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네번째날
전날 저녁으로 감자탕을 많이 먹긴 했나 보다는 생각이 눈을 뜨며 들었다. 배가 너무 불렀다. 예전 같았으면 감자탕 뼈 세 개쯤이야 '고작'이었을 양인데, 나의 장기가 오랜 잔업과 야근으로 파업 중이라 벅찬 양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깬 덕에 돼지감자 차를 따뜻한 물에 우려 한잔 가득 마시고, 친구들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지난달 말일 열심히 일한 탓에 어깨를 지나가는 신경이 눌려 당분간 '운동 금지'를 진단받았기 때문이었다. 팔을 늘어뜨리면 통증이 더 심해지니 팔을 어딘가에 올려둘 수 없으면 머리 위에라도 걸쳐두라고 했는데, 마치 내 모습이 긴 팔 원숭이 같아 보여 그건 하지 않기로 했다.
내장기관을 비롯하여 근골격계도 모자라 신경통까지 앓게 되니 '내가 너무 순탄하게 살면 이야깃거리가 없어지니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주려고 이런 일이 생겼나?' 싶었다. 게다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다이어트까지 성공하면 나는 장편 성공 스토리를 한 편 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럭키비키잖아?
오늘의 약속은 맛있는 삼겹살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늦은 점심이 4시라는 것이 함정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배고픔을 참게 되면 정신을 놓고 먹을 것 같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니 그럴 수 없었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서브웨이가 있길래 주문한 나의 최애 메뉴 로스트 치킨. 소스는 소금과 후추로 충분하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치즈를 빼고 주문했다는 것인데, 그 현실은 너무 슬펐다. 나의 사랑 치즈와 헤어진 것이 지금 겪는 고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피자, 쿼터 파운드 치즈버거, 치즈 스틱, 치즈 돈까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치즈를 떠올릴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기다리고 기다리던 삼겹살을 먹는 시간이었다. 삼겹살, 덜미살, 목살을 2인분씩 6인분 시키고, 덜미살 2인분과 삼겹살 2인분을 추가했으니 총 4명이서 10인분을 먹은 셈이다. 난 다이어트 중이라고 후식 식사(냉면, 된장찌개, 누룽지 등)는 거절했다.
후식을 시키자는 말에 '저는 다이어트 중이니까 밥은 먹지 않을게요.'라고 말한 오늘의 나는 좀 멋졌다. 진짜로 다이어트 중인 친구의 남자친구는 나를 보고 어처구니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고기를 먹으면서 밥을 먹지 않는 것은 약 10년간 들여온 습관에 반항하는 셈이기 때문에 큰 일이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고기를 먹을 때 고기만 먹는 아이였는데, 남자친구를 잘못 만나 고기와 밥을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버렸던 과거가 있다. 그 친구는 고기를 먹을 때 항상 밥을 먹었는데, 그런 친구와 5년을 만나다 보니 식성이 다 맞춰지더라. 나는 그 고기와 밥의 궁합이라는 미련에서 헤어 나오는 중인 거니 멋지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는 남편에게 비밀이니, 지난 연애사도 술술 풀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남편은 내가 이 글을 쓴다는 것조차 모르니까) 기분 나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맛있는 것 말고, 건강한 것. 그리고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니까. 그리고 혈당 수치도 이전의 공복혈당 수치까지는 아니지만 요 근래 좀 떨어진 것을 보아서 차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절대 조바심 금지!'를 계속 되뇌고 있는 요즘이다. 미련이고, 슬픔이고 조금씩 천천히 헤어 나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