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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좋아하세요?

Womanpower

by 영영

누군가 내게 재즈를 좋아한다고 묻는다면 늘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재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재즈바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유리의 제안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브리즈번 시내에 유명한 재즈바가 몇 군데 있다고 들었다. 그중 우리가 선택한 곳은 캥거루 포인트 근처에 위치한 'Brisbane Jazz Club'였다. 임박해 티켓을 구매한 탓에 야외 테이블만이 유일한 선택지였지만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연 시간에 임박하자 좌석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82번 테이블엔 우리와 빨간 하이힐에 빨간 립스틱이 눈에 띄는 여성분이 함께 자리했다. 밝고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본인을 브리즈번에 10년째 살고 있는 대만인이라고 소개하면서, 이곳에서 우리 같이 젊은 사람들을 본 건 처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잔뜩 여유로운 이곳의 분위기가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Rothbury Estate - Shiraz Cabernet 와인을 보틀 째 주문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왠지 재즈엔 레드 와인을 먹어야 할 것만 같았는데, 마침 레드 와인 중 저 와인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온 탓에 안주로는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오늘의 가수는 Melissa Western. 공연시간은 오후 6시 반부터 10시. 셋 리스트는 Ella Fitzgerald의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다. 가수는 물론 피아노, 색소폰, 콘트라 베이스, 드럼. 모든 세션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밴드였다. 진심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무대 밖 삶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재즈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마릴린 먼로와 영상과 그녀의 음악이 함께 어우러졌던 순간이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는 엘라의 열성팬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는 그럴듯한 개소리를 표방하는 짐 크로우 법에 의해 당대 흑인들은 그들의 재능과는 관계없이 차별받을 수밖에 없었다.


엘라 역시 무고한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릴린 먼로가 그녀가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LA의 유명 클럽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돕는다던가, 함께 정문으로 출입함으로써 고정관념을 깬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 멋진 여성들의 우정은 늘 나를 고무시킨다.




공연 한가운데, 강 건너편에선 뜬금없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꽤나 자주 있는 일인 듯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폭죽소리와 재즈음악이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폭죽의 파열음이 불규칙한 타악기 소리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론 브리즈번 강의 수질이 좋지 않은 게 폭죽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비관적인 마인드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이곳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낭만적인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리와 나는 3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재즈가 선사하는 충만함은 바로 그런 거였다. 문득 우리는 참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우리도 마릴린 먼로와 엘라 피츠젤러드 같은 우정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 한 번의 경험 만으로도 충분히 재즈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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