


슬픔과 분노를 흘려보내기


슬픔과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억누르거나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온다. 나는 고통을 마주한 순간들 속에서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 방법은 관찰'이다.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부정하거나 억제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느끼고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발끝에서 시작된 고통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그것을 인지했다. "지금 내 발이 저리고 있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슬프다", "나는 화가 난다". 그렇게 감정의 이름을 붙이자, 감정이 나를 덜 짓누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방법은 흘려보내기'다. 감정은 하나의 흐름이다.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다. 나는 감정이 떠오를 때, 그것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도록 두었다. 마치 한강의 물이 흐르듯이, 나의 감정도 흘러가도록 했다. 그것을 붙잡으려 하거나, 그 안에 머물려고 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그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정을 흘려보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1) 명상

명상은 감정을 흘려보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저 관찰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슬픔이 느껴질 때 그 슬픔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는, 그 슬픔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내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해보라.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흐름이다. 그 흐름을 인지하고,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2) 글쓰기

글쓰기는 내면의 감정을 풀어내는 좋은 방법이다. 감정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 글로 풀어내면 그 복잡함이 조금씩 정리된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그 감정을 그대로 적어보는 것이다. 감정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슬픔이나 분노를 다루는 데 있어서 글쓰기는 감정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3) 운동

운동은 몸을 통해 감정을 흘려보내는 방법이다. 분노나 스트레스 같은 감정은 특히 신체적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린다. 감정이 과하게 몰려올 때 산책을 하거나, 조용히 스트레칭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슬픔을 마주할 용기


삶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한 순간들이 있었다. 상실,좌절,우울. 그 슬픔들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써 내려갔다. 슬픔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나는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했다.


슬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인식하고 흘려보내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을 다루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저 흘려보내는 거란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삶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3년이 흘렀다.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감정을 인지하고 흘려보내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진통제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진실이었다.


감정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것을 억제하거나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그 흐름을 인정하고 흘러가게 두는 것이 더 나은 길일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삶의 일부이며,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더 평온해질 수 있다.


삶은 불확실하고, 감정 또한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때, 그것을 억누르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흘려보내자. 그것이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지 않을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미래의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의 이 모든 힘듦과 슬픔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을까? 이 고통을 지나온 너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조금은 더 너그러워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때처럼 고통을 담담히 견디고만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은 어디에나 있다. 그 감정은 우리 삶의 일부이며,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삶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감정은 결국 지나간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조금씩 더 강해진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났으니 살아있을 뿐이고 삶은 행복,슬픔,설레임,좌절 이 모든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배우기 위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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