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신 읽어드릴 책은
유스토 L. 곤잘레스, 《간추린 교회사》입니다.
교회 역사를 잘 요약해 준 책이에요. 저자는 이 책은 자신의 더 두꺼운 책들을 위한 지도라고 이야기하는데, 자체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책이 좋은 책이에요.
저자는 기독교역사를 9시대로 구분합니다.
1. 초대교회(~313=밀라노칙령)
2. 기독교제국(~476=서로마 몰락)
3. 중세 초기(~1054=동서교회분열)
4. 중세 절정기(~1303=교황권 몰락초기)
5. 중세 후기(~1453=콘스탄티노플 함락)
6. 정복과 종교개혁(~1600)
7. 17~18세기
8. 19세기
9. 20세기
1. 초대교회(~313=밀라노칙령)
사도들은 예수님 사후에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세우고 로마제국 곳곳 지중해 주요 도시에 선교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사회가 생활윤리가 희박하고 빈민이 넘쳐났었는데, 기독교인들이 도덕과 구제를 제공하자 개종자가 꾸준히 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사상은 로마제국과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기독교는 이상하고 해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기독교를 변호한 분들을 "변증론자"라고 부릅니다. 변증은 변론한다는 뜻입니다.
한편 기독교를 자칭하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초대교회는 교리를 정비하고, 권위 있는 복음서와 서신 27권을 정했습니다.
2. 기독교제국(313~476=서로마 몰락)
이전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에게 탄압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개종자가 늘어나더니 로마황제에게 공인받게 됩니다. 황제마저 개종하고, 나중에는 아예 제국의 국교가 됩니다.
그러자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제국 정부에 대해 비판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사막이나 외딴곳으로 가서 이탈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중류층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때 위대한 신학 논문들이 집필됩니다. 가장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의 시대입니다.
3. 중세 초기(476~1054=동서교회분열)
서로마가 멸망한 것은 게르만족으로 대표되는 "야만인들"의 침략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에 수많은 야만인 국가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들을 개종시켰죠. 그래서 유럽엔 기독교 외의 종교가 없는 겁니다.
이 시기에 기독교 예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승리보다는 죽음, 죄악, 회개에 더 관심이 많았고, 성만찬은 이전엔 축제였지만 이때부터 장례의식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시대가 고통과 죽음과 무질서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고대 문화가 소실되었는데 유일하게 조금이라도 보존한 곳이 교회였습니다. 중세동안 기독교가 문명의 발전을 억압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조직은 그나마 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책과 기술을 전수하는 곳이었습니다.
세속권력이 오밀조밀 갈라졌기 때문에 초국가적 단일 조직을 유지했던 서로마 교회(가톨릭)는 상대적으로 더 크고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로마는 이후에도 천년 간 유지됩니다. 동로마 정부는 당연히 동로마 교회(정교회)보다 힘이 더 셌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톨릭과 정교회는 입장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언어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달랐고, 정치적 지형도 달랐으니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완전히 갈라서게 됩니다(20세기 후반에야 서로 화해합니다).
이 시기에 근동에서 이슬람이 새로운 위협세력으로 등장했고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등 광대한 영토와 중요한 도시들을 정복했습니다.
정교회는 러시아를 개종시킵니다.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에는 정교회 신자가 많습니다.
4. 중세 절정기(1054~1303=교황권 몰락초기)
중세는 강력한 통일 제국 없이 오밀조밀 나라가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개개의 국력이 약했습니다. 스페인 지역을 이슬람에게 뺏길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당시 유럽인들이 영토확장을 하거나 규모 있는 원거리 교역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죠.
하지만 점차 생산력과 군사력을 기르더니 이제 기지개를 뻗게 되는데, 그것이 서쪽으로는 스페인의 "재정복"(레콘키스타), 동쪽으로는 "십자군전쟁"(크루세이드)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에 가면 이슬람이 지은 건물에 유럽인들이 인테리어한 독특한 교회건축과 고성을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유명한 게 알함브라 궁전이죠.
십자군전쟁이 사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감이 잘 안 잡힙니다. 제국 간의 충돌도 아니고 총력전도 아니고 십자군 전쟁으로 영토가 늘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십자군 전쟁의 의미는 "유럽이 이제 만만돌이가 아니다"라는 것과 무역과 상업이 번창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도시가 발달하고, 자급자족하느라 소실되었던 화폐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부르주아들이 나타납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유서 깊은 대학들이 이 시기에 생겨납니다. 이때의 신학을 "스콜라철학"이라고 부르고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때에 절정에 달합니다.
부와 권위가 교회에 쌓이면서 교회건축도 변화합니다. 거대한 대성당, 하늘 높이 치솟는 첨탑의 고딕양식이죠. 높아질수록 하나님께 가까워진다고 생각한 것일지, 기독교인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일지는 판단하기 나름입니다.
