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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타미 Mar 16. 2023

퇴사할 결심

기자생활에 마침표를 찍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었다. 한동안 ‘그 일’로 내 감정을 모두 쏟아내니 누군가를 만나 그간의 일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같은 밥벌이하는 동료 기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번듯한 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한 나로서는 망상에 불과했었다. 결국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친구 뿐이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내 회사 일을 풀어내긴 미안하지만, 그 당시 내 정신은 그럴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소주 한 병이 비워지니 내 이야기가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모두 그 일련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너무 오랜 시간 붙잡은 것 아닌가 싶은 미안함이 들었지만, 그 친구는 싫은 표정 없이 나의 말 한마디마다 공감해주었다. 사실 같은 기자가 아닌 이상 공감하기 어려운 말일 텐데 그런데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30초 정도의 짧은 적막이 흘렀다. 사실 손님들의 대화 소리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백색소음에 불과했다. 그 적막을 깨고 친구는 “왜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았느냐?”는 짧은 질문을 남겼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의 질문은 여느 때와 달랐다. 그 말에 ‘내가 이 직장을 이젠 놓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빠지면서 약 1년 반 동안의 기자 생활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달콤한 피드백이 사실은 예의상 말하는 것이 아닌지, 내가 우월감에 빠진 것인지 나에 대해 성찰을 하게 됐다. 덕분인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제는 탈출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됐다.


사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남겼었다. 회사 뒷담 끝에 항상 “왜 그만두지 않았느냐?” “지금이라도 도망쳐라.”라는 조언만 뒤따라왔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낄 때였다. 얼마 안 되는 조회 수지만 구독자의 “잘 보고 있습니다”라는 달콤한 피드백에 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기자라고 말할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직업을 가진 이후 내 자아가 너무 버려진 게 아닌가 싶었다. 취업 후 만난 사람들이 하나 같이 왜 이렇게 많이 변했나?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같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록을 보니 혼란에 빠진 내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단순한 친해지기가 아닌 정말 진심에서 나온 걱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날 그 질문의 답은 “그래야겠다”였다. 5글자의 짧은 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고민과 결심으로 응축되어 있었다. 이제는 언론인으로 살지 않을 결심, 나 자신을 다시 찾을 결심과 그만두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단순히 술김에 하는 말이 아닌 진심에서 쏟아낸 말이었다.


약속을 마친 그날 나는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보다, 1년 반 동안 내가 왜 이런 ‘개고생’을 했는지, 그 긴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가득할 뿐이다. 당장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함도 컸었다. 한편으로는 이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짧은 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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