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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Oct 09. 2024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비밀이야기, 일곱번째날

공복혈당 103mg/dl의 기쁨도 잠시, 어제 예상했던 대로 혈당이 날뛰었다. 정말 재밌는 일이다. 몸은 솔직하다. 한치의 거짓말도 없다. 더불어 지난 한 달 동안 '염증이고, 혈당이고 신경 쓰지 말고 한 번 먹어보자'하며 미친 식욕을 용납해 주었던 결과를 오늘 맞이했다. 올해 초 네 번의 수술을 했던 자리에 염증이 다시 올라오다가 터져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던 것을 퇴근 후 씻다가 발견했다. 약 8개월 만에 맞이한 염증성 양성종양의 흔적이었다.


최근 5-6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 정도 염증성 양성종양 제거술을 시행했는데, 올해 초에는 연속적으로 네 번의 제거술을 시행했다. 게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복통을 느끼는 횟수가 잦아졌다. 복통이 있을 때마다 내과에서 검사를 해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원인을 찾기 위해 (실비적용도 되지 않는) 각종 검사를 진행했고 지연성 알러지 검사에서 우유, 계란흰자, 계란노른자 순서로 높은 등급인 것을 확인했다. 잘 생각해 보니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빵이나 치즈가 들어간 음식(특히, 피자)을 많이 먹었고, 그럴 때면 염증성 양성종양이 올라왔던 같았다.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음식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쉬이 파악하긴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를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또한 감정과 음식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려고 한동안 미친 듯이 기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피곤할 땐 단 것, 에너지가 떨어질 땐 짠 것, 우울할 땐 유제품, 스트레스받을 땐 맵거나 자극적인 것, 지루하거나 답답할 땐 바삭하거나 딱딱한 것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감정과 음식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싶다면 이런 방법을 쓰면 된다. 어떤 특정 음식이 먹고 싶어 졌을 때, 바로 그 음식을 먹기보다 '나는 지금 이 음식이 왜 먹고 싶은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픈가? 배가 고프지 않다면 현재 나는 어떤 상황인가?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감정으로 인해서 특정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순차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같은 식감이나 간을 가지고 있는 음식을 찾아서 좀 더 건강한 음식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이렇다 보니 칼국수 집에서 만둣국을 시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만족을 위하여 먹고 싶은 메뉴가 아닌 최소한 건강한 메뉴로 먹으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오늘 같이 점심식사를 한 언니는 밀가루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최근 나의 건강상태를 고려해서 최대한 나에게 메뉴(주로 한식)를 맞춰주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언니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나는 만둣국을 먹었다. 만두를 건져 잘라낼 때마다 만두피가 벗겨지길래 굳이 피를 챙겨 먹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밀가루를 덜어내고 먹는 셈이 된 것이다. 만두 다섯 알을 보고 '양이 적네'라고 생각한 나는 음식점을 일어 나와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배를 퉁퉁거리며 '생각보다 양이 많네'라고 말했다. 천천히 먹는 습관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천천히 먹는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일화인데, 남편과 연애할 당시다. 이동하던 중 배가 고파 '여기서 내려 밥을 먹고 다른 버스를 타고 가자'했는데, 밥을 다 먹고 탄 버스에서 승차 시 나오는 '환승입니다'라는 멘트에 우리는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밥 먹을 때는 서로 말도 잘 안 하는 편이라 오로지 주문하고, 입에 넣는데만 집중하기에 보통 입장부터 퇴장까지 30분 정도면 넉넉하다. 생각해 보니 이건 남편을 만나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라, 나의 사회생활로 만들어진 습관인데 예전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이 30분이었다. 이는 식당으로 이동해서 밥을 먹고, 양치까지 모두 다 하고 돌아오는데 써야 하는 시간이었다. (밥 먹다 뛰쳐나와서 양치도 못한 채 일을 해야 하던 때도 있었으니, 덜 비인간적인 거다.) 그래서 밥을 5-10분이면 다 먹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빨리 먹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내 기준'으로 많이 천천히 먹는 편이다. 천천히 먹으려고 애쓰는 편이고.


저녁은 남편이 끓인 양배추 부대찌개와 삼겹살이었다. 사진에는 없는데 밥도 조금 먹었다. 이제는 저녁을 먹으면서 밥을 먹으면 '아, 내일 혈당 130mg/dl?'라고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저녁에 밥을 먹는 게 식사시간과도 영향이 있는 건지 한번 확인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사진에 나온 '교동법주'는 최근 남편의 최애다. 대만으로 여행 가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남편이 마실 40만 원짜리 위스키를 사 왔음에도 교동법주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그를 위해서 올해는 고향사랑기부를 해야겠다. 경주의 답례품이 교동법주라고 하던데. 일전에 경주에 다녀오면서 1병을 사 온 뒤로 지금 몇 병째 시켜 먹는지 모르겠다. 남편의 말로는 '밥과 먹기 좋은 술'이라고 한다.


화요일에는 넷플릭스에 최강야구, 흑백요리사 등이 올라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술 한 잔에 행복해하는 남편이나 삼겹살 한 조각에 행복해하는 나나 우리 모두가 더 건강한 시간을 많이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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