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Apr 18. 2024

그래서 왜 모아야 할까

/사고 싶은 것 딱히 없는데?

이것은 나의 삶에서

돈에 관한 것만 떼어 쓰는 기록이고,


그 다섯 번째다.



관두고 싶어서


역시 답부터 말할 거다.

왜 모아야 하냐는 질문엔,


그만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하는 이유가 그만 하려고, 라니.

꽤 명료한데, 참 모순이다.


뻔뻔하다, 싶다.


근데 돈은 원래 그렇다.

헷갈린다.


이것은 목표인가, 수단인가.

왜 모으고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이게 맞나, 싶다.


서두를 줄여야겠단 생각을 최근 했다. 그러니 삼천포 가는 길은 여기까지만 빠진다. 본론으로 돌아가본다. 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니 믿어달라.


그러니까, 그만한다는 것의 의의 말이다.

어쩌면 끝이 있다는 뜻이니까.


필요한 것만 설명을 위해, 갈래를 나눠본다. 사고 싶은 게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고 싶은 게 있어 돈을 모으는 사람은, 돈 모으는 이유가 분명하다. 나의 설명이 필요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다.

사고 싶은 게 딱히 있지도 않은데 왜 모아야할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며.


물론 이렇다면 아주 좋겠다. 삐까번쩍한 외제차를 타고, 한강뷰 아파트에 거주하고, 매 끼니를 호텔식으로 먹고.


다만, 그게 목표는 아니다. 서민 출신 내게는 사치다 싶다.

1인분에 1만원 짜리 삼겹살을 먹어도 너무너무 맛있다.


솔직히 어쩔 땐 소고기보다 맛있다.


굳이 위에 적은 저것들을 소망하지 않는다.

근데 나 왜 돈 모으지?


이 고생하면서.


그래, 그래.

그만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고 싶지 않은 걸, 안 하기 위해서다.


외제차를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지옥철은 벗어나고 싶어. 한강뷰는 아니어도 좋아. 그치만 봄밤 창문을 열면 들리는 오토바이 소음엔 그만 시달리고 싶어. 매 끼니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것, 이따금 외식으로 건너뛰고 싶어.


아니아니,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지만

다만 그냥 귀찮은 것들은 그만 신경 쓰고 싶다.


나의 경우다. 치러야 할 카드 값이 꽤 쌓인 때다. 지인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맥주 한잔 곁들이며 회포를 푸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눠 내야 할 술값을 계산 중이었기 때문.


꽤 구질구질하고 짠내나는 고백이다.

이런 일은 그만하고 싶다.


멋들어지게 술값을 내가 다 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유재석도 비슷한 고백을 했다. 부자라는 사실이 분명한데 계속 돈을 모으는 이유. 구질구질한 게 싫다는 진솔함.


후배들 밥값도 내주고, 지인들 경조사비도 아낌없이 마음 베풀고 싶은데, 망설이게 되는 그런 고민하기 싫다고.


이번 글에서는 4편의 ‘얼마나 모아야할까’의 내용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오해다.


얼마나 모아야하냐는 질문에는, 얼마긴 얼마야. 계속 모아야지, 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모아야 할까라는 이번 질문에는 그만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중인데.


‘그만’을 목표하라는 건. 돈 모으는 걸 그만하라는 게 아니다.

암. 돈은 계속 모아야지. 끝없이.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그만의 때는, 돈 없어 겪는 귀찮음을 그만 둘 수 있을 때를 뜻한다.


(단어를 고민하다 ‘귀찮음’을 선택했다. 불행이라 적을까 괴로움이라 적을까 하다가.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표현할 것 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귀찮다는 건, 모종의 여러 가지에 신경이 쓰인다는 뜻으로 이해하자.)


돈이 쌓이다보면 그 귀찮음은 하나씩 해결될 것임에 분명하다.


도로변으로 창문이 나있는 단칸 오피스텔에서, 언젠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겠지. 그러면 오토바이 소음에서 벗어나겠지.


그 아파트가 회사와 가까울 수도 있는 노릇이지. 지옥철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다.


외제차나 한강뷰가 아니라도

내가 돈을 모을 이유들로 충분하다.


그러면 팔걸이가 꽤 푹신한 가죽으로 된 1인용 소파를 구매해야지. 척추가 곧고 아늑하게 펴지도록 앉아, 눈을 감고 lofi 음악을 틀어놓은 채 잠 들어야지.


행복이 뭐 있나. 괴롭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러다 고마운 지인의 생일이라는 소식이 들리면, 감사한 마음 담아 기프티콘도 하나 선물해야지.


-

그럼에도 이 ‘그만해도 되는 상태’에 대해선 아무래도 막연하겠다.

그게 언젠데.


책임감 있게 나의 생각을 조금 더 설명해본다.


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을 모으는 건 그 가속도를 높여가는 게 핵심이라 생각한다. 100만원에서 100만원이 불면 200만원이 되고, 이자는 2배가 된다. 어제보다 오늘 이자 붙는 속도가 더 올라간다. 가속한다.


하지만 지출을 하면, 100만원이 200만원이 되는 시기는 늦어진다. 가속하지 못한다.


지출의 정도가 그 가속도를 ‘감속’ 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그 지출에 신경을 덜 써도 되겠다. 신경을 덜 쓰면 덜 귀찮다. 귀찮음을 관둘 수 있다.


그만할 수 있다는 건 그 정도 수준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오늘 밤 야식을 주문해 먹는다고, 나의 예적금 납입액이 줄어들지 않으면 된다. 어려운 게 아니다.


카드 값이 불어나, 반가운 이들과 화목한 식사 자리에서 머릿속으로 밥값을 계산하는 일 따위는 숫자에 약한 내게 꽤 귀찮은 일이다.


나는 그것을 그만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이전 04화 그래서 얼마를 모아야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