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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Mar 23. 2024

부자에 대해 오해했어

/돈에 따라오는 것

이것은 나의 삶에서

돈에 관한 것만 떼어 쓰는 기록이고,


그 첫 번째다.



돈은 갖고만 있어도 값지다


돈의 가치는 쓸 때만 기능하는 줄 알았다. 1000원을 내면 1000원만큼 가치 있는 것을 돌려받는다. 그러니까 1000원을 쓰지 않으면, 1000원은 1000원 값을 할 일이 없다.


수십, 수백억 원의 자산이 있다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한 이유다. 살아생전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어째서 그렇게 쌓아둘까. 제기능 못할 돈일 텐데.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주문해 놓고 죄다 남긴 적 있다. 부자들도 그런 셈인까. 탐욕에 일단 모았는데, 다 쓰진 못하게 됐던 걸까. 그것 나름 낭비 아닌가.


그것은 오해. 돈은 남으면 버려야 하는 음식이 아니다. 쌓아두는 게 가능하다. 먹다 남은 음식처럼 초파리를 꼬아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쌓인 돈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얻어다준다.


그때 얻은 건, 멋있다는 칭찬이었는데.


한우 식당에 간 날이다. 점심시간이었고 혼자였다. 꽤 어색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럴 거다. 평일 점심에 홀로 비싼 한우를 먹으러 간다는 것은.


그곳에서 가장 싼 메뉴인 등심은 1인분에 4만9000원. 요즘 내 일주일 치 생활비와 맞먹는다. 그런 등심을 2인분 주문했다. 여기에 제로콜라까지, 총계 10만2000원. 이주일 치 생활비를 한 끼 점심에 녹인 셈이다.


겁도 없이 이렇게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던 건, 어쩌다어쩌다 받은 선물이 있어서. 그러니까 내돈내산이 아니라는 소린데.


"멋있으세요."

고기를 구워주던 직원분이 돌연 말을 건넸다.


뜻밖이었다. 말뜻을 단번에 이해 못 한 이유다. 뭐가 멋있다는 거지? 30대에 접어들며 젓가락 잡는 폼을 바꿨다. 젓가락 아래쪽을 바투 잡는 게, 젓가락질에 서툰 모습 같아서. 젓가락 윗부분을 의젓하고 안전하게 잡는 버릇을 들였다. 이런 나의 젓가락 폼이 멋있다는 걸까.


잠시 당황한 그 미묘한 기색을 직원분이 눈치챘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나에게 주는 선물? 혼자 이렇게 고기도 드시고. 저는 이렇게 못하거든요" 라는데.


아, 돈.


돈 쓰는 게 멋있다는 말이구나.


돈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걸 재력이라 부르기도 하니까.

돈의 힘.

힘이 세다는 건 인류 역사상 늘, 멋있음의 대상이었으니까.


멋있다니.


점심에 홀로 한우를 먹는 어색한 기분은, 괜히 대우받는 기분으로 뒤바뀌었다. 젓가락을 더 기품 있게 잡으려는 듯, 손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여튼 말했듯 내돈내산이 아니었으므로, 멋있다는 칭찬 역시 내 것은 아니다. 그런 칭찬을 받지도 무르지도 못한 까닭이다. 그냥 대꾸 않았다. 불판 위에서 잘 익어가는 등심 한 점을 젓가락을 집었다. 입에 넣고 조용히 씹었다.


내 것 아닌 칭찬을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묘하다. 말의 뜻을 다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 중 몇 부분은 반박하고 싶어질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확실한 건, 점심에 십만원 돈으로 소고기 사 먹는 일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멋있다, 부럽다, 재수 없다 등등 누군가의 반응을 이끄는 일이라는 뜻이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는 사람이라든가, 길 걸어가는 사람이라든가, 30대에 젓가락 잡는 폼을 바꾼 사람들처럼 누군가 쳐다보지 않을 일과 다르단 뜻인데.


그날에 직원분은 주문했던 제로콜라를, 서비스로 준다고 했다. 그 호의에 대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하는 호들갑도 떨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더 주고, 더 받는 일이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뭐랄까. 당연하다는 듯.


왠지.

부자들의 생활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것만 같았다.


거저 호의를 받는 일.


대우받는 기분을 느끼는 일.


서비스가 필요할 사람은 되려, 만원도 아까워 요즘 저녁 굶는 일이 잦아지던 진짜의 나일 텐데. 횡재로 10만원짜리 고기 먹던 가짜의 내가 어째서 서비스를 받는 거지.


그날 기억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하게 있다. 사실 별일 아닌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지속되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내가 느꼈던 게 무엇인지 조금 더 고민해 보게 되는 일이었는데.


부자가 얻는 호의, 그러니까 지금 부자가 아닌 '진짜 나'는 얻을 수 없는 것들.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이 부럽고 불편해서, 알 수 없는 열등감 혹은 세상 드럽다는 생각을 갖게 됐던 것인지 모르겠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얻는 것.


이를테면 그것은

부자의 기분.


돈에 따라 붙는 이자 같은 걸까.


돈, 가지고만 있어도 얻을 수 있고

쓰지 않아도 얻게 되는 것.


부자들은 그 가치와 기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 셈이다. 못해도 한 번씩 체험들은 해봤을 일이다. 그러니까 돈을 모아두면, 돈은 액면가와 또 다른 기능을 한다는 것.


수십, 수백 억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풀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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