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by 소혜


안녕, 보고 싶었어. 잘 있지? 나는 무더운 여름을 힘겹게 견디는 중이야. 생각해 보니 너도 더위를 많이 타고 여름을 싫어했던 것 같네. 다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너는 그 무엇도 지겨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살갗을 스치는 햇빛에도 아랑곳 않고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지. 무엇이 널 그리도 즐겁게 했을까? 아주 신나는 여름을 보냈었니? 말갛고 작았던 너를 생각하면 문득 아련하고 행복해져. 너도 나를 보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네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아주 만약에 우리가 만난다면, 비눗방울을 처음 불던 그때처럼 예쁘게 웃어주길 바라.


아, 네가 사랑하던 하얀 강아지는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어. 이제 너와 함께하던 그때처럼 힘껏 달리지도, 까맣고 맑은 눈으로 식구들을 반겨주지도 않아. 아마 네가 보면 엉엉 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샌가 너처럼 크게 울지는 않게 되었어. 어른이 된다는 건 우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봐. 그래도 희끄무레해진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저려와. 함께 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진 않지만, 서툴렀던 네가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줄게. 네가 이 아이와 함께 자란 시간들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자 사랑의 밑거름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나는 너를 좋아해. 실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말을 건네고 싶어서야.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달리기도 늘 꼴찌였지만, 누군가를 이기려 하기보다 앞서 가는 친구의 풀린 운동화 끈을 걱정하던 네가 정말 좋아. 너는 뒤쳐졌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네 자신을 좋아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이제라도 이 말을 전해서 다행이다.


네가 궁금했던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지만 사실 나도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아.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커다란 운동장 같은 세상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며 달려야 할지도 몰라. 한 가지 확실한 건,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는 건 네가 꿈꾸던 동화 속 왕자님이 아니라는 거야. 먼지투성이가 된 하얀 체육복을 툭툭 털고 일어나던 너는 그걸 몰랐겠지? 나는 울먹거리면서도 혼자 씩씩하게 일어나던 네 덕분에 이렇게 자랄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가끔 네가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글을 적을게. 그리고 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 느리더라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거야. 나는 네가 여전히 그립고 애틋해.

그럼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 또 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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