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미술관 가는 걸 좋아해요"
어떤 시절의 기억이 ‘스틸컷’같은 조각조각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면, 아마 내 이십대의 배경은 미술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화랑 한 가운데 놓인 등없는 의자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아주 가끔 밀려오는 흥분으로 화색을 띌 때도 있지만, 대체로 골똘한 표정으로 자질구레한 생각에 빠져 있다.
실제로 나는 미술관에 자주 갔다. 젊은이 답지 않게 고아하고 차분한 취미를 가져서도 아니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그럴싸한 사진을 쟁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조용해서였다.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 대개가 모두가 혼자였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 머물건 누구도 눈치주지 않는 곳이라 좋았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무례해서 돌아버릴 것 같을 때마다 미술관에 가서 몇시간씩 앉아있었다. 코딱지 만한 의자에 엉덩이 한번 붙이는데에도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이 야박한 도시에서, 미술관은 주머니 사정 걱정 없이 들락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가장 사치스러운 얼굴을 한 곳이지만, 혼자인 사람, 주머니가 넉넉치 않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너그러운 곳이라 좋았다. 그 반전있는 매력이.
미술관이 너그러운 곳인건,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런던이나 파리, 마드리드 같은 도시에선 외려 ‘사람이 많아서’ 익명성이 보장됐다. 영화 <007 스카이폴>의 첫 장면에서 제임스 본드는 내셔널 갤러리의 걸린 윌리엄 터너의 그림 앞에서 해커Q와 처음 접선한다. 실제로 가본 그곳은, 과연 비밀요원들이 ‘시민’을 가장하고 접선해도 될 정도로 사람이 넘쳤고, 적당한 활기와 몰입의 에너지가 흘렀다. 난 그곳에서 역시 안락한 편안함을 느꼈다.
자주 가서 앉아있다 보니, 여기저기 널린 게 작품이라 시야에 자주 채이기 시작했다. 보이니까 보다보니 꽤 재밌어졌고, 언젠가부턴 꽤 열성적으로 전시를 찾아보게 됐다. 미술에 매혹됐다기 보다, 미술관의 공간감에 먼저 끌렸던지라 지금도 어딜 가서 ‘미술책 읽는 모임을 3년째 하고 있다’는 이야기하기가 면구스럽긴 하다. 그래서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미술을 좋아한다’고는 말을 못하고,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아무리 미술관의 시초가 제국주의를 전시하기 위함’이었다 해도, 오늘날에 이르러 ‘모두에게 너그러이 열린’ 미술관의 존재가 나는 참 미덥고 든든하다. 구체제의 심장이었던 왕궁이 평범한 이들에게 개방되고, 부잣집 한량들의 수집광이 모든 이들의 볼거리가 되었다니 꽤 위안이 된다. 예술을 ‘소유’할 권력을 쉽게 누릴 순 없지만, 적어도 누구든 예술을 ‘향유’할 기회는 가지게 된 거니까. 아름다움과 파격이 공존하는 미술이란 문명이, 그것을 꺼내보일 수 있는 ‘무대’가 열리자 더 급격하게 다양해질 수 있었단 사실은 참 흥미롭다. 최근, ‘공간’을 만드는 일에 한창 열이 올라 있어 더 그런 것 같다. 새롭고 예측불가능한 것들이 이뤄지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문득 고개를 든다.
p.s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느낀 정취가 그립다. 내셔널 갤러리 이곳저곳에서 들린 다양한 언어의 수다들, 오랑주리 미술관 바닥에 앉아 크로키를 따던 학생들의 서걱서걱한 연필소리, 도교도 미술관의 고전적인 사물함, 네즈 미술관의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 ‘일주일만 갇혀있고 싶다’고 느꼈던 프라도 미술관의 광활한 복도까지. 미술관 투어 루트를 짜며 기내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고, 머잖아 또 같은 모습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