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여섯번째날
2주 전, 공복혈당이 158mg/dl까지 치솟은 것을 보고 충격받아 그때부터 매일 아침 공복혈당을 재고 있다. 남편 몰래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147mg/dl이었는데, 오늘 아침 공복혈당은 103mg/dl으로 정상 범주에 가까웠다. 몸무게는 약 1.5kg 정도 감량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변화였다. 도대체 내 일상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루 두 끼를 스트레스받지 않고 먹되, 탄수화물 양을 이전보다 (밥 두세 숟가락을 남길 정도로) 약간 줄였다. 내 속을 불편하게 하는 음식을 피했고, 건강한 음식위주로 먹으려고 노력했다. 하루에 물 2리터를 먹을 수 있도록 신경 썼고, 되도록이면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을 마시려고 했다. 그리고 짧은 거리라도 최대한 걸으려고 했다. 익히 '다이어트의 정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행했다.
나의 인생 첫 다이어트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의 나는 일주일 만에 약 4kg 가까이 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을 가볍게 챙겨 먹고, 점심은 급식을 절반만 먹고, 다시 또 가벼운 저녁식사까지. 모든 섭취는 오후 6시 전에 끝냈다. 단, 튀긴 것, 짠 것, 밀가루 등을 모두 먹지 않고 간식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엄마는 내가 이때 키가 커야 할 살을 모두 빼버려서 키가 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물론 엄마는 속상해서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만) 난 지금 내 키가 좋다.
그 뒤로 한참 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인생 몸무게를 찍게 된다. 그게 56kg이었다. 아빠는 나를 볼 때마다 '살을 빼라'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바람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지금 내가 얼마 전까지 (내 인생 최고 몸무게) 74kg였고, 지금은 71kg~72kg이라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말할까? 여전히 '선영아, 살 좀 빼라'라고 나지막이 말하지 않을까.
내가 살이 쪘다는 사실은 약 2년 전에 코즈모스 북콘(Book'on) 모임에 참석했을 때 깨달았다. 결혼 후에 약 10kg이 급격히 찌고, 공황장애로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아주 조금씩 체중이 늘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나는 전보다 살이 찌긴 했지만, 내 나름대로 정의해 둔 나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났는 줄 몰랐다. 나는 '살찌기 전의 나'로 나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찍힌 사진 속의 나는 내가 모르는 나였다.
"내가 이렇게 턱이 접힌다고? 내가 이렇게 팔이 두껍다고? 내가 이렇게 커다랗다고?!"
내가 만약 그 사진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을 뺏고, 사진을 삭제하고, 그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 서버를 불태울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을 내 핸드폰에 저장하는 것으로 모든 행동을 대체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보기로 한 것이다. 그 모임 취지 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임에서 만난 누구도 나에게 뚱뚱하다 말하지 않았으며,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는 부분을 칭찬해 주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을 방향만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외모는 거기서 어떤 평가 대상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고 좋은 면을 찾아보고, 내 기억보다 초라해 보이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 그냥 건강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내가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하게 결심한 이유는 '자신감 없는 나'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최근 좋아하는 출판사 대표님과 만날 일이 있었다. 인터뷰이로 해당 자리에 나간 것인데, 대표님은 두 시간 정도의 인터뷰가 끝난 뒤 내게 '혹시 얼굴 공개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편하게 말씀 주셔도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슬며시 저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살찐 나'는 남에게 내보이기 좋아하지 않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 몰래 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오늘도 그 결심을 잘 이어가고 있는 나의 점심은 닭고기 카레로 했다. 주로 카레를 먹으면 토핑으로 가라아게나 등심돈가스 등을 올려 먹었지만, 버섯과 닭고기 중에 고민하다 닭고기로 했다. 오후 늦게 알았지만, 버섯도 고포드맵 음식이었다. 아주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회사에서 방구쟁이 뿡뿡이가 되었으면 어쩔 뻔했나.
오전부터 극심한 업무로 압박감에 시달린 나는 점심 식사 이후 비타민C 한 알을 먹어도 활력이 올라오지 않았고, 자꾸 늘어나는 한숨에 신경안정제 2알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오후 4시쯤 되자, 어지럽고 핑 돌면서 두통이 심해서 '당 떨어졌을 때'라고 느꼈다. 혈당이 떨어지면 어지러움과 두통이 유발된다고 하는데 그런 증상과 유사했다. 억지로 참지 않고 간식으로 맛밤과 견과류를 꺼내어 먹었다. 맛밤은 옆자리 동료와 나누어먹었다. 다이어트에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주변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행복해지고, 나는 조금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오늘은 운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작은 기대감을 안고 PT수업을 갔다. 오늘도 운동 선생님의 안타까운 눈빛과 퇴사 권유, 그리고 '수요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세요'라는 말을 듣고 왔다. 나의 몸 왼쪽은 턱부터 관자놀이까지 계속 통증이 있고, 오른쪽은 어깨부터 손목까지 통증이 있으며, 팔을 잘 들어 올리지 못한다. 그나마 선생님과 재활을 해서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다. 선생님과 나는 매주 로또 당첨의 희망을 나누며 수업시간을 보낸다.
저녁은 일찍 퇴근한 남편과 함께 누룽지 통닭과 닭죽 세트를 시켜 먹었다. 세상엔 다양한 닭요리가 있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닭이 많다.
이제 보니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지만, 뭐 어쩌나. 이미 다 먹어버린걸. 내일 아침 혈당은 다시 널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는 삼겹살을 먹었지만, 탄수화물을 먹지 않았다. 내일 아침 혈당 수치가 너무 기대된다. 혹시 내일 아침 혈당이 뛴다면, 적어도 아침 공복혈당의 치트키를 파악하는 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