5. 중세 후기(1303~1453=콘스탄티노플 함락)
막대한 재산을 쌓은 부르주아들이 여러 나라의 국왕들과 협력하면서 왕권이 강력해지고 영주들이 실권을 점차 잃게 되어 근대국가가 시작됩니다. 국가주의는 교회일치에는 장애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시기에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을 벌이게 되죠. 이때는 단지 기사들만의 전쟁이 아니었고, 두 나라의 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보다는 "프랑스인", "영국인"이라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왕권이 강해질수록 교황권을 빠르게 몰락했습니다. 프랑스왕은 교황청을 아비뇽이라는 프랑스의 한 지역으로 옮긴 적도 있었는데 이를 바빌론 포로에 비유해서 아비뇽 유수라고 부릅니다.
스콜라 신학도 위기를 맞이합니다. 너무 전문화되고 현학적인 내용에 이르게 되니 기독교인들의 일상생활과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이죠.
동로마는 이제 쇠약해져서 터키의 침략으로 멸망합니다. 새로운 로마 콘스탄티노플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바뀌게 되지요.
6. 정복과 종교개혁(1453~1600)
이 시기에 유럽은 세계로 뻗어나갑니다. 대항해시대입니다. 스페인 여왕이 대주교에게 왕관까지 팔아가며 콜럼버스를 아메리카에 보내고, 마젤란은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돌죠.
원주민들은 총, 균, 쇠로 죽어나가지만 유럽은 광대한 해외 식민지를 거느리고 부를 쌓게 됩니다. 그래서 중남미에 가톨릭 인구가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레오 14세 교황님도 페루에서 사목하셨죠.
이 시기 가톨릭의 오래 축적된 부패와 문제를 더 이상 가만 둘 수 없다고 생각한 루터는 1517년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쏩니다. 이에 반응한 독일의 영주들이 가톨릭을 버리고 "루터교"로 개종합니다.
스위스에서는 처음에는 쯔빙글리, 그 다음에는 칼빈이라는 종교개혁가의 지도하에 "개혁교회"가 탄생합니다. 장로교가 개혁교회의 일부입니다.
영국은 특이하게 왕이 가톨릭과 결별하고 나섭니다. 그래서 "성공회"는 특별히 신학이나 전례를 많이 손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은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강력한 자기 쇄신운동을 해내는데 이를 "반종교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종교개혁의 결과 개신교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프랑스는 가톨릭이 지배적이지만, 개신교를 인정했습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개신교를 무력으로 억압했습니다.
7. 17~18세기
이 시기엔 처절한 종교전쟁이 있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건 각 교단의 "정통파"의 독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정통파란 좋은 의미로 쓴 것이 아니고 자신의 교리를 절대 진리로 믿으며 이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개신교의 배타적인 태도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지역에서 여러 개신교 국가들 대 가톨릭 국가들이 "30년 전쟁"을 벌였습니다. 영국에서는 청교도(잉글랜드 내 칼빈파)혁명이 내전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8. 19세기
이 시기 근대엔 사람들에게 사실·논리·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사고관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는 정통파 교리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고, 지성의 발달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또 유럽사람들은 이제 "누구도 내게 종교, 이념, 사상을 강요할 수 없다. 그건 내 양심의 영역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종교에도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고 이를 받아들인 "자유주의신학"이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됩니다.
한편 가톨릭은 이런 근대 분위기에 역행하기 택했고 민주주의, 양심자유, 공립학교 등에 대해 단죄하며 교황무오성을 정식으로 선언합니다.
유럽사람들은 이전처럼 종교, 기독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퍼지게 됩니다.
9. 20세기
근대의 눈부신 발전을 보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이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그런 낙관론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런 기대가 산산히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그 훌륭한 이성과 과학기술을 사용해서 서로 오천만명이나 죽일 수 있으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오백만명을 죽일 수 있냐는 것이었죠.
자유주의와 함께 기독교신학까지 버릴 수는 없었으므로, 여러 갈래로 근대성 이후의 신학사조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합리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인간의 비참함을 강조했던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는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조가 되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식민주의에 반발했습니다. 특히 남미에서는 성서의 약자에 대한 당파성에 초점을 맞추며 "해방신학"이 탄생합니다.
양목사 Commentary
사실 로마국교화 이후로는 교회가 역사의 거시적인 수준에서 썩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합니다. 정치·외교·전쟁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교회 자신이 세속권력화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랑스럽지 않기도 하고 흥미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설교나 교육을 들을 때 필요한 배경지식이니 짚고는 넘어가야합니다.
또 역사에서 배울게 몇 가지 있습니다.
1. 기독교가 로마에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윤리적인 삶과 친밀한 관계와 경제적 구제를 제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잘 먹이고 아프면 치료하고 즐겁게 놀고 담소하는 것이었죠. 기독교의 본질과 진리는 이렇게 소소하고 정감 있는 일상 속에 있습니다.
2. 자신이 진리를 소유했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걸 거절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태도는 아주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존중을 갖고서 소통할 수 있어야합니다. 지나친 확신은 맹신이 되고 맹신은 광신이 됩니다. 진리를 알아간다는 마음,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음, 사실이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3. 이성과 과학이라고 만능은 아닙니다. 도구가 훌륭할수록 칼이 되기도 합니다. 강력한 독재자가, 혹은 대중이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합리성과 공감능력, 신앙심을 갖춘 교양 있는 기독교인들이 일상에서나, 국가적 의사결정에서나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로 이성적인 지식인들과 참된 기독교인들은 30년 전쟁도, 세계대전도 말렸습니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고, 그건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