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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Oct 05. 2024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비밀이야기, 세번째날

보통 새벽 3-4시경에는 잠들던 남편은 웬일인지 내가 깨어나는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출근하기 직전 잠들었는데, '나 왜 이렇게 방귀가 많이 나오지'라는 말을 남겼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출근길 내내 '남편의 방귀 원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해답은 어제 먹은 음식에 있었다. '방울양배추가 냉동이라 관리하기 편해요!'라고 말했기에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배추가 '고포드맵 식품'이었다. 남편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었는데,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이 고포드맵 식품을 섭취하면 방구쟁이 뿡뿡이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건강하게 먹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마늘, 양배추를 누가 피해야 할 음식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 소화를 잘 시키는 음식조차 다르다니.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리고 누군가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남이 해준 밥'을 참 좋아한다. 게다가 한식이라면 금상첨화다. 회사 근처 한식뷔페의 오늘의 메뉴는 미역국, 제육볶음, 숙주나물, 양배추, 계란찜 등이었다. 춘권피 튀김이랑 잡채 같은 것도 있었지만 내 기준으로 덜 건강한 느낌이 드는 메뉴는 뺐다. 한 접시 식사는 다 좋지만 밥을 뜰 때 얼마나 떠야 정확한 양인지 잘 모르겠다는 함정이 존재한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보다 딱 세 숟가락 정도 적게 떴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면서도 남기진 않았다.


기사식당 아저씨들처럼 호로록 밥을 먹은 나와 동료는 약 50분간 산책을 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걸어가는 나 때문에 함께 걸은 동료는 걷기 시작한 지 약 15분 만에 '좀 천천히 가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었다. 내 속도에 잘 맞춰준 덕에 내가 빠른 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줘야 안다. 말 안 해주면 그걸 모르냐? 싶을 수 있는데, 미안하지만 정말 나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나쁜 피드백이건, 좋은 피드백이건 누군가 내게 말해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가끔 내가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갈 때, '너 지금 잘못 가고 있어!'라고 누군가는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저녁은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감자탕을 시켜 먹었다. 우거지로 식사를 시작하니 포만감이 엄청났다. 그리고 이런 음식을 먹을 땐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탄수화물을 함께 먹지 말라는 운동 선생님의 말에 정말 우거지와 고기만 먹었다. 신나게 먹었기에, 남편은 내가 다이어트 3일 차인지 아직도 모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3일 차가 된 오늘 아침에 부쩍 속이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최근에 병원에서 검사했을 때, 나의 위, 장, 간이 모두 제기능을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열심히 먹었던 탓이었을까. 아주 살짝 음식의 종류와 양을 살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몸이 편안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혈당이 보내는 신호는 아직도 알아차리기가 조금 어렵다. 왼손 손가락 끝부분이 바늘자국 투성이지만, 아직도 혈당관리는 내게 어렵다. 아무래도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생각으로 최소한 6개월은 살펴볼 생각이다. 그때쯤이면 양손이 벌집이 되어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